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102024.7·8

2016년 12월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아 서울광장에서 설치된 이환권 작가의 대형 조각상. 북한 남성과 남한 여성이 손을 잡고 서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뉴스1)

사회 통합

남북 부부 사이에 휴전선은 없다

‘남북 부부의 삶’이 곧 남북한 통합 과정

결혼은 서로 다른 가치와 습관, 관점을 가진 두 사람이 가정 안에서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새로운 해법들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북한에서 살아온 사람과 남한에서 살아온 사람의 결혼은 어떠할까. 북한이탈주민과 남한 주민이 이룬 ‘남북 부부’는 분명 일반적인 부부들과는 다를 것이다.

전영택의 시 ‘두물머리의 사연을 아는가’ 시 구절을 따라가며 남북 부부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이 글은 남북 부부를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알게 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두물, 두 물, 두 물줄기
어원을 찾고자 함이야 아니라 하나
필경 물줄기에 사연이 없을 리 없지
그 사연 궁금하여 두물머리 찾아왔다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남북 부부의 첫 만남은 ‘사랑과 애정’에서 출발한다. 북한 출신 배우자는 낯선 남한 사회에서 의심과 경계가 커지는 과정에서 안식처를 마련하고 안정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더해진다. 남한 출신 배우자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동정과 연민, 호기심과 사명감과 같은 감정이 결심을 돕는다. 결혼을 앞두고 남한 가족과 지인들의 특별한 관심과 간섭이 남북 부부의 현실을 느끼게 한다. 북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사상이 달라서’, ‘뭐가 모자라서’, ‘해를 당하지 않을까’, ‘위험하진 않은가’, ‘가진 것도 없는데…’ 와 같은 걱정이다. 결혼 생활을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있어도 여전히 이들에 대한 편견은 남아 있다.

“나중에 언니들이 ‘하나도 북한 사람 같지가 않다’고 하더라고요. 북한 사람 같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결국 남북을 차별하는 것이 있는 거예요.” (여성_남한 배우자)

‘남한 방식’ 가르치려는 의식 갈등 키워

금강산 꼴짝마다 솟는 샘물 북한강 되고
태백 금대봉 건룡소 쏟는 물 남한강 되니
하나같이 태백산맥 산 속에서 발원하여
약속이라도 한 듯 만난 곳이 두물머리라


남북 부부들은 살아가면서 일반 부부와 다른 갈등을 경험한다. 결혼 초기에 북한 배우자들은 북한 사회와 탈북 과정에서 겪은 경험 때문에 때때로 몸살처럼 끙끙 앓거나, 음주가 심해지거나, 격한 슬픔과 분노를 보이는 등 신체적으로, 때론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 남한 배우자들은 한국의 가족 문화(기념일이나 명절에 의미를 부여하며 선물과 행사를 하는 것 등)에 맞는 생활을 기대하지만, 이해받지 못하고 충족되지 않아 불만이 커진다.

남북한 경제적 수준의 차이도 부부 갈등에 영향을 미친다. 북한이 남한보다 못하다는 인식은 낙인이 돼 북한 배우자가 무능해 보이고 열등해 보이기까지 한다. 북한 배우자는 남북한이 동등한 것처럼, 사람이 열등한 것이 아니라 적응을 위해 애쓰고 있는 만큼 존중해주기를 원한다.

“실질적으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게 굉장한 스트레스가 돼요. 그런 것들이 남북 간에, 우리가 살아가는 데 굉장히 힘든 것들이에요. 컴퓨터, 스마트폰, 매체들이 사람을 더 힘들게 해요.” (남성_북한 배우자)

예서 만난 숫물 북한강과 암물 남한강,
음양의 조화는 하늘이 정한 이치이거늘
운우지정 나눈 끝에 옥동자를 낳았으니
일컬어 위대한 민족의 젖줄, 한강이어라!


그럼에도 남한 배우자들은 ‘남한의 방식을 가르쳐야 한다’는 의식을 갖는다. 남한 배우자의 우월감은 무의식중에도 나타나 북한 배우자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북한 배우자는 ‘숭미 사대주의자’나 ‘이기주의자’, ‘물질주의자’와 같은 말을 쏟아내고, 이에 남한 배우자는 ‘남의 약점만 잡아 공격’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더욱이 공격적이고 직선적인 말투에 불쾌감까지 느낀다. 남북한 사람들의 화법의 차이(직접적인 북한 화법, 간접적인 남한 화법)는 부부 싸움을 키우는 요인 중의 하나다.

“북한 사람들 말을 너무 잘해요. 말 못하는 북한 사람 없어요. 논리적으로 말해보래. 못 하면 나보고 무식하다고 막 몰아대며 욕해요.” (여성_남한 배우자)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수종사에서 내려다본 두물머리(양수리) 전경.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하는 지점이다. (동아일보)

남한에서는 경쟁 논리에 따라 돈을 벌기 위해 바쁘게 살아야 하고, 북한에서는 혁명적이고 위계적인 논리에 따라 목표 달성을 위해 저돌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전반적인 사회적 인식이다. 이 때문에 북한 배우자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수용하기 어려워하고 단일한 가치를 고집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남한 배우자들은 이들에게 다양성과 융통성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남북의 차이는 양육 과정에서 가장 양보할 수 없는 갈등을 경험하게 한다.

정신력을 갖추고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집단주의적 인간형을 강조하느냐, 다양한 지식 역량과 경쟁력을 갖춘 자유로운 인간형을 강조하느냐로 대립한다. 특히 양육 과정에서 북한 배우자들은 남한 교육이 비전 없는 ‘눈먼 사랑’이라며 조기교육 등 사교육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과도한 비용을 비판한다. 이에 남한 배우자들은 엄격하고 냉정한 북한식 훈육 방법을 비판한다. 이런 이유로 남북 부부들은 참 많이 다툰다.

남북, 서로 알고 기다리는 것부터

펼쳐진 산세는 강물이 있어 아름다운지
강물은 산이 있어 마르지 않음인지
민족의 역사 지켜온 강산은 화려할 뿐이어서
몇 번이고 주변 경관 고루 보다 사랑에 빠진다


남북 부부는 이런 갈등이 분단 상황에서 생겨난 남북한 문화의 차이와 개인의 특성이 결합된 복합적인 것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갈등 해결을 위해 먼저 제대로 알고 기다려주는 것부터 시작한다. 북한에도 사람다움이 있는지, 이웃 간에 얼마나 서로를 감시하는지, 배급제의 영향으로 모두 게으르게 사는 건 아닌지, 남한에는 돈이면 다 되고, 위험하고, 서로 관심도 없이 살고, 경쟁적이며, 인간성이 없는지 서로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서로의 강점을 확인하고 인정한다. 북한 배우자의 센 자존심, 강한 책임감과 정신력, 절약 습관 등에서 강점을 발견하고, 자유로운 생각과 부드러운 매너, 남녀평등, 돈의 가치, 생활 문화, 자녀 양육 방식 등에서는 남한 배우자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한다. 그러면서 남북한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서로가 다르게 배워온 것들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버리고 비판하지 않기로 한다.

“사회주의가 들어와 형성돼 있는 것도, 전통적인 것도 있어요. 북한 사람들 생활력도 강하고 대단해요. 가난함은 문제가 아니에요. 정신력을 존중해줘야 해요.” (여성_남한 배우자)

“멍청하면 여기 오지 못해요. 목표가 없다면 못 와요. 여기까지 오려고 했다는 자체가 새로운 생활에 대한 큰 용기가 있다는 거예요.” (여성_북한 배우자)

또한 남북의 공통점을 찾고자 한다. 부모 형제에 대한 애틋한 ‘가족애’를 확인하고 이를 자녀들에게 전하려는 마음은 성공적인 남북 부부 갈등의 해소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제 중년이 된 남북 부부는 명절이 되면, 북한 가족을 그리워하는 배우자를 위해 휴전선 근처로 가서 시간을 보낸다.

“고향의 가족을 생각하면 주기적으로 아파요. 마음 아픈 것을 혼자 아프게 내버려둬요. 옆에서 거들어준다고 낫는 거 아니니까. 분위기 봐서 위로해주고 어떤 때는 모른 척하고. 어떤 때는 장단을 맞춰줘요. ‘당신이 살아서 통일은 될 거다’라고 말해줘요.” (여성_남한 배우자)

그럼에도 우월 의식으로 인한 권위적인 남한 배우자의 태도와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북한 배우자의 표현이 변화되고 부드러워지는 데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서로 다름 통해 ‘화해와 공존’ 방법 배워야

나그네는 이렇게 기도하고 발길을 돌린다
남과 북의 물이 예서 만나 하나 되었듯
남과 북의 사람도 예서 만나 하나 되게 하소서
두물머리는 이 소원을 기적처럼 이룰 것이리니!


종합편성채널 채널A 프로그램 ‘부부극장 콩깍지’에 출연한 북한 출신 아내 조수아와 남한 남편 최덕종 부부는 남북한 문화 차이로 티격태격했다. (동아일보)

남북 부부의 삶은 남북한 통합의 과정에서 남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갈등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는지 직간접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가장 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것은 남북한 사람들을 대등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남북한 사람들이 만나서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탈북민과의 만남은 북한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동시에 남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더불어 살아나가는지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며, 오랜 분단의 역사가 만들어낸 대립과 반목, 편견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서로 다름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를 통해 화해와 공존의 방법을 직접 배워야 한다. 이를 통해 한반도 사람들이 평화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실험해나가야 할 때다.

이 민 영 고려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