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82023.04.

3월 19일 한미 공군이 한반도 상공에서 우리 측 F-35A 전투기와 미 공군 B-1B 전략폭격기 및 F-16 전투기가 참여한 가운데 연합공중훈련을 실시하고있다. (국방부 제공)

분석


우리 국민은 정말 독자 핵보유에 찬성하나

숙의 과정 없이 이뤄진 대중 대상 조사,
정당·언론이 ‘공론의 장’ 만들어야

북한의 군사 도발이 지속되는 가운데, 최근 국내에서 한국의 독자적 핵보유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핵무장 찬성 여론이 70% 안팎으로 나타나는 상황이다. 해당 조사 내용을 분석하고, 추가적으로 고려할 사항에 대해 살펴봤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은 여론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소수 정치인의 주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정이 바뀌었다. 유력 정치인들이 한국 핵개발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내놓고, 핵개발을 지지하는 전문가 또한 점점 세를 불려나가는 추세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여론을 근거로 든다. 각종 조사에서 핵개발 지지 의견이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최근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핵개발 찬성 비율이 일관되게 70% 수준으로 나타난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에서도 2019년부터 7차례에 걸쳐 핵개발에 대한 찬반을 조사했다. 그 결과는 <그림 1>과 같다. 다른 기관의 여론조사 결과 비슷하게, 응답자의 약 70%가 남한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7차례 조사 전체에서 핵무장 찬성 의견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한국 국민은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 여론조사를 섣불리 받아들이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여론조사에 답하는 사람 대부분은 한국이 핵개발을 실제로 시작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과 우리가 견뎌야 할 어려움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만약 이들에게 핵 보유의 장단점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 뒤, 다시 같은 조사를 한다면 여전히 같은 대답을 할까? 박종희 서울대 교수가 2020년 발표한 논문 ‘한국 유권자들은 정말 핵무장을 원하는가? 실험 설문을 이용한 핵무장 여론 분석’을 보면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당초 61%에 이르던 핵보유 찬성 응답이, 전문가 의견 제시 후 38%까지 떨어졌다. 핵보유의 위험성에 대한 전문가 견해를 들은 시민 상당수가 자기 의견을 바꾼 셈이다. 이는 현재 확산하고 있는 핵 개발 찬성 여론이 막연한 기대감에 근거를 두고 있거나 혹은 숙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통일연구원은 2021년 핵보유와 관련한 새로운 설문 문항을 개발했다. 조사 대상에게 ‘주한미군 주둔’과 ‘핵무기 보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묻자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그림 2> 참고). 전체 응답자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49.6%가 ‘주한미군 주둔’을 선택했고, ‘핵무기 보유’를 고른 사람은 35%로 뚝 떨어졌다. 같은 조사에서 핵무기 보유에 찬성한 사람 비율이 71.3%였던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매우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주한미군이라는 선택지가 주어지자 핵을 선택한 비율은 절반 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그림 2>에서 흥미로운 것은, 보수 응답자가 주한미군 주둔을 더욱 선호한다는 점이다. 진보 응답자의 경우는 주한미군 주둔과 핵보유 의견이 각각 44%와 40.7%로 비슷하게 나왔다. 반면 보수 응답자의 경우 주한미군을 선택한 사람이 55.8%, 핵보유는 30.6%로 차이가 컸다. 이는 사실 이상한 결과가 아니다. 한국 보수는 전통적으로 한미동맹을 지지하며, 동맹을 통한 안보가 한국 방위의 근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과 핵무기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주어졌을 때, 핵보유 여론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는 <표 1>로 정리해봤다. 당초 한국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 중 47.4%는 이 질문을 받은 뒤 주한미군이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정리했다. 주한미군보다 핵무기 자체 개발이 더 중요하다고 본 사람은 39.1%에 불과했다. 이는 앞서 소개한 박종희 교수의 실험 결과와도 일치한다. 즉, 한국에서 핵보유 찬성 의견의 기반은 그리 단단하지 않다. 조건과 상황이 달라지면 핵보유에 대한 의견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렇다면 핵보유에 대한 국내 여론은 왜 이리 쉽게 변화하는 것일까? 이는 우리가 아직 핵개발 필요성과 그 의미, 그리고 핵개발에 수반하는 비용과 정치적 부담 등에 대해 제대로 논의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논의의 중심이 돼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정당과 언론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몇몇 정치인이 개인적으로 핵보유 필요성을 피력한 것 외에, 정치의 장에서 이 문제가 공식적으로 다뤄진 일이 전무하다. 한국의 주요 정당은 핵보유에 대해 당론을 정하거나 공청회 등을 통해 여론을 수렴하는 등의 일을 한 적이 없다. 이는 정당을 탓할 일이 아닌데, 한국 같은 선진국 위상을 가진 나라의 주요 정당이 핵개발에 대해 공식적인 의견을 채택하는 것 자체가 세계적인 파장을 몰고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의 주요 정치인이 핵무기 보유 필요성을 언급한 것만으로도 세계 언론이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개별 정치인의 발언 수준을 넘어, 정당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핵개발 필요성에 대한 여론 수렴 절차를 시작한다면 이는 곧장 동북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중요한 뉴스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람들은 중요한 정치적 사안에 대한 태도를 결정할 때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정책을 참고한다. 국방, 외교, 세금, 경제 관련 정책은 웬만큼 고등교육을 가진 사람도 이해하기 쉽지 않으며, 의사 결정에는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정책을 ‘옳은 것’으로 간주하고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언론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발표되는 핵무기 보유 관련 여론조사에 답하는 일반 대중이 한국이 핵을 개발할 경우 발생할 여러 문제, 즉 한미동맹 유지, 북한·중국·일본·러시아의 반발과 이에 대한 대응, 핵확산방지조약 탈퇴에 따른 제재 가능성, 핵무기 개발 이후 관리 및 보안체계 개발 등에 대한 전문가적 식견을 갖추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이들을 대신해 사안을 정리하고 한국 국익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는 것은 정당과 정치인의 사명이다. 그러나 이 사명이라는 것도 핵개발이라는 이슈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 핵개발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조차 외교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 책임 있는 공당이라면 이 문제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 맞다.

지난해 연말 진행된 북한 노동당 제8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전술핵무기 다량 생산’ 계획을 밝히며 “핵탄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이라고 천명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그 결과 핵무기 독자개발이라는 민감하고도 중요한 사안의 논의가 공론의 장에서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몇몇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논의를 독점하는 상황이 된 면이 있다. 그 결과 숙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여론이 선정적인 언론 보도를 통해 계속 확대재생산되면서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여론의 장에 나온 핵무기 개발 이슈를 그냥 덮어버리기도 힘든 상황이다. 무엇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가장 필요하고 옳은 선택인지를 책임 있는 정당과 전문가, 정치인이 함께 논의하는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그 논의의 장이 열려서 국민이 충분히 내용을 이해하고 숙의하는 과정을 거쳤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상 신 통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