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92023.05.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가 3월 20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개최한 북한 관련 긴급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엔웹TV 캡처)

특집


윤석열 정부 통일·대북정책 중점 추진과제 분석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과 분단 고통 해소

세계가 주목하는 비극적 북한인권 상황,
유엔 COI 권고안 실행이 답이다

윤석열 정부 통일·대북정책 비전은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두 번째 중점 추진과제 ‘상호 존중에 기반한 남북관계 정상화’에 대해 집중 분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3월 28일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출간한 통일부의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하면서 “북한 주민의 처참한 인권유린 실상이 국제사회에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또한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북한인권재단이 출범하지 못하고 있고, 지금에서야 북한인권보고서가 출간되는 것”이라며 “이제라도 북한인권법이 실질적으로 이행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인권 개선을 주요 통일·대북정책 과제로 제시한 현 정부의 확고한 기조를 대통령이 직접 밝힌 것이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북한인권은 북핵 문제 못잖게 중요한 문제로, 북한 주민 인권 향상을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일찍이 천명한 바 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
북한인권 문제의 현주소를 가늠케 한 윤 대통령 발언은 출범 10주년이 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Commission of Inquiry) 취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2013년 3월 21일, 유엔인권이사회는 매년 채택해온 북한인권결의안이 북한인권 상황 진전에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자 COI를 출범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모색했다. 유엔 조사위원회는 보통 대규모 인권침해가 발생할 경우 그 실태를 조사하고, 범법행위가 인정되는 가해자를 형사 처벌하기 위해 존재하는 유엔의 법 집행 도구다. 2004년 설립한 수단의 다르푸르 국제조사위원회를 비롯해 2006년 레바논, 2011년 리비아·시리아·코트디부아르에 각각 설립한 전례가 있다. 특이한 점은 북한 이전에는 모든 조사 대상국이 무력충돌 발생지였는데, 북한의 경우 무력충돌이 없는 상황에서 유엔 조사위원회가 설립된 최초 사례라는 점이다. 북한인권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마이클 커비 전 호주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고, 세르비아 인권운동가 소냐 비세르코와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인 마르주키 다루스만이 각각 위원으로 임명됐다. 설립 자체를 반대한 북한은 위원회의 현장 방문을 불허했다. 따라서 조사는 주로 한국, 일본, 태국, 영국, 미국 등지에서 공청회 및 비공개 인터뷰를 통한 간접조사 방법으로 1년간 진행됐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4년 2월 17일,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 인식을 완전히 뒤바꾸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인류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가 북한인권 증진을 핵심 국정목표로 삼고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 COI 보고서의 권고안을 매뉴얼처럼 따르는 것이다. 그러려면 보고서 내용에 대한 구체적 이해가 필요하다.

‘세계인권선언문’ 30개 조항 모두를 위반하는 ‘세계 최악의 인권국가’ 북한에 대해 COI 보고서는 북한의 3대에 걸친 수십 년간의 조직적 인권 탄압이 ‘반인도 범죄’로 규정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유엔헌장 제7장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권한을 바탕으로 인권유린 책임자들, 즉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지도층을 국제형사재판소(ICC·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 회부할 것을 권고해 국제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다. 북한은 로마규정의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ICC 사법권이 자동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북한을 포함한 대부분의 독재 국가가 로마규정 가입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COI는 ICC 사법권 발동을 위해 안보리의 ICC 회부를 권고한 것이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반인도 범죄를 구성하는 북한 내 인권침해 상황을 6가지 유형으로 보고서에 정리했다. 첫째 사상, 표현 및 종교의 자유 침해- 전체주의 체제의 핵심인 주민들의 사생활 감시를 통한 사상, 양심, 표현 및 종교 자유의 상실을 의미한다. 둘째 차별- 성분제도에 의한 주거, 직업, 학업, 배급, 결혼 등에서의 차별, 그리고 가부장제에 의한 여성에 대한 차별을 뜻한다. 셋째 이동 및 거주의 자유 침해- 통치 수단인 이동, 거주, 여행에 대한 제한을 위반하는 경우 박해, 고문, 구금, 성폭력, 강제낙태 등을 감행하는 범법행위를 말한다. 넷째 식량권 및 관련 생명권 침해- 식량을 주민 통제 수단으로 이용해 식량 분배를 성분제도 등에 따라 차별 적용해 기근 상황을 방치한 책임을 의미한다. 다섯째 자의적 구금·고문·처형 및 정치범수용소- 정치범 혐의가 있는 주민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보위사령부에 의해 사법절차 없이 구금돼 계획적인 굶기기, 강제노동, 고문, 강간 등의 처우를 받는 것을 말한다. 여섯째 외국인 납치 및 강제 실종- 국군포로를 포함한 6·25전쟁 전시, 전후 납북자를 비롯해 일본, 태국, 중국 등의 외국 민간인 납치 및 억류 문제를 의미한다.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장이 2014년 2월 17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한의 반인권 범죄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들고 북한 정권을 규탄하고있다. (제네바=AP/뉴시스)
위와 같은 북한 내 인권침해 행위가 반인도 범죄를 구성한다는 판단하에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다양한 권고안을 유엔 총회와 안보리에 제시했다.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건과 별도로 가해자 책임 추궁을 위한 특별재판소(Ad Hoc Tribunal) 설립도 권고했다. 뿐만 아니라 유엔 사무국과 그 산하 기관들에게 반인도 범죄 방지를 위한 ‘인권우선(Rights Up Front)’ 전략을 시행할 것도 촉구했다. 같은 맥락에서 보호책임(R2P·Responsibility to Protect) 개념도 개진했다. 북한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인권침해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자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는 만큼, 국제사회가 피해자들을 가해자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인도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에서 더욱 진전된 국제사회 대응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 COI는 북한에 대해 포괄적인 민주개혁을 요구했고, 정치범 수용소 폐쇄와 정치범 석방을 권고했다. 또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보장, 가혹행위 금지, 사형제 폐지, 언론 독립, 정보 접근권 보장, 해외여행 금지조치 폐지 등의 개혁을 요구했으며, 납북자 귀환, 이산가족 상봉, 유엔과의 협력 수용 등 인권개선을 위한 노력을 권장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반인도 범죄 방조 행위(aiding and abetting) 해당 가능성을 지적하며, 탈북민 강제 송환을 금지하고 국제난민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해 탈북민과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에 힘쓰도록 요청했다.
북한인권 개선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
COI 보고서의 유례없는 권고 사항은 유엔 인권이사회가 2014년 3월 28일에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안’에 그대로 반영됐고, 같은 해 12월 18일과 22일 각각 유엔총회 본회의와 안보리에서 정식 의제로 채택됐다. 북한인권 문제가 안보리 의제가 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당시 북한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을 것으로 평가된다. COI에 의해 북한 반인도 범죄자들을 단죄하기 위한 발판이 마련되자 북한은 거세게 반발하면서 전례 없는 외교 공세를 펼쳤다.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15년 만에 유엔총회에 참석했고, 강석주 조선노동당 국제담당비서도 유럽을 돌며 외교 활동을 벌였다. 물론 이런 행동이 유엔 결의안 채택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북한은 억류했던 미국인 3명을 전격 석방하면서 미국에 대한 유화 제스처를 취하기까지 했다. 또한 유엔 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를 가입 24년 만에 비준하고, 마르주키 다루스만 유엔 특별보고관을 북한으로 초청하면서 북한 최고지도자에게 책임을 묻는 내용을 결의안에서 빼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이에 다루스만은 “전제조건이 없어야만 북한에 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십 년 동안 국제사회의 감시망과 법적 규제를 교묘하게 피해온 북한에게 인권 문제는 아마도 계속 은폐하고 싶은 사생활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에도 꿈쩍 않던 북한이 인권 결의안을 놓고 몸부림치는 뜻밖의 모습에 국제사회는 오히려 고무됐고, 압박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2014년 12월 22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인권 상황을 정식 의제로 채택할지를 놓고 투표하는 모습. 당시 찬성 11표, 반대 2표, 기권 2표로 가결됐다. (뉴욕=AP/뉴시스)
COI 보고서 효과가 유엔은 물론 국제사회 곳곳에 확산하면서 북한인권 캠페인도 탄력을 받았다. 2013년 캐나다 정부가 ‘북한인권의 날’을 선포했고, 이듬해 남아프리카에 있는 보츠와나 정부는 북한의 반인도 범죄를 이유로 수교 40년 만에 북한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북한인권 문제 개선에 특히 적극적인 미국 의회는 청문회 개최, 경제 제재, 금융거래 봉쇄법 제정 등의 조치를 취했다.

COI 권고 사항을 적극 실행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강력한 선언이 따른다면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내외 캠페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올가을 있을 유엔총회가 이와 같은 선언을 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장이 아닐까 생각된다. 앞으로 수십 년 간 지속될지도 모르는 북한의 반인도 범죄를 막기 위해 국제사회 최선봉에 서서 이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신 대북 인권정책의 설계자로서 아주 중대한 레거시를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정 훈 통일부 북한인권증진위원장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