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92024.5.

북한은 1월 16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기구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진단

북한 대남기구 폐지와 후속 조치에 담긴 함의

신냉전 주도권 강화·한류와
‘민심 이반’ 차단 목적
北 주민 인권 개선과 인식 변화 위해
국제 공조 절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이후 북한은 대남기구와 조직들을 폐지하고, 남북이 체결한 각종 합의서까지 폐기에 나섰다. 북한의 대남 노선 변화의 대내외 요인과 후속 조치에 담긴 함의를 살펴봤다.

北, 교전 중인 '2국가 관계'로 남북관계 규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작년 12월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연설에서 남북관계를 교전 국가 관계로 규정하면서 “현실을 냉철하게 보고 인정하면서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 부문의 기구들을 정리·개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올 1월 15일에 개최된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는 “북남관계가 더 이상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완전한 두 교전국 관계라는 현실”이라고 규정했다.

김정은은 “조선반도에서 병존하는 두 개 국가를 인정한 기초 우(위)에서 우리 공화국의 대남정책을 새롭게 법화했다”면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헌법에 반영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하는 교육 교양사업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2월에 있었던 건군절 연설에서도 “한국 괴뢰 족속들을 제1의 적대 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유사시 그것들의 영토를 점령·평정하는 것을 국시로 결정한 것은 우리 국가의 영원한 안전과 장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천만 지당한 조치”라고 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조국통일범민주연합 북측본부,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등 대남기구와 조직들을 폐지했다. 이와 함께 남북 경제협력과 관련된 법안도 폐지하고 남북 간에 체결된 경제협력 관련 합의서도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그동안 남과 북이 체결한 각종 합의서들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규정한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를 전제로 이뤄져왔는데 이를 공식적으로 폐기한 것이다. 김정은은 북한 헌법에서도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을 삭제하도록 지시했고,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도 철거했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민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대남 관계에서 ‘민족’과 ‘통일’ 개념을 지운 것은 외형적으로 보면 분단 이후 지금까지 민족과 통일을 북한 체제와 3대 세습의 정당성으로 삼았던 북한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모순되는 방향으로 근본적으로 선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 체제의 정당성 및 정통성과 김일성, 김정일 선대의 민족관과 통일관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김정은과 북한이 자신들의 근본을 부정하는 국가 노선과 대남 노선을 선택하게 만든 외적 요인을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내남 노선 변화의 대외적 배경
우선 김정은이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내세우는 핵 능력 고도화를 통해 북한이 미국과 동등한 핵보유국이 됐기 때문에 그 바탕에서 남한에 대한 선제적 핵사용도 가능하다는 무력 통일에 대한 자신감과 이를 통한 대남 협박이다. 여기에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의 심화와 확대를 통한 국제적 진영 능력을 북한이 주도적으로 강화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최초의 미·북 정상회의를 전후해 2018년 이후 북·중·러 북방 3각 협력을 복원한 상황에서 한국도 지난해 한·미·일 3각 협력 체제를 복구했다. 이처럼 한반도에 신냉전적 구도가 형성되는 가운데 작년 하반기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급속하게 강화된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군사 협력을 매개로 김정은은 냉전 구도를 확대·강화하는 대외정책을 추진하면서 미국과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고영환 통일부 장관 특별보좌관은 민주평통이 2월 23일 개최한 ‘북한의 대남기구 폐지와 관련한 긴급 포럼’에 참석해 북한의 대남 노선 변화 배경에 대해
“남한의 문화적, 심리적, 사상적 영향으로 북한 체제가 잃는 정치적 타격이 더 크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특히 남한에 대한 선제적 핵 사용 가능성은 2년여 전부터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단거리 미사일 실험 빈도가 증가해온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즉, 선제적 핵 사용 가능성을 바탕으로 남한에 대한 무력 통일의 여지를 공개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유사시 핵 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력량을 동원하여 남조선 전 령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나가야 하겠다”고 발언했다. 남한에 대해서는 “우리 핵 무력의 전쟁 억제라는 본령 이외의 제2의 사명에 대하여 명백히 언급한 바가 있다. 만약 적들이 전쟁의 불꽃이라도 튕긴다면 공화국은 핵무기가 포함되는 자기 수중의 모든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우리의 원쑤들을 단호히 징벌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남한에 대한 선제적 핵 사용은 이미 김여정이 2022년 4월 5일 담화를 통해 “전쟁 초기에 주도권을 장악하고 타방의 전쟁 의지를 소각하며 장기전을 막고 자기의 군사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핵 전투무력이 동원되게 된다”라고 한 발언에서 나타났으며, 당시 김정은도 남한을 향한 선제적 핵공격을 공식화한 바 있다.

대남 노선 변화의 대내적 요인
대외적 요인이 핵 능력을 바탕으로 한 공세적 측면에서의 대남 노선 변화의 요인이라면 수세적, 방어적 차원에서 북한의 대남 노선 변화를 해석하면 북한 내부 결속과 주민 사상 고취 등의 내부 요인들이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북한이 기존 자신들의 정체성과 모순되는 방향으로 대남 관계를 선언한 것은 북한 내부 체제 유지 능력에 대한 불안의 방증일 수 있다.

김정은이 현재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최악의 인권 및 독재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로 3년 동안 국경을 폐쇄하면서 더욱 악화된 북한의 경제 상황이 야기할 수 있는 주민들의 민심 이반이다. 김정은으로서는 조속한 4대 세습 기반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2월 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긴급 주최한 관련 포럼에서 북한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 통일부장관 특별보좌관은 북한의 노선 변화의 내적 배경으로 한국과의 교류·협력 등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물질적 이득보다 한국으로부터 북으로 넘어오는 한류 등 문화적, 심리적, 사상적 영향으로 북한 체제가 잃는 정치적 타격이 더 크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북한이 ‘반동사상배격법’, ‘청년사상강화법’, ‘평양문화어보호법’등 각종 법안들을 연이어 내놓고 주민 통제를 강화하는 것은 북한이 한국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SAND연구소가 입수한 북한 보안 당국의 문헌 학습 영상에서도 북한의 지방 중학교 교사가 남한의 영상물을 시청하고 북한 체제에 불만을 가져 자유·민주적 정부 수립을 위해 체제 전복까지 계획하다가 처형됐다는 사례가 있다.

향후 전망과 우리의 대응
이런 북한의 움직임이 향후 남북관계와 우리에게 미칠 영향, 그리고 우리의 대응 방안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민주평통이 2월 주최한 같은 포럼에서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이 대남 관계를 적대 관계로 선포함으로써 북한이 전쟁 준비 상시화와 강화를 추구함으로써 북한 경제에 더욱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김정은이 경제와 군사력의 ‘병진’이 아닌 명백한 ‘선군’ 정치 부활을 선택함으로써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안정적 안보환경을 유지해야 하나 오히려 교전국 관계 선포로 과도한 안보위기를 조성하고 이것은 결국 북한 경제를 더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 경제를 더 어렵게 하고 체제 내구성 약화를 가져올 수 있는 조치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대남 노선 변화가 근본적인 변화라기보다는 전술적 차원에서의 변화로 볼 수 있다. 북한은 그동안 1국 2체제인 ‘고려연방제’를 평화적, 정치적 통일 방안으로 제시해왔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통일·민족 개념 포기를 이전의 통일 노선이나 대남 노선과 반대되는 방향으로의 변화라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른 해석일 수 있다.

1월 2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 참 석해 발언하는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 (뉴욕=AP/뉴시스)
평화통일이든 무력통일이든 남한 내에서 직간접적으로 북한을 추종하는 정치 세력과 이에 동원되는 대중적 규모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이 현재 대한민국 내부 상황이며, 북한의 평화적 통일 방안인 연방제 통일을 위한 남한 사회 내부의 기층은 이미 상당히 구축돼 있다. 북한의 노선 변화는 대남 사업의 토대 위에 무력 사용 위협을 통해 남한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의 무력통일 주장에 대해 남한 내에서 북한의 전쟁관도 수용해야 한다는 공개적인 언급이 나오는 등 북한의 무력통일 동조 세력도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남한의 내부 상황이 4·10 총선 이후 북한에 유리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전개 가능성도 고려한 선제적 공세일 수 있다.

이와 함께 현재 우리 정부가 내세우는 자유·통일에 대한 국내외적 추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북한의 노선 변화가 통일에 대한 국내적 무관심, 북한을 민족보다는 별개의 국가로 보는 대북 인식, 그리고 따로 사는 것이 낫다는 젊은 세대의 통일 인식 등에 영향을 미칠 소지도 있다. 작년 8월 18일 미국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개최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자유·평화·통일을 담은 3국 정상 간 합의문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소재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평화·통일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북한 지도부와 북한 주민들을 분리하는 통일정책은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한 내 인권 개선을 지원하고 통일 비용을 감당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북한 주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또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과 인식 변화를 위한 가용한 수단들을 활발하게 전개해 극소수 북한 지도부를 제외한 북한 내부의 변화를 지원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이와 함께 올해부터 향후 2년간 한국이 수행할 유엔 안보리 이사국 활동에서도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북핵 문제와 함께 해결해나가야 할 북한 문제의 본질이다. 이 때문에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에 대한 지원과 북한 체제 변화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남 광 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
매봉통일연구소 남북총선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