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102024.7·8

탈북민 정착 이야기Ⅰ

탈북 다큐멘터리 ‘비욘드 유토피아’
주인공 이소연 씨

“아들과 만나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먹었으면…”

북한 인권 탄압의 실상과 북한 주민의 험난한 탈북 여정을 생생하게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 마들렌 개빈 감독은 천안 갈렙선교회 소속 목회자인 김성은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한 북한 주민의 참혹한 탈북 여정을 사실적으로 카메라에 담아내 국제사회와 영화계에서 호평을 받았다.

당하고도 브로커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
영화는 두 가족의 탈북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중 한 가족이 이소연 씨와 아들이다. 먼저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이 씨가 북한에 두고 온 아들을 탈북시키려다 실패하는 안타까운 과정이 담겨 있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온 이 씨의 아들은 탈북을 도와주겠다던 브로커의 친구가 포상금에 눈이 멀어 중국 공안에 밀고하면서 잡히고 말았다. 2019년 12월 이 씨 아들은 다시 북송됐고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됐다.

영화에는 브로커가 이 씨와 통화하며 “아들이 수용소를 나올 방법은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영화를 통해 모자의 사연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한 이유는 뭘까.

이 씨는 1975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북한 인민군 상사로 10년간 복무했다. 제대 후 2002년 북한의 수출피복공장에 취직했으나 대북 제재조치로 생산이 위축됐다. 굶주림을 해결하고자 2008년 매달리는 여섯 살 아들을 다독이고 북·중 국경을 넘었다. 이 씨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그날이 아들을 본 마지막 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 씨만 2008년 한국으로 오게 됐다. 북한에 남아 있는 아들을 데려오기 위해 수년간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고시원 청소를 한 뒤 오후에는 서점에서 책을 나르고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느 날 북한을 드나든다던 조선족 브로커가 이 씨에게 “2000만 원만 주면 아들을 한국에 데려다주겠다”며 접근했다. 그러나 브로커는 이 씨에게 건네받은 돈을 도박에 탕진하고 잠적했다. 이 씨는 “또다시 속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 가닥 소식에 목이 말라 브로커에게 거액을 송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탈북민의 처지”라고 말했다.

이 씨는 김 목사를 찾아가 도움을 구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촬영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아들이 한국행에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끝내 북송되고 말았다. 다른 브로커를 통해 당시 17세 아들이 고문을 당해 갈비뼈가 부러지고 초주검이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주변 사람들이 ‘당신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더군요.
이 영화에 마지막까지 동행한 이유입니다.


“첫 탈북을 시도했던 10여 년 전, 다시 잡혀가 북한에서 2년간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어요. 재탈북을 시도해 남한에서 살게 된 저로서는 북한 수용소나 감옥의 고문 상황을 너무나 잘 압니다. 북한을 떠나려는 사람은 누구나 투옥되고 고문을 받으며 심지어 처형될 위험에 처합니다. 동시에 탈북민은 파렴치한 인신매매범의 잠재적 착취에 노출돼 있어요. 아들 상황에 대해 전해 듣고 내 탓이라는 자책감에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습니다.”

이 씨는 지금도 영화 출연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2023년 1월 선댄스 공개 직전까지도 아들 내용을 그대로 영화에 담을지 고민했다. 혹시나 아들의 신변에 해가 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 씨는 2023년 10월경 브로커를 통해 아들이 살아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당신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더군요. 영화가 개봉하면 북한 당국이 국제적인 시선을 의식해 아들을 섣불리 죽이지 못할 것이라고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으로 이 영화에 마지막까지 동행한 이유입니다.”

영화 개봉이 아들 지켜줄 거라 생각
영화는 2023년 11월 미국 개봉 후 미 국무부가 특별 상영회를 개최했고, 1월 9일엔 공영방송 PBS가 미국 전역에 방영하는 등 북한 인권 현실을 알리는 데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인분을 비료로 바치기 위해 다른 이의 대변을 훔치고 굶어 죽은 시신이 강에 떠다니는 참상이 영화에서 그려진다. 미국, 영국 등 해외 시사회 반응은 어땠을까.

“중·장년층 참석자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나도 자식을 둔 부모다’ 하고 달려와 저를 안아줬어요. 그때 큰 위로와 위안을 얻었습니다. 영화가 전 세계인에게 알려질수록 내 아들이 살아 있다는 희망이 커지고, 김정은에게 우리 아들에게는 이렇게 노력하고 애쓰는 엄마가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가 북한 인권 침해를 중단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씨에게 유일한 소원은 무엇일까. 이 씨는 “아들과 만나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이라며 “이 소원이 이뤄지도록 많은 이들이 영화를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김 건 희 기자 | 사진·박 해 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