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102024.7·8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5월 14일 “지방진흥의 새시대를 열어나갈 기세가 충천하다”면서 각지 ‘지방발전 20×10 정책’ 이행 상황을 소개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진단

북한의 자력갱생 전략과 지방 경제 정책

국제사회 제재 장기화 대비 ‘정면돌파戰’
재원·전력 한계 속 국제기구 개방 시사

북한은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지방발전 20×10 정책’ 추진을 공식화하고 지방 공업 발전에 주력하고 있다. 이 정책은 향후 10년간 매년 20개 군에 현대적인 지방 공업공장을 건설해 인민들의 물질생활 수준을 개선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북한의 지방 발전 정책은 기대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월 24일 인민군 제124연대가 평안남도 성천군에서 ‘지방발전 20×10 정책’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지방 공업공장 건설 성과를 빠르게 확대해가고 있다고 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통계청이 발표한 ‘2023 북한의 주요 통계지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북한의 시·군·구역은 각각 25개, 146개, 42개로 총 213개다. 매년 20개의 시·군·구역에 10년간 모두 200개의 현대적 지방 공업공장을 건설한다는 목표는 결국 북한 전역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북한의 지방 공업 정책은 1950년대 말부터 구축되기 시작해 시·군을 중심으로 지역 차원의 자력갱생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돼왔다. 김정은 시기 지방발전 20×10 정책은 이전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비해 중앙의 역할이 강조된 것이 특징이다. 김정은은 지방(공업) 발전에 중앙의 지원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중앙이 지방 공업공장 건설에 필요한 자금과 노동력, 자재를 책임지도록 강조했다. 이에 공장 건설에 필요한 재원을 중앙이 보장하는 한편, 공장 운영과 유지는 각 지역의 당과 행정기관이 책임지도록 했다.

지방 차원의 자력갱생 모색
북한이 지방발전 20×10 정책을 본격 추진하게 된 배경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장기화에 대응해 지역 차원의 자력갱생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김정은은 2019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대북 제재의 장기화를 기정사실화하고 “각 방면에서 내부적 힘을 보다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이런 인식하에 각 부문별, 지역별 균형 발전을 골자로 한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론’이 등장했고, 2021년 1월 제8차 당 대회에서는 ‘정비·보강 전략’인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2021~2025년)이 채택됐다. 아울러 김정은은 ‘시·군의 자립적, 다각적 발전’을 주문하며 모든 시·군을 ‘문명 부강한 사회주의 국가의 전략적 거점화, 자기 고유 특색을 가진 발전된 지역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김정은은 강원도 김화군의 지방 공업공장 건설·운영 사례를 본보기로 제시하고 해당 사례를 전국에 확대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북한은 지방발전 20×10 정책을 당 중앙위원회적 사업으로 규정하고 각급 비상설추진위원회를 조직해 추진 체계를 수립했다.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당 조직지도부 내에 지방공업건설지도과가 설치되고, 비상설중앙추진위원회와 비상설도추진위원회 등이 조직돼 정책을 통일적으로 지휘·장악하고 있다. 도·시·군 당위원회도 각 지방의 상황을 고려해 당위원회적 사업으로 원료기지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별도의 군대 조직인 ‘124연대’를 편성해 공장 건설 등을 담당하도록 했다.

지난 1월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9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20개 시·군이 지방발전 20×10 정책의 1년 차 사업지역으로 선정된 것으로 파악된다. 1차 연도 사업 지역의 선정 기준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인구 구조나 산업 배치 등의 측면에서 일정 정도 공통점이 존재한다. 2008년 인구센서스 기준으로 1차 연도 대상 지역은 대체로 중규모의 군급 행정구역이다. 평균 도시화율은 40.1%로 소속 도의 평균과 유사하거나 낮은 편이다. 각 지역은 지방 공업 중심의 산업 기반이 구축돼 있거나 농림·어업 자원이 풍부하며, 각 지역 소재 공장과 기업소는 대부분 지방 공업공장이다.

개발 재원 수급과 전력 문제 드러내
북한은 지방발전 20×10 정책 추진을 통해 인민들의 초보적인 물질생활 수준을 한 단계 높일 뿐 아니라 농업과 공업 간 유기적 연계를 복구해 재정 확충을 도모하고자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은 2016년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화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의 발생 등으로 농업, 주택 건설 등 일부 부문에서만 성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 부양책으로는 장기화하는 대북 제재에 대응하기 어렵다. 북한이 주장하는 정면돌파전이나 ‘자립적 민족경제노선’을 유지·강화하기 위해서는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큰 제조업 부문의 생산이 동반돼야 한다.

이에 북한은 농업과 지방 공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를 늘려 지방 경제의 자립 기반을 마련하고, 생산을 확대해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일정 정도 보장하는 한편, 여기에서 발생한 수익이 중앙과 지방 재정으로 흘러가는 구조를 구축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인민소비품의 국산화를 통해 소비품이나 그 원자재 수입에 소요되던 외화를 절약하려는 시도도 필요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이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추진하는 데 몇 가지 문제점이 존재한다. 우선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수급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들 수 있다. 해당 정책은 10년간 이뤄질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상당한 개발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방 공업공장뿐 아니라 각종 기반시설, 상업시설, 주택 등의 건설도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평양시와 농촌에서 전개되고 있는 대규모 살림집 건설 사업이나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수행과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공장이 건설되더라도 지속적인 생산을 위해서는 설비의 보수·갱신, 현지 기술자와 노동자에 대한 재교육 등이 꾸준히 요구되기 때문에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1월 2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 참 석해 발언하는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 (뉴욕=AP/뉴시스)
또 다른 문제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원료기지 조성 문제에 비해 전력 공급 관련 대책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통일부가 발간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 광공업 부문 기업소의 전력 공급 시간이 감소한 것으로 파악되며, 기업소 생산의 최대 장애요인으로도 원자재 확보 문제와 전력 부족 문제가 꼽혔다. 통일부(2024)의 조사에서 북한의 중앙 공업과 지방 공업 간 차이는 확인되지 않으나, 산업 부문별 중요도나 우선순위상 지방 공업 부문의 전력 부족 문제가 더욱 심각할 개연성이 존재한다.

또한 산업연구원의 ‘북한 산업·기업 DB’에 따르면 1차 연도 20개 개발 지역 중 2010년 이후 생산·투자 활동이 확인되는 발전소는 11개 지역의 14개소에 불과하다. 향후 신규 지방 공업공장에 전력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 정책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존재한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기존의 경제관리 운영 제도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2010년대에는 주로 공장·기업소나 협동농장 등 생산 단위에 대한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 도입에 집중했다면, 집권 10년 차 즈음인 2021년 제8차 당 대회 이후에는 지역적, 공간적 단위인 지방 발전 정책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2021년 12월 제시된 ‘새로운 사회주의 농촌건설강령’은 1964년 ‘사회주의 농촌테제’를, 2024년 지방발전 20×10 정책은 1958년 6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와 1962년 8월의 지방 당 및 경제일군연석회의 결과를 자신의 시그니처 정책으로 승화시키려는 모습이다. 지방발전 20×10 정책은 2021년에 제시된 새로운 사회주의 농촌건설강령과 함께 지방 발전 정책의 한 축으로 기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평양 유엔 상주조정관 3년 만에 임명
향후 북한은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와 연계해 추진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2021년 북한은 SDGs 이행 상황을 담은 자발적 국별 리뷰(VNR: Voluntary National Review)를 유엔에 제출한 바 있다. 이 가운데 목표 10번(국가 주체로서 인민대중의 권리 및 역할 보장)과 관련해 ‘도농 격차 해소’를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하는 주요 과제로 지적했다. 특히 2024년 3월 평양 주재 유엔 상주조정관이 3년 만에 임명되면서 유엔 국제기구들의 북한 복귀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엔은 평양 주재 상주조정관 임명을 계기로 대북한 SDGs 의제 이행 지원과 식량, 안보, 사회개발서비스, 회복력 및 지속가능성, 데이터 개발 관리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는 SDGs를 매개로 북한의 지방에서 국제 협력이 전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이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해당 정책이 현실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북한은 민심을 확보하고 통치 체제 정당화를 위한 수단으로 지방 경제 활성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시·군 지방 공업공장들을 김화군 수준으로 건설하면 지방 인민들이 좋아하고 신심을 가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은 인민 생활에서 지역 격차를 해소하고, 각 시·군별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정책적 고민을 지속할 것으로 보여 북한의 지방 경제 정책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이 해 정 현대경제연구원
통일경제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