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92023.05.

국가보훈처와 구글이 온라인 플랫폼 구글 아트 앤 컬처에 공개한 ‘한국의 비무장지대(Korea’s Demilitarized Zone)’ 전시 메인 화면.

평화통일 현장


첨단 기술로 분단 공간을 체험하다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 기념
‘한국의 비무장지대’ 온라인 전시

전시에 그림이나 사진, 영상, 자료가 많이 담기면 ‘보는 전시’다. 보고 듣고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면 ‘체험 전시’다. 기록하고 곱씹을 정보가 가득하면 ‘유익한 전시’고, 전시 공간을 오가면서 가슴이 울렁거리면 ‘감동을 주는 전시’다.

구글의 비영리 온라인 전시 플랫폼 ‘구글 아트 앤 컬처(artsandculture.google.com)’가 2월 22일 공개한 ‘한국의 비무장지대(Korea’s Demilitarized Zone)’ 온라인 전시는 앞서 언급한 특징을 두루 갖췄다. 자칫 딱딱하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DMZ라는 주제를 역사, 자연, 예술 등 세 가지 테마 아래 60여 개 분야 5000여 점의 자료로 풀어냈다. 볼 것, 체험할 것이 가득해 유익할 뿐 아니라 깊은 감동까지 느끼게 한다.

‘한국의 비무장지대’ 온라인 전시는 역사, 자연, 예술 세 가지 테마로 구성돼있다.
눈요기용 사진이나 자료에다 허술한 해설 몇 줄 덧붙인 비주얼 전시가 아니다. 6·25전쟁 관련 주요 사건부터 인물, 장소를 비롯해 접경지역 자연, DMZ의 예술성까지 조망하는 이 전시는 특히 진지한 역사의식이 돋보인다. 전시를 다 관람한 뒤 메인 화면으로 돌아가니 아스라이 보이는 군사분계선 너머 DMZ 의미가 다가오면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일반인은 방문하기 어려운 DMZ 지역을 수십억 개의 파노라마 이미지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도록 표현한 점도 눈길을 끈다. 이 전시는 구글 아트 앤 컬처 홈페이지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등에서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 전시 기한은 무제한이다.
작전명령서, 경찰 기밀문서로 보는 6·25전쟁
이 전시는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것이다. 국가보훈처와 구글은 전쟁기념관, 유엔평화기념관, DMZ 박물관 등 9개 기관과 협력해 3년에 걸쳐 데이터를 수집했다. 6·25전쟁 당시 사진, 영상, 지도, 편지, 문서 등을 차곡차곡 모은 뒤엔 빛바랜 아날로그 자료를 구글의 ‘아트 카메라’ 기술을 활용해 센티미터 단위로 촬영했다. 그렇게 제작한 수백, 수천 장의 초고해상도 사진으로 하나의 디지털 작품을 만들었다.

이 전시는 역사, 자연, 예술 순서로 DMZ 지역을 더듬는다. 첫 번째 테마 ‘역사’에선 국가기록물에 고스란히 담긴 6·25전쟁의 중요한 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제6사단 작전명령 제31호’는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 보병 제6사단 사령부에서 작성한 문서. 당시 문산, 의정부, 춘천, 홍천, 동해안 등 여러 곳을 북한군이 기습한 내용과 제6사단의 연대별 작전 투입 지역 전투명령 사항 등이 기록돼 있다, 실탄 운반 관련 행정사항, 통신망 확보 등에 관한 보고 등도 눈길을 끈다. 그 내용을 보자.

1950년 6월 25일 보병 제6사단 사령부에서 작성한 ‘제6사단 작전명령 제31호’. 6·25전쟁 발발 당시 전투 상황이 기록돼 있다.
“적은 25일 05:00시를 기하여 라디오 방송을 하는 동시에 춘천, 가평 방면에 인민군 제2사단, 자은리 방면에 인민군 제12사단, 합하여 2개 사단의 대병력이 전차를 선두로 38선 전역에 걸쳐 전면적으로 기습을 감행, 07:00에는 275고지 전방에 전차 20여 대와 장갑차 30여 대가 출현하고 있음.”

글씨를 읽으려고 작전명령서를 크게 확대해도 아주 선명하게 보인다. 해상도가 높아 종이의 두께와 질감, 펜선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다. 앞서 언급한 구글의 아트 카메라 기술 덕분이다.

‘사단작전 경과요도’는 6·25전쟁 발발 직후부터 1952년 3월까지 제6사단의 전투 경과를 보여주는 지도다. 1950년 6월 25일 부분을 보면 제6사단 제7연대·제2연대·제19연대의 전투 이동 경로가 초록색 선으로, 북한군의 경로는 빨간색 선으로 표시돼 있다.

이 지도 최상단에 기록된 것은 1950년 10월 26일 초산전투. 중공군 참전으로 국군이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국군 제6사단은 제7연대를 선두로 압록강변 초산을 점령했다. 지도 왼쪽 하단에 표기된 통계표에도 눈길이 갔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2년 8월 7일까지 제6사단 예하 부대와 교전한 북한군 및 중공군 규모, 무기류 현황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어 전쟁의 참상을 느낄 수 있었다.

국군 제6사단의 전투 경과를 알 수 있는 ‘사단작전 경과요도’. 국군 이동 경로는 초록색, 북한군 이동 경로는 빨간색으로 각각 표시돼 있다.
6·25전쟁 중 국내 상황을 자세히 정리한 경찰 기밀문서도 이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1951년 2월 19일 작성된 ‘치안일보 제126호’에는 경상남도, 전라북도 경찰서 및 철도경찰 본대에서 보고한 전투 상황이 적혀 있다. 작전명령서, 지도, 경찰 기밀문서 등 물적 증거를 들여다본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 현대사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국가기록물을 통해 보는 정전협정’은 1951년 정전협정 관련 논의를 시작한 회담 개회부터 1953년 정전협정 체결까지의 순간을 영상과 사진으로 되돌아보게 해뒀다. 역사 교과서에 수록돼 눈에 익은 1953년 정전협정 회담장 사진 외에 정전협정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 연설문 원고, 외무부의 정전협정문, 1953년 8월 8일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식 영상 등 처음 보는 자료도 많아 시선을 떼기 어려웠다.
DMZ 용늪 보며 바람 소리 감상
전시의 두 번째 테마 ‘자연’ 섹션에서는 DMZ 일원으로 성큼 들어간다. DMZ는 지구상에서 오직 한반도에만 자라는 특산식물이 터를 잡은 곳이다. 봄의 절정에 노란 꽃을 피운 뒤 염주 모양 열매를 맺는 개느삼(천연기념물 제27호), 별 같은 꽃을 피우는 모데미풀 사진이 눈길을 끈다.

‘한국의 비무장지대(Korea’s Demilitarized Zone)’ 전시에서는 강원도 양구 용늪 등 DMZ 지역에서 채집한 현장 소리도 들을 수 있다.
DMZ에는 이외에도 희귀식물이 많다. 보라색 종 모양 꽃이 아름다운 미치광이풀, DMZ 넓은 습지를 지키고 있는 낙지다리, 한여름에 연노랑 꽃을 피우는 긴잎꿩의다리, 한지 원료인 산닥나무 등이 그 주인공.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이 꽃들의 향기를 직접 맡아보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웠다.

DMZ 인근 남과 북 모두에서 관찰된다는 식물 참배암차즈기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강원도 양구군 대암산, 도솔산, 사명산 등 해발 1000m 이상 높은 산에 둥지를 트는 참배암차즈기처럼 사람도 철책선 넘어 남북을 자유로이 오가는 장면을 상상해봤다.

DMZ 일대에 서식하는 미치광이풀(위)과 참배암차즈기.

이 전시가 관람객에게 실감 나는 경험을 선사하는 이유는 두 눈으로 DMZ 곳곳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해당 지역에서 전문가들이 직접 채집한 바람과 강물 등 자연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강원도 양구군 펀치볼, 한탄강 등 DMZ 내 중요한 장소를 360도 이미지로 캡처해 3차원(3D) 모델링한 이미지가 시각적 쾌감을 느끼게 한다면, 자연의 소리를 고스란히 되살려내는 스트리트 뷰 기술은 몰입감을 더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층 습지로 대암산 정상 부근 해발 1280m 고지에 위치한 용늪 소리를 재생하니 이내 풀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마치 DMZ 접경지역 한가운데 선 듯한 기분이 든다.

DMZ 일원에 서식하는 동물을 만나고 싶다면 전시장에서 ‘DMZ 지역에 사는 동물들’ 아이콘을 클릭하면 된다. DMZ 일대는 6·25전쟁 이후 70년 동안 사람 접근이 차단됐다. 그 덕에 지구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생태계가 구축되고 야생동물 천국으로 변모했다. 전쟁으로 훼손된 생태계가 물의 순환, 기후 조절, 토양 재생, 오염 물질 정화 등을 거쳐 회복한 모습은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야생식물, 멸종 위기 동물 DMZ에 집단 서식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현재 DMZ 일원에는 식물, 포유류, 조류, 양서파충류, 육상곤충, 담수어류, 저서성(底棲性) 대형 무척추동물, 거미 등 8개 분야 총 6168종의 야생생물이 살고 있다. 한국의 멸종 위기 야생생물 267종 중 102종(38%)이 서식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세계적 멸종 위기종인 두루미의 월동지로 꼽힌다.

천연기념물 제217호이자 멸종 위기 야생동물 1급인 산양은 DMZ 주변 산악지역 바위산에 주로 머문다. 산양 털은 바위와 비슷한 회갈색이라 멀리서 발견하기 쉽지 않은데 온라인 전시에 그 보기 힘들다는 산양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듯한 동그란 눈동자가 귀엽고 앙증맞다. 이 외에도 멸종 위기종 사향노루를 비롯해 표범장지뱀, 수달, 검독수리, 열목어, 노란목도리담비, 반달가슴곰, 삵의 모습이 보인다.

세 번째 테마 ‘자연’에서 돋보이는 전시는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군부대 승인 없이는 들어가지 못하는 DMZ 일대와 접경지역의 과거, 현재, 미래를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해 예술 작품으로 구현한 것이다. 2017년 남북한이 DMZ 내 감시초소(GP)를 폭파한 뒤 남은 재료를 활용해 제작한 미술작품이 대표 사례다.

‘한국의 비무장지대’ 전시 예술 섹션에서는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발표된 DMZ 관련 회화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
2월 22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한국의 비무장지대’ 공개 개시 및 헌정 행사에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이 온라인 전시를 통해 6·25전쟁 참화를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의 놀라운 70년 역사를 전 세계에 알리게 됐다”면서 “DMZ와 민간인통제선 일원의 주요 역사, 자연, 예술을 깊이 있고 흥미롭게 다룬 사실상 최초의 온라인 전시”라고 평가했다.

70년 가까이 인적이 끊긴 DMZ는 세계사적으로 독특하고 의미가 깊은 장소다. 자연생태와 예술 측면에서도 큰 가치를 지녔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DMZ의 가치를 일깨우는 격조 높은 길라잡이 구실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앞두고 DMZ를 주제로 한 온라인 전시를 감상하며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