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82023.04.

지난해 4월 북한 노동신문이 개학일을 맞아 게재한 창전소학교 학생들의 등교 모습과 교실 풍경. 노동신문은 이날 “어머니당의 은정어린 새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멘 나어린 가슴들에 꿈과 희망이 부풀어 오르는 듯 얼굴마다에는 기쁨이 한껏 어려 있었다”고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평화통일 창

4월 개학하는 북한의 학교 풍경

전국 모든 학생 똑같은 교복,
입학식 날 김일성 동상에 헌화

4월은 북한에서 새 학년이 시작되는 달이다. 북한의 입학식은 전국 어디서나 비슷한 순서로 진행된다. 교장 선생님 연설, 재학생 축하토론, 입학생 결의토론 등이 이어지는 방식이다. 학생들이 김일성 동상이나 대형 그림판 앞에 꽃다발을 바치고 인사하는 것, 연설이나 토론을 통해 지도자의 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고 충성을 맹세하는 것 등도 공통점이다.

또 북한에서는 입학식 날 상급생들이 학교 정문부터 양옆으로 줄지어 서서 오색테이프로 장식한 길을 만드는 전통이 있다. 입학생이 교내로 들어오면 꽃다발을 흔들면서 오색종이를 썰어 만든 ‘꽃보라’를 뿌려주는 환영식도 한다.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본 북한 소학교 풍경
2020년대 북한 소학교의 입학식 풍경은 유튜브 채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요즘 화제를 모으는 북한 유튜버 가운데 재작년 소학교에 입학한 평양 어린이 ‘리수진’이 있다. 그의 채널에 올라오는 동영상은 사실 북한 당국이 기획·촬영·편집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현재 북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어느 정도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수진의 어머니가 딸 소학교 입학을 앞두고 상점에 가서 교복과 학용품을 구입하는 모습을 보면, 상점에 비치된 장부에서 점원과 함께 ‘리수진’ 이름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교복을 살 때 이름을 확인하는 이유는, 북한의 경우 교복을 국가에서 사실상 공급하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교복 파는 상점이 지정돼 있다. 해당 지역 학교는 학생 신체 사이즈를 측정한 뒤 기록한 명단을 만들어 상점에 보낸다. 이후 학부모가 상점에 가서 ‘학교명, 학년, 반, 학생 이름’을 말하고 장부에 기록된 사이즈의 교복을 받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동영상에서 수진 어머니는 교복과 학용품을 받으며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이라고 기뻐한다. 이는 현재 북한에서 교복과 학용품이 무료로 제공되지는 않지만 시장가보다는 훨씬 낮은 가격에 공급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상에서 수진이 입고 있는 교복은 북한 모든 소학교 학생이 공통적으로 입는 것이다. 남한은 학교마다 교복 모양이 다르지만, 북한 학생은 모두 똑같은 교복을 입는다. 소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교복이 의무화돼 있고, 디자인은 국가가 정한다. 나라에서 확정한 교복 디자인을 전국 각지 피복 공장에 보내 제작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교복 디자인이 북한에서는 국가적인 관심사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교복 디자인을 직접 확인했다는 이야기는 수령의 어린이에 대한 사랑을 선전하는 단골 소재로 활용된다. 원래 북한 교복은 디자인이 꽤 오랫동안 유지됐는데, 김정은 정권 들어 2015년과 2022년 두 차례 바뀌었다.

지난해 12월 20일 북한 노동신문이 공개한 사진. “낙랑구역 낙랑소학교 학생들이 교실의 창가에 휘날리는 국기를 바라보며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다”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에서는 1990년 이전까지 교복을 구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교복을 제때 공급하지 못해 각 가정이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돈 있는 집의 경우 좋은 천을 사다가 양복점에 의뢰해 맞춤형 교복을 만들어 입혔다. 반면 돈 없는 집 아이들은 시장에서 파는 중고 교복을 사 입어야 했다. 이런 현실은 2015년 새 교복 디자인이 나오면서부터 개선돼 최근엔 교복 공급이 비교적 정상화되고 있다. 2022년엔 김정일 생일 80돌을 기념해 가방과 함께 연필, 지우개 같은 학용품도 학생들에게 선물 명목으로 공급했다. 올해도 북한에서는 새 학기를 맞아 학생 가방과 교복이 활발히 생산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경제난으로 학부모 부담 가중
북한은 1990년대 이후 한동안 교과서 공급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학생들은 교과서를 시장에서 뒷거래 방식으로 구매하거나, 사지 못할 경우 아예 교과서 없이 공부해야 했다. 2012년 김정은 정권이 등장하면서 ‘교육혁명’ 구호를 내걸고 교육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에 비해 교과서 공급이 많이 늘었지만 아직도 필요한 만큼 다 생산하지는 못해, 일부 교과서는 상급생 것을 물려받아 사용하는 게 현실이다. 또 컴퓨터 등 교육에 필요한 기자재도 학부모와 공장, 기업 등에 후원을 강요해 충당하고 있다.

현재 북한 교육이 직면한 또 다른 문제는 평양과 지방, 도시와 농촌 간 교육 격차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평양 학생들은 질 좋은 ‘민들레학습장’을 국정가격으로 공급받지만, 지방 학생들은 그런 물건조차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또 평양 학교는 교육 설비와 자재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지만, 지방 학교 특히 농촌 지역 학교 시설은 매우 낙후됐다. 이런 차이를 메우는 건 학부모 몫이다. 북한에서는 국가 재정이 부족하다 보니 교육에 필요한 비용을 상당 부분 개인이 부담한다. 가계 사정이 넉넉지 못한 상황에서 교실 보수와 난방, 심지어는 교사 생계까지 학부모가 책임지는 경우가 있어 학부모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현 인 애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