평화통일 Vol 2102024.7·8

국내 유일의 해상 출렁다리에서 만끽하는 추암의 뛰어난 절경.

파랑길에서 만나는 통일

③ 동해 해파랑길-동해·강릉

곳곳에 서려 있는 전쟁 상흔
역사의 어둠 뒤에서 희망을 찾다

송골송골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주는 바람에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찌는 더위 탓에 겪을 고생을 뻔히 알면서도 낭만의 유혹에 먼 길 마다 않고 달려가는 곳, 여름 바다다. 서울에서 동쪽으로 2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추암해변은 해파랑길 33코스의 시작점이다.

동해시의 맨 남쪽에 위치해 있어 동해안 제일의 해돋이 명소로 꼽힌다. 그 길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울창한 송림과 하얗고 고운 백사장이 함께하는 한섬해변을 지나 정감 넘치는 옛 역사의 모습을 간직한 묵호역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이 총 13.6km에 이르는 해파랑 33코스의 종점이다.

26종류 320그루 심은 무궁화동산
애국가 첫 배경화면으로 등장하는 추암촛대바위를 보기 위해 추암관광지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추암관광지에는 국내 유일한 해상 출렁다리를 통해 추암조각공원과 추암해변을 오갈 수 있다. 관광지 입구에서 추암조각공원 정상부를 바라보니 높이 60m에 이르는 대형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추암해변과 추암조각공원 사이에는 출렁다리가 설치돼 있다. 이 출렁다리는 국내 유일한 해상 다리로 알려졌다. 그곳에서 촛대 형상의 추암과 그 주변으로 수많은 바위들이 뾰족뾰족 솟아오른 광경을 바라보니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기암괴석과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 몇 길의 물속까지도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한 쪽빛 바다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유난히 푸르게 느껴지는 여름 해변과 투명한 하늘, 그리고 기암괴석이 탁한 눈과 가슴을 깨끗하게 씻어준다. 푸름으로 가득한 탁 트인 세상을 하얀 포말로 가르며 밀려오는 파도 주변을 맴도는 갈매기의 날갯짓에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전쟁 참전 국가들의 개요를 새긴 6·25전쟁 형제의 벽.
출렁다리에서 추암조각공원 방향으로 이동하자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이 이어진다. 5분쯤 올랐을까. 돌산에 조성된 추암조각공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면적 3만7500㎡에 조각전시장과 해수연못, 야외무대, 휴게시설 등이 갖춰져 있는 공원이다. 이곳 산책로를 따라 평화의 도원, 새벽, 선원, 파도소리, 빛과 인간, 일출 등 상징적인 조형물을 감상하며 오르다 보니 무궁화동산이 나타났다.

무궁화동산은 강원도 동해시가 나라꽃 무궁화의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알리기 위해 조성한 공간으로, 5000㎡ 면적에 계월향, 목단심, 임진홍, 파랑새 등 무궁화 26종류 320그루가 심어져 있다. 아쉽게도 개화시기를 맞추지 못해 무궁화의 만발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곳에 심어진 무궁화는 7~9월쯤 꽃을 피운다고 한다.

공산군에 의해 총살당한 아일랜드 신부
무궁화동산 정상에는 가로 7.2m, 세로 4.8m 크기의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다. 추암관광지 입구에서 올려다보던 태극기가 바로 이것이다. 이곳엔 애국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6·25전쟁 형제의 벽’도 설치돼 있다. 형제의 벽은 2개는 태극기 물결을 형성화한 구조로 지어졌다. 벽면에는 6·25전쟁에 참전한 국가들의 개요가 새겨져 있다.

동해 발한동에 있는 묵호성당으로 향했다. 묵호항에서 서쪽으로 동해시청을 따라 1km 남짓 가다 보면 하얀 기둥에 하늘 빛깔을 띤 외벽이 인상적인 고딕 건축물이 나타난다. 바로 6·25전쟁의 상흔을 딛고 신앙을 밝히는 ‘바다의 별’ 묵호성당이다.

묵호성당은 6·25전쟁 때 북한군에 의해 성당이 점거되고 주임신부가 살해되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묵호성당의 시작은 19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릉 임당동 본당의 관할 공소로 시작했다가 해방 뒤 묵호 해군사령부의 군종신부가 부임해 사목했다. 이곳은 1948년 본당으로 승격됐지만 미처 성전이 마련되지 않았기에 초대 주임인 한 프란치스코 신부는 묵호항 부근의 일본식 가옥에 임시 사제관을 마련하고 미사를 집전하면서 사목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다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후 한동안 사제가 파견되지 못했다. 1954년 다시 삼척 성내동 본당 관할 공소가 됐다가 1957년 6월 현재의 위치에 성당 건물을 준공하고 다시 본당으로 승격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묵호성당에 들어서니 푸른 잔디밭 가운데 서 있는 ‘라 파트리치오 순교비’가 눈길을 끈다. 아일랜드 출신의 라 파트리치오 주임신부는 1950년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동해와 강릉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피난을 떠나지 않고 묵호본당 공동체를 끝까지 지키다 북한군에 끌려가던 중 총살당했다. 순교비는 그 희생과 순교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등명해변 일대는 1950년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가장 먼저 도착한 지역이다.
라 신부의 유해는 1951년 10월 10일 춘천교구 성직자 묘역(죽림동 주교좌 성당 내)에 안장됐다. 이후 묵호성당 신자들은 라 신부의 순교를 기리기 위해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 산 16-2번지에 순교비를 세우고 매년 순례를 해 왔다. 그러다 순교비가 영동선 터널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기차 운행으로 위험이 제기돼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 47-3번지에 새로 순교 사적지를 조성했다.

최초의 6·25전쟁 남침 현장
“문학은 진실을 바탕으로 하잖아요. 전기문 역시 진실한 자료가 바탕이 됩니다. 라 신부님은 피난을 권유하는 신자들에게 ‘양들을 버리고 목자가 혼자 도망갈 수 없다’며 그들의 제의를 뿌리쳤다지요. 신부님이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묵호성당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희망의 터가 되어 진정한 영성의 의미와 평화를 되새기게 합니다.”

천주교 춘천교구 묵호성당이 발행한 전기문 ‘라 파트리치오, 그리고 동쪽 바다 묵호’의 저자이자 묵호성당 신자인 권석순 씨의 이야기다.
미술골목 프로젝트를 통해 2017년 1월 8사단 모탱이로 재탄생한 곳. 현재는 재개발 논의가 이어지면서 일부 주택 벽만이 남아 있다.
정동진 바닷가가 가까운 7번 국도를 타고 강릉으로 이동했다. 7번지 국도변에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간직한 ‘6·25 남침 사적탑’이 세워져 있다. 사적탑으로 오르는 계단 양옆에 그려진 벽화에는 그날의 참혹함이 담겨 있다. 계단으로 올라가봤다. 기념 조형물에는 이곳 강릉이 ‘최초의 6·25전쟁 남침 현장’임을 알려준다. 그 옆에 마련된 6·25 남침 사적탑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3시 북한군 제549부대의 선발대가 이곳 해안에 첫발을 내디딘 사실을 증언한다. 당시 민간인 2명과 경찰 1명 등이 무고하게 희생된 곳이며, 1996년 북한 잠수함 침투지역이기도 한 역사적 장소다.

사적탑과 위령탑 주변에 배치된 실물 크기의 청동 인물상은 동적인 묘사로 당시 정황을 표현하고 있다.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은 그냥 관상용으로 설치된 게 아니다. 산책길을 따라 사적탑을 내려다보면 태극기가 탑을 덮고 있는 형상을 통해 이곳이 민족 대립의 현장이며 전쟁의 슬픔이 숨어 있는 곳임을 일깨워주겠다는 구상의 첨병으로 구성된 것이다. 어렵사리 이곳까지 올라와 강릉의 비경을 보면 6·25전쟁 당시 참상을 깨닫는 이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홍보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때마침 여름 노을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사적탑과 위렵탑을 돌아 나오는 길, 태양이 역사의 어둠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글·김 건 희 기자 | 사 진· 홍 중 식 기자

함께 둘러보면 좋은 울산 여행지


등명해변
등명해변 일대는 1950년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이다. 역사의 상흔이 아로새겨 있는 곳이지만 길이 800m, 2만4000㎡의 백사장과 소나무 숲이 우거진 해변의 경치가 아름답다. 백사장과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철길은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이곳은 인기 드라마 ‘도깨비’, ‘푸른 바다의 전설’, ‘킬미 힐미’ 등 촬영지로 각광받아 지금도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안인, 등명, 정동 등 동해의 어촌을 이어주는 울창한 소나무 숲과 쪽빛 바다가 눈부시게 펼쳐진 길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보석 같은 화폭이 밀물과 함께 들어오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강릉 통일공원
강원도 해안 중심도시인 강릉 안인진과 정동진에 위치해 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최초로 남침해 상륙한 곳이며 1996년 9월 18일 북한 잠수함이 침투해 온 국민에게 전율을 느끼게 한 곳이다. 6·25전쟁과 9·18 북한 잠수함, 무장공비 침투 등의 아픔을 안고 있는 이곳에 평화통일을 염원하면서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안보의식을 고취하고자 함정전시관과 안보전시관으로 구성된 국내 육·해·공 3군의 군사장비와 북한 잠수함 등을 한곳에 볼 수 있는 대규모 전시공원을 조성했다. 2021년 10월 함정전시관에 전시된 퇴역함정 ‘전북함’은 시설 노후와 안전사고 우려로 해체식을 진행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통일공원 조성의 계기가 된 북한 잠수함과 옛 전투기 등의 시설은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강릉 8사단 모탱이
강릉시 강릉대로 218 안길 골목은 1949년 육군 보병 제8사단이 주둔했던 지역이다. 6·25전쟁 발발 이후 8사단은 강릉 방위 및 남침 저지 목적으로 전투에 참여했다. 북한군과의 치열한 교전을 벌였으나 화력에서 밀려 원주와 제천으로 퇴각했다. 정전 이후 8사단이 경기도 양주와 포천으로 이전하면서 이곳에 건물과 주택이 빼곡하게 들어서게 됐다. 사람 한 명이 다니기도 좁은 골목길이 형성됐고 건물이 노후화돼 지저분했으나 KBS 강릉방송국과 강릉원주대가 공동으로 진행한 미술골목 프로젝트를 통해 2017년 1월 8사단 모탱이로 재탄생했다. 모탱이는 모퉁이의 강릉지역 사투리다. 현재는 재개발 논의가 이어지면서 일부 주택 벽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