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92024.5.

탈북민 정착 이야기Ⅰ

북한이탈주민 출신 영화감독 김규민

“영화의 힘으로 북한 인권 실상 알리고 싶어요”

영화 속 배우를 꿈꾸던 남자가 훗날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이 됐다는 건 별반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가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에서 살게 된 사람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바로 북한이탈주민 출신 1호 영화감독 김규민 씨 이야기다.

“북한에서 살았을 때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글도 곧잘 쓴다는 칭찬도 들었고, 그래서 평양도 자주 왔다 가고 전국대회에 나가보기도 했죠. 쉽게 말해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자신의 희망대로 직업을 갖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북한이지만, 그런 대로 상류층 가정에 속했기에 그의 꿈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춘기 시절 우연히 듣게 된 한국 라디오 방송이 그를 흔들어놓았다. 처음에는 여성 아나운서의 보드랍고 친근한 목소리에 호기심을 갖다가 자신도 모르고 있던 북한의 현실, 대한민국의 발전상, 세계 속에서 북한의 고립된 위치 등을 하나둘씩 알게 되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통해 북한 체제의 민낯 고발
북한에서 성공이 보장된 대학생이 된 다음에도 의문은 깊어졌고, 여러 되바라진(?) 사건들을 벌인 그는 결국 자퇴 형식으로 대학을 포기했다. 그러다가 1999년, 북한 지방선거 당시 김일성 주석의 사진이 붙어 있던 투표소를 부순 사건으로 체포됐다. 얼마 후 공개 처형된다는 정보에 부모와 친지, 지인들도 어찌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그는 사즉생의 각오로 쇠못을 삼켰고, 병원으로 이송된 뒤 화장실 핑계를 대고 틈을 타 탈출을 감행했다. 이후 중국으로 넘어가 2001년에 비로소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다.

정착 초기에 그는 조용히 배 농사를 하며 살고자 했다. 그런데 그의 정착생활을 도왔던 나주경찰서 김석주 형사로부터 “정말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라”는 조언을 듣고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원래 꿈은 배우였지만 북한 말씨와 외모가 장벽으로 다가왔다.

“영화를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 고민을 들은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감독이 돼보는 것이 좋겠다. 감독은 본인이 시나리오를 쓸 수 있고, 반면에 배우는 그냥 시나리오를 읽는 거니까.’ 그러면서 덧붙이시길 ‘또 본인 영화에 본인이 출연해도 되니까’. 그 말을 듣고 바로 감독이 되겠다고 했죠(웃음).”

김 씨는 연출부 막내부터 차근차근 영화 제작의 A to Z를 익혔고, 바라던 연기도 해볼 수 있었다. 2005년에는 영화 ‘국경의 남쪽’에 조감독으로 참여했고, ‘크로싱’(2007), ‘포화 속으로’(2010) 등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에 스태프로 참여했다. 그러면서 ‘착각’과 같은 단편영화를 만들며 경험을 쌓다가, 2011년에 북한에 살던 한 모자(母子)의 비극적인 삶과 암울한 현실을 그린 장편영화 ‘겨울나비’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북한 인권 문제는 현재진행형
개봉 전부터 언론을 중심으로 화제가 됐던 이 작품은 국내외에 북한의 식량난과 인권 문제 등에 대한 화두를 던지기에 충분했다. 참혹한 북한 주민의 실상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에 경악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존귀한 가치에 대한 명징한 메시지를 읽고 감동한 관객도 많았다. 이후 그는 김정은의 암살 명단에 오른 탈북민을 다룬 다큐멘터리 ‘퍼스트 스텝’(2018),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배경으로 황해도에 살던 한 비극적인 가족 이야기를 담은 영화 ‘사랑의 선물’(2019)을 통해 북한의 인권 문제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주목을 받았다. ‘사랑의 선물’은 영국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고, 영예의 영화제에서 우수상, 퀸즈 세계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 국내외 20여 개 영화제에서 소개되고 노미네이트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지금 우리에게 인권, 자유는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고 누구든 부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선을 돌려 잠시 북쪽만 바라봐도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김 씨의 최신작인 다큐멘터리 ‘통일오라’를 살펴보면, 북한 인권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난다.

주인공 김보빈은 1990년대 대기근 시기에 탈북해 중국으로 넘어왔다가 인신매매 위기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했지만 중국 공안에 체포돼 강제 북송된다. 교화소에서 온갖 가혹행위로 점철된 3년을 보낸 주인공은 다시 탈북해 결국 2012년에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다는 이야기다.

김 씨는 부조리한 현실 앞에 절대 약자인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고난과 아픔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주인공의 주변 사람들, 감옥에서 만난 지인들의 증언이 덧붙여져 지옥같이 참혹한 인권 말살의 실태를 고발한다. “제 영화를 본 어느 관객은 ‘왜 이렇게 북한 사람을 고통스럽게 표현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어요. 영화 상영을 위해 현실의 극히 일부밖에 표현하지 못한 것인데도요.”

영화 속 주인공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에 정착해 다섯 자녀의 어머니이자 성공한 기업가가 됐지만, 이러한 사례는 매우 드문 경우다. 김 씨는 많은 탈북민들, 특히 여성들이 인권 유린을 겪으며 고초를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북한의 인권 문제가 알려지기 시작한 1990년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설명하는 그다.

일상에서 통제와 형벌이 만연하게 이뤄지고 있고, 구금시설과 정치범 수용소는 전국 어디에나 있다. 탈북민에 대한 가혹하고 패륜적인 처벌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북한 체제의 모든 것은 김정은 정권의 공고화에 집중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는 별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어요. 오히려 해외에서 더 큰 반응을 보이죠. 제 영화를 통해 북한 체제의 부조리함과 인권 문제가 더 많이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럼으로써 평화통일의 당위성과 중요성이 우리 국민에게 각인됐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 이 종 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