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92023.05.

지난해 12월 19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1면에 실린 사진. 평양 밀가루 가공 공장으로, 벽면에 ‘인민들에게 더 많은 밀가루가공품을’이라고 적혀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평화통일 창

10년 후 북한 주식은 빵?

당국이 밀가루 홍보에 열 올리는 북한 풍경

최근 북한 조선중앙TV가 장식단설기(카스텔라) 등 빵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해 화제가 됐다. 거품기나 오븐 없이 가정에서 쉽게 빵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료리상식–빵 만들기’ 편은 2월 처음 전파를 탄 데 이어 3월 재방송까지 했다. 그동안 ‘료리상식’은 민족 음식을 강조하는 북한 당국 시책에 맞춰 평양온반, 삼계탕, 원산조개밥 등 북한 전통 음식 조리법을 주로 소개해왔다. ‘빵’이 메뉴로 등장한 건 당국의 움직임에 뭔가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밀가루 음식 전시회’를 열고 노동신문 등을 통해 열심히 홍보하기도 했다. 그동안 김일성 탄생일을 기념한 ‘태양절 요리축전’ 등 여러 요리 전시회가 열려왔지만, 북한이 밀가루 음식 전시회를 한 건 지난해 말이 사상 처음이다.

노동신문은 지난해 “12월 13일부터 열린 ‘밀가루 음식 전시회’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며 “(이 전시회 개최는) 가까운 시일 내 우리 인민의 식생활을 백미밥과 밀가루 음식 위주로 전환해 밀가루 음식과 가공품의 가짓수를 늘리고 그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상 첫 밀가루 음식 전시회에는 청류관을 비롯한 유명 식당과 민성식품공장,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 능라식료공장, 선흥식료공장 등 여러 공장이 참여해 주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밀가루 음식 50여 종, 가공품 1500여 점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음료 등을 출품했다. 최근 북한에서 젊은 층과 평양 주민 등을 중심으로 밀가루 음식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음식이 한자리에서 소개된 건 최초라 현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북한이 밀가루 음식을 홍보하기 시작한 건 2021년 ‘새 시대 농촌 건설 강령’을 발표하면서부터다. 북한은 그해 12월 27∼31일 진행한 노동당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농업생산을 증대시켜 나라의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 10년 동안 단계적으로 추진할 목표를 제시하며 나라의 알곡생산구조를 바꾸고 벼와 밀 농사를 강하게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해 1월 1일 ‘인민의 식생활 문화를 흰쌀밥과 밀가루 음식 위주로 바꾸는 데 나라의 농업생산을 지향시키기 위한 방도적 문제들’을 밝히며, 그간 북한 주민의 주식이던 감자와 옥수수를 쌀과 밀가루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바꿔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북한 국경이 폐쇄되면서 식량 수입이 어려워지고, 국제 곡물가가 상승한 가운데 밀 수입이 늘어나면서 외화가 급격히 유출된다고 판단한 북한 당국이 밀 자급률을 높이고자 생산구조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가 조사한 ‘북한 곡물가격 동향’을 보면 수입에 의존하는 밀가루 가격은 2020년 3분기부터 2021년 4분기까지 2.5배 이상 폭등했다. 같은 기간 자급자족이 가능한 쌀과 옥수수 가격은 별 변동이 없었다. 북한의 곡물 중국 수입 의존도는 쌀과 옥수수의 경우 2% 이하지만 밀가루는 40∼60%에 육박한다.
김일성 옥수수, 김정일 감자, 김정은은 쌀과 밀
북한이 ‘벼와 밀 농사’를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김정은 정권 출범 때부터 내세운 ‘주민 생활 향상’ 과제 때문으로 보인다. 한반도 남쪽이 대부분 평야인 데 반해 북한은 산이 많고 경사가 급한 지형이다. 기후 조건도 작물 생장에 적합하지 않다. 이런 환경 때문에 북한은 분단 직후부터 식량 부족 문제를 겪었다. 김일성은 ‘의식주’라는 말을 ‘식의주’로 바꿨을 만큼 ‘먹는 문제’를 중요하게 여겼다. 주민들이 굶주리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강냉이(옥수수)는 밭 곡식의 왕’이라는 구호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옥수수 재배 정책을 추진했다. 그럼에도 식량난은 해결되지 않았고,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기까지 겪게 된다. 식량 부족 문제가 체제 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판단한 김정일은 이 문제를 풀 작물로 감자에 주목했다. 감자는 가뭄에 강하고 생육기가 짧아 산간지대 등 척박한 지역에서도 비교적 재배가 쉽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해 12월 게재한 밀가루 음식 전시회 현장 사진.
노동신문은 이 전시회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1998년 3월 김정일 당시 조선노동당 총비서는 ‘감자는 고산지대의 쌀’이라는 구호 아래 ‘감자농사혁명’을 강조했다. 백두산이 위치한 양강도 대홍단군(郡)을 감자 농사의 본보기 단위로 지정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북한이 대홍단군 감자 농사 인력으로 제대군인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북한 언론 등에 따르면 척박한 대홍단군을 감자 산지로 만들기 위해 1999년 3월과 10월, 제대군인 1200여 명을 집단 배치해 ‘제대군인 마을’을 만들었다. 두 차례의 합동결혼식을 통해 부부 수백 쌍이 탄생했고, 1년 뒤 이들 가정에서 쌍둥이 여섯 쌍을 포함해 모두 875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북한 당국은 이때 옥수수에 이어 감자요리를 개발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1000개 이상의 요리법을 만들어 주민에게 보급했다. 최근 북한 언론을 보면 당국은 농업 부문에서 밀 재배 면적을 확대하고, 밀가루 생산공정을 늘리며, 요리대회를 열고 요리 프로그램 등을 통해 각 가정에 요리법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 같은 사실에 비춰볼 때 10여 년 뒤에는 민족 음식을 강조하며 전통 음식을 적극적으로 발굴한 바 있는 북한 주식이 서양처럼 빵이 될지도 모르겠다.
김 양 희 기획재정부 남북경제과 사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