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92023.05.

북한이탈주민 정착 이야기

군부대 요리사 출신 북한음식전문가 안영자

“전통 옥류관 평양냉면으로 식탁 통일 이룰 것”

북한군 초대소(영빈관) 요리사 출신으로 서울에서 북한 음식을 만드는 안영자(56) 씨는 ‘안영자면옥’이라고 적힌 앞치마를 입고, 주방을 지나 식당 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오전 11시 영업을 시작해 3시간여 만에 한숨 돌리고 기자를 맞이하러 온 참이었다. 그가 건넨 명함에는 사장이나 셰프(chef) 같은 직함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전통 평양 옥류관 냉면’이라고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 몸에 밴 구수한 육수 냄새가 짙은 안개처럼 낮게 깔렸다.
북한군 산하 요리강습소에서
스파르타식으로 요리 훈련
2020년 8월 서울 강서구에 ‘안영자면옥’이라는 식당을 개업한 안 씨가 처음 요리를 배운 건 1983년이다. 평안남도 은산군 수양역 인근 북한군 후방총국 산하 요리강습소에서 그는 정식으로 요리 세계에 입문했다. 군에서 요리사를 뽑는다는 얘기를 들은 아버지가 권유한 일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요리사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음식을 다루는 직업이라 배급에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하고 당국이 주는 임명장을 받아야 요리사로 활동할 수 있다.

북한에서 요리를 전공하고 당국이 주는 요리사 임명장을 받은 뒤 활동했던 안영자면옥 대표 안영자 씨.
안 씨는 아버지가 권유한 대로 군에 입대해 2년 동안 한식, 양식, 일식 등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수업은 스파르타 방식으로 진행됐다. 평양상업대학에서 파견된 교수들이 1 대 1로 요리 교육을 해줬다. 교육생들은 군인 신분이라 총을 메고 달리는 훈련도 했다. 유사시 요리사들도 음식을 들고 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신의주 비행장과 순 안 비행장에 파견돼 6개월 실습 과정을 거쳤고, 평양 옥류관 등 유명 음식점과 호텔, 초대소 등으로 현장실습도 나갔다.

입소 당시 교육생은 48명이었으나 2년 정규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받은 이는 안 씨를 포함해 26명에 불과했다. 1986년 10월 안 씨가 요리사로 파견된 곳은 공군사령부 소속 함경북도 경성군 온포 705초대소. 인근에 주을온천이 있는 등 경관이 좋아 김일성 접견 대상인 외국 군사대표단, 무관 등 귀빈이 자주 방문했다. 특히 아프리카 사람이 많았다. 안 씨가 군부대 요리사 생활을 시작할 무렵, 김일성이 아프리카 외교에 힘을 기울이며 군사 원조의 일환으로 아프리카 각국에서 선발한 군인들을 불러 비행사로 양성했기 때문이다.

귀빈에게는 소갈비찜, 약밥, 닭요리, 버섯구이, 빵, 소시지, 해산물요리 등 고급 식단이 제공됐다. 안씨도 다양한 음식으로 이들을 대접했다. 돼지고기와 토마토를 함께 볶은 요리 등이 반응이 좋았다. 가끔 평양에 차출되는 때도 있었다. 1980년대 짐바브웨 대통령, 레소토 총리 등 아프리카 귀빈이 김일성을 만나러 올 때면 평양에 가서 연회장 만찬 요리를 만들기도 했다.

안 씨 인생에 큰 변화가 온 것은 1997년. 남동생이 일본 귀국자 출신 등 부유한 청년들과 해외 비디오를 봤다가 주모자로 몰려 악명 높은 함경북도 회령시 전거리교화소로 끌려갔다. 5년형을 선고받은 동생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 스물여덟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북한에서는 수형자가 형기 중 사망하면 온 가족 출신성분이 ‘반동’으로 바뀐다. 이 일로 아버지는 뇌출혈을 앓다 숨을 거뒀고, 안 씨와 둘째 오빠는 군복을 벗어야 했다. 북한에서 더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할 때,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중국 사는 친척에게 탈북 제안을 받은 것이다.

“북한에서는 사향배꼽을 좋은 약재로 여겨요. 아버지가 편찮으실 때, 사향배꼽을 드시면 살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돈을 벌려고 중국에 가서 몇 달간 온갖 일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중국인들의 풍족한 생활을 경험하며 ‘북한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죠. 그때는 생각만으로 그쳤는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얼마 후 중국에서 만난 탈북민 친척이 ‘남쪽으로 오겠느냐’고 묻는 거예요. 새로운 삶을 위해 몽골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 걸 선택했습니다.”

메밀과 감자전분을 일정 비율로 배합해 굵지도 얇지도 않게 뽑아낸 안영자면옥 냉면 면발. 쫀득하면서도 부드럽다.
몽골 국경까지 안 씨를 비롯해 탈북민 8명을 인솔한 안내자는 헤어지기 전 “이 길로 쭉 가면 철조망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시작해 동쪽 방향으로 철조망 여러 개를 차례로 넘다 보면 마을이 보인다”고 알려줬다.

그러나 철조망은 나타나지 않았다. 안 씨 일행은 몽골의 광활한 사막에서 8일을 헤맸다. 낮에는 얼굴을 찌르는 듯한 태양열에 피부가 타들어갔고, 저녁에는 추워서 전신이 덜덜 떨렸다. 온종일 모래사막을 헤맸는데 갑자기 발이 푹푹 빠져드는 진흙탕이 나오기도 했다. 그곳에 물기라도 있으면 살기 위해 그 더러운 물을 허겁지겁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안 씨 일행은 사막에서 말라 죽은 나뭇가지를 발견했다. 더는 걸을 힘이 남지 않았기에 죽기 전 불이라도 피우자고 의견을 모았다. 불을 피우고 지쳐 쓰러졌다. 몇 시간 지났을까. 갑자기 말소리가 들렸다. 몽골군 기마병이 나타나 일행에게 안대를 씌우더니 군 초소로 데려갔다. 잠시 뒤 트럭이 나타났고 이들은 수감시설로 옮겨졌다.

여러 시련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안 씨는 2006년 3월 한국에 왔다.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를 거쳐 경기도 부천에서 생활을 시작한 안 씨는 한동안 양복점에서 일했다. 군부대 요리사로 근무하며 16세 때부터 군복만 입고 살다 보니 화려한 옷에 대한 동경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강력한 무기 없이 생존하기란 쉽지 않다. 안 씨는 결국 요리가 자신의 운명임을 받아들였다.

2014년 요리 경연 프로그램 ‘한식대첩’에 ‘북한 요리 고수’로 참가해 최종순위 5위를 기록한 후 음식 방송 출연과 언론사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곧바로 식당을 열지는 않았다.

안 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쪼개 북한 요리법을 체계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북한 요리 레시피 120개를 정리해 자료로 만들면서 2018년 봉평 메밀요리 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았고, 그해 한국외식조리협회의 대한민국 조리명인(북한요리) 타이틀도 얻었다.

옥류관 평양냉면에는 소고기, 달걀, 무, 오이, 잣, 달걀지단 등이 고명으로 올라간다.
옥류관 실습 때 배운 대로 만든 정통 평양냉면
탈북민 가운데 북한에서 요리를 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꽤 있지만,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국가가 인정하는 기관에서 정식 요리사로 근무한 이는 흔치 않다. 안씨는 “저는 북한에서 제대로 된 요리사 훈련을 받고 현직에 근무하던 사람이니, 무엇을 하든 제대로 준비하고 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개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다. 안 씨는 남쪽에 온 지 14년 만인 2020년 8월, 서울 강서구 마곡에 ‘안영자면옥’이라는 식당을 열었다.

안영자면옥은 옥류관 평양냉면, 평양온반, 평양초계탕, 평양육개장을 기본 요리로 하고, 평양만두 등 여러 음식을 곁들인다. 옥류관 평양냉면은 안 씨가 북한군 후방총국 산하 요리강습소 교육생 신분으로 옥류관에서 실습할 때 직접 배운 것이다. 그 방식 그대로 육수를 내고, 소고기·달걀·무·오이·잣·지단 등을 고명으로 얹는다. 단, 면발은 한국인 입맛에 맞게 메밀과 감자전분을 일정 비율로 배합해 너무 굵지도 얇지도 않게 뽑아낸다. 안 씨는 “평양 옥류관 실습경험을 가진 내가 만드는 음식인 만큼 서울 유일의 옥류관 평양냉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안 씨는 6월에 신메뉴 ‘본궁국수’를 출시할 예정이다. 쟁반에 면발을 올려두고 갖가지 채소를 곁들인 뒤 육수를 부어 먹는 면 요리로, 함경남도 함흥시 리원군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그는 요리에 여전히 목마르다. 경치 좋은 관광지와 서울 강남에 안영자면옥 분점을 낼 꿈을 갖고 있다. 탈북민 가운데 요리에 재능이 있는 사람을 요리사로 키우는 일에도 관심이 있다고 한다.

그는 안영자면옥에 취직하는 탈북민 직원에게 늘 똑같은 말을 강조한다. “통일은 식탁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북한 요리 방법이 전수돼 한국에서 또 하나의 음식 문화로 자리 잡으면, 그것이 바로 통일의 양념”이라는 것이다.
통일은 식탁에서부터
그것이 바로
시작돼야 한다고 믿는다.
북한 요리가 한국에 알려져
통일의 양념이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음식 문화로 자리 잡으면,

“오랫동안 고민하고 철저히 준비한 덕에 제 요리 철학이 탄탄해졌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식당을 열었는데도, 단골 손님을 확보하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 건 그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아보면 여기까지 온 게 그저 신기해요.”

그에게 요리는 어떤 의미냐고 묻자 안 씨는 “운명”이라며 씩 웃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안 씨가 만든 옥류관 평양냉면과 채유골동면을 먹어봤다. 그의 말처럼 굵지도 얇지도 않은, 부드러운 면발이 쫀득쫀득하게 씹혔다.

안영자 씨가 요리한 옥류관 평양냉면과 채유골동면, 평양만두로 차린 한상.
채유골동면은 채소와 들기름을 곁들인 비빔국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