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22023.08.

지난 6월 중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가운데)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국제

블링컨 미 국무장관 방중 의미와 미·중관계 전망

미국과 중국, ‘과도한 경쟁’ 병폐 인지
협력·경쟁·갈등 중심으로 변화할 것

최근 미·중관계에 미묘한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중 고위급 회담이 잇따라 열리면서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것도 무척 이례적이다. 그 의미와 향후 미·중관계를 전망해봤다.

지난 6월 18~19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으로 미·중 간 연쇄 고위급회담이 절정에 달했다. 회의 마지막 날인 1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깜짝 방문’한 사실에서도 이를 가늠할 수 있었다. 예정에 없던 그의 방문 시간은 30분 정도에 불과했지만, 5년 만에 이뤄진 미 국무장관의 방문에 중국의 관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여실히 반영했다. 그럼에도 블링컨의 중국 회담 결과는 우리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도 이에 관한 자세한 소식과 함의를 가늠할 길이 없었다.

우리 언론은 대신 시 주석과 블링컨 장관의 좌석 배치에만 혈안이었다. 시 주석의 착석 자리를 놓고 과거 우리 정치지도자들과 시 주석의 좌석 위치를 비교하는 데 몰두했다. 미국 관료가 하대받았느니, 중국의 진면모가 드러났다니 하면서 의미를 폄하했다. 그러면서 시진핑의 깜짝 방문의 본질을 희석해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여기에 우리 정치지도자들도 가세해 “과거 우리는 동등한 좌석에 앉아 접견했다”거나 “야당 정치지도자들은 과거에 블링컨과 같은 하대를 받았다”는 등 이를 정쟁거리로 삼았다. 그것도 외교 의전의 기본 상식을 가질 법한 사람들이 말이다.

미·중회담 결과 발표 기대는 ‘순진한’ 발상
본래 고위급회담은 병렬로 서로 마주 보고 착석한 가운데 진행된다. 시 주석의 방문이 예정에 없던 것이라 그는 빈 공간에 앉아야만 했다. 그가 앉은 공간은 양측 고위대표단의 중간, 곧 미·중 대표단의 정중앙이었다. 갑작스레 찾은 자리였지만, 그곳은 블링컨 장관과 가까운 거리에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자리였다. 그러나 우리 언론과 정계 인사 모두는 이를 경시한 채 순간의 모습에만 주목했다. 우리가 미·중관계에 얼마나 무지한지를 방증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우리 언론이 블링컨 장관의 방중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있었다. 우선 공동성명이나 공동기자회견이 없었다. 미국과 중국은 최근 연쇄적으로 가진 고위급회담 결과에 대해 모두 함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지난 5월 10~11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위원회 판공실 주임 겸 중앙정치국 위원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담할 때부터 시작됐다. 이틀간 진행된 회담 중 하루는 8시간 이상 ‘마라톤회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회담 결과가 일절 발표되지 않았다.

5월 25~26일 미국 워싱턴에서 진행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의 회담과 7월 6~9일 재닛 옐렌 미국 재무장관의 방중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옐렌 재무장관만이 주중 미국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번 블링컨 국무장관 역시 회담 이후 미국 한 언론매체와 단독 인터뷰를 한 것이 전부다.

둘째, 관련 부처마저도 회담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모두 ‘설명자료(Readout)’를 통한 회담 일정과 내용의 개요만을 게시했다. 이는 중국 측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나아가 중국이 미국 측에 전한 ‘일방적’ 내용만을 공개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했다. 따라서 미국 측의 반응이나 응대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다른 경로를 통해 알려진 일부 회담 내용은 대부분 이미 시의(時宜)성을 잃은 것이었다. 미국 장관들은 귀국 후 언론 인터뷰 또는 싱크탱크에서의 좌담회를 통해 회담 내용 일부만을 언급했다. 가령, 6월 19일 블링컨 장관은 베이징 현지에서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National Public Radio)과 간략한 인터뷰를 가졌다. 그리고 28일 미국 외교위원회(CFR)에서 가진 좌담회 자리에서 비로소 좀 더 상세한 회담 결과를 언급했다.

미·중 양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회담 결과를 즉각, 그리고 자세히 발표해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이들의 회담 내용은 스스로 유추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이들이 전한 입장과 인식 발언에서부터 서로 주고받은 메시지에 근거해서 말이다. 즉, 이들을 지속적으로 관측해야만 회담 내용을 최소한 감지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회담에는 몇 가지 확실한 의제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핵심 의제는 미·중 양국이 지금의 경쟁관계를 어떻게 책임 있게 관리할 것이냐다. 이는 자칫 진부한 의제로 들릴 수 있다. 왜냐면 중국은 이미 2011년부터 미·중관계를 ‘관리·통제(管制, 관제)’하는 방도를 제시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국가부주석이었던 시진핑은 방중한 헨리 키신저 박사와의 회담에서 이 같은 입장을 처음 밝혔다.

미국이 이를 처음으로 인용한 것은 2014년이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6차 미·중전략경제대화 개막 연설에서 양국 간의 상이(相異)점에 대한 관제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들이 강조한 관제의 방식은 아무리 민감하고 입장 차이가 극명한 문제라도 대화와 협력을 통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데 외교적 노력을 배가하는 것이었다.

블링컨 방중 의미는 ‘소통 재개’
바이든 행정부 역시 미·중 양국이 경쟁관계를 관리·통제해야 한다는 의식을 중국과 공유한다. 그리고 이를 책임 있게 수행하기 위해서 고위급 차원에서 소통을 유지해야 하는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는 소통 채널을 어떻게 유지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 측은 이번 블링컨의 방중 의미를 중국과의 ‘소통 재개(Reopening)’에서 찾았다.

지금까지 나온 블링컨의 발언에 근거해서 보면, 당시 의제로 미·중 경쟁관계의 관제, 중국 기업의 펜타닐 밀수, 군사 대화채널의 복원, 대만 문제, AI안보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제시됐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복안이나 해법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강조됐다. 양국의 과도한 경쟁이 통제 불능한 상황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경쟁관계를 관제할 수 있는 첫 단추를 맺기 위한 데 본질적 목적이 있었다. 즉, 양자는 각자의 명확하고도 정확한 입장을 서로에게 직접 전달하고 확인할 수 있는 대화채널의 기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여기에는 진솔하고 솔직한 대화가 유일한 방법이라는 확신이 뒷받침됐다.

미국이 중국과 대화에 임하려는 동기는 세계가 변곡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인류는 1648년과 1945년, 이미 두 차례의 변곡점을 경험했다. 미국은 이들 변곡점의 교훈을 잊지 않았다. 대규모 참사가 휩쓸고 지나간 후 이들 변곡점이 도래한다는 사실 말이다. 따라서 미국은 인류가 또 다른 대참사를 피할 수 있도록, 동시에 자유 국제질서를 온전히 유지해내는 역사적 사명을 실현하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고 자각하고 견지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지금 외교를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으로 확신한다.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뉴시스)

그러나 외교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外)와 하는(交) 것이다. 그래서 외교의 결과는 상대방에 대한 설득 여부와 자신의 의제 관철로 결정된다. 결과는 국익의 운명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외교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외교를 추진하는 자, 곧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실하게 인지해야 한다. 목적의식이 없으면 문제의식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니즈(Needs)도, 상대방의 니즈도 파악하지 못하면 레버리지(지렛대)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백전백패를 피할 수 없다. 더 확실하게 승리하려면 상대와의 신뢰와 자신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외교는 교감이 전제다. 교감으로 공감대가 형성되면 협상이 순조롭다. 반면 교감이 없는 협상은 진전이 없다.

원활한 협상을 위한 충분조건은 서로에 대한 ‘자신감(Confidence)’과 ‘신뢰(Trust)’다. 자신감은 협상을 요청하는 측과 수용하는 측이 모두 갖춰야 할 전제조건이다. 요청자의 자신감은 국민적 지지에서 나온다. 국민 설득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협상 요청을 수용하는 측은 상대방에 대해 자신할 수 있을 때 협상의 당위성을 비로소 자국민에게 설득할 수 있다. 특히 상대방의 의제가 공론화와 여론 수렴이라는 투명한 경로를 통해 국민적 지지를 받으면 협상의 부담감도 줄어들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감을 가질 때 신뢰의 싹이 튼다. 이런 외교를 하는 게 현재 미국이다. 이런 외교를 구사하는 미국의 목표는 중국과의 평화 공존이며, 목적은 공존을 통해 자유 국제질서를 수호하고, 여기에 중국이 더 순응하는 태도로 동참하게끔 하는 것이다.

치밀하게 미·중 양자 교류 맥 짚어야
향후 미·중관계는 협력, 경쟁, 갈등의 3가지 축을 중심으로 변화할 것이다. 문제는 경쟁이 격화돼 갈등으로 이어져 이 두 개의 축이 더욱 확장되는 데 있다. 상대적으로 협력의 축에서 양국이 운신할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쏠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방향으로 미국은 미·중관계를 가지고 나갈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과제는 초당적으로 대중 강경 입장을 고수하는 미 의회와 어떻게 균형을 맞추느냐에 있다. 내부에 적이 있는 셈이다.

6월 18일 중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친강 중국 외교부장(외교장관)이 회담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얼마 뒤 종적을 감춘 친강 외교부장은 면직됐다. (뉴시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미·중 모두가 과도한 경쟁의 병폐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과의 면담을 마친 뒤 블링컨은 주중 미국대사관에 모인 기자들에게 “미·중관계는 불안정한 상태였다. 양쪽 모두 이를 안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면서 “서로 오해와 오판을 막고, 경쟁이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통채널 마련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미·중관계가 어떠한 축 위에 놓여 있는지는 비단 양자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카메라에 담긴 찰나의 순간에서 벗어나 부지런하고 치밀하게 양자 교류의 맥을 짚는 것이 우리의 운신의 폭 역시 가늠할 수 있는 길임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주 재 우 경희대 중국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