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92024.5.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15~17일(현지시각) 실시된 러시아 대선에서 득표율 87.28%로 압승하며 5선에 성공했다.
18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 열린 푸틴 대통령의 대선 승리와 크림반도 합병 10주년 기념 음악회. (모스크바=AP/뉴시스)

국제

러시아 대선 결과 분석과 북·러 정상회담 전망

푸틴 압승 ‘강대국 러시아’
민족주의 성향의 발로
북·러 회담, 북·중·러 연대 신호탄 되기 어려울 것

예상은 벗어나지 않았다. 3월 17일 치러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압도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푸틴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은 역대 최고치였다. 이번 러시아 대선 결과 분석과 함께 북·러 정상회담 등 향후 한반도 정세를 전망해봤다.

77.49% 투표율에 득표율 88.48%. 투표율과 푸틴 대통령의 득표율 모두 지난 2018년 대선보다 10%포인트 가량 높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침묵하지만 비판적인 국민 다수가 있어 투표율은 70% 이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

푸틴 대통령에게 이번 대선은 어느 대선보다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가 필요했던 선거였다. 2년 넘게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민들에게 큰 고통을 주었고, 프리고진 반란 사건 등으로 서방에서 그의 권력 균열 가능성이 제기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의 의문사와 예상외의 지지를 보인 보리스 나데즈딘의 대선 출마 금지 등이 푸틴의 선거 결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일각의 예상도 무색해졌다. 이번 선거로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이 공고함을 대내외에 과시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지속과 미국·나토와의 대립 외교 지속의 국민적 승인을 확보한 셈이다.

5기 푸틴 정부 現 정책 유지할 것
푸틴 대통령이 이처럼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은 근본적으로 ‘강대국 러시아’를 원하는 민족주의적 성향에 기인하는 것 같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1차 대전 패배에 따른 상실감이 독일 국민들로 하여금 히틀러라는 강력한 애국 민족주의 지도자를 만들어내게 했듯이, 소련 해체로 과거 미국과 맞선 강대국의 지위를 상실한 러시아 국민들이 강한 러시아를 구현할 푸틴이라는 지도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1990년대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러시아의 안정을 구현했던 메시아적 이미지에 더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구의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음에도 러시아 경제의 안정을 유지한 점도 국가 위기 시에 지도자를 교체할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시킨 것으로 보인다.

5기 푸틴 정부의 정책 방향은 현재 정책의 연속선으로 봐야 할 것이다. 우선 경제는 서방 제재에 대응해 경제 안보에 중점을 둔 위기관리를 하고 있어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기 어렵고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준 경제 각료들의 교체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수입 대체화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인도, 동남아 등과의 경제협력 다각화를 지속할 것이다. 전쟁 중에 외교 안보 정책도 변화가 있을 가능성은 적다.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와의 협력 지속과 아울러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에 계속 중점을 둘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국민들의 전쟁 피로감과 경제적 고통이 커지고 있어 사회정책 예산을 늘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보안 관리와 언론 통제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2023년 9월 13일 러시아 동부 아무 르 지역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보스토치니 우주기지=AP/뉴시스)
북·러 정상회담 가능성은 높다. 지난해 9월 13일 북·러 정상회담에 이어 올해 1월 최선희 외상의 모스크바 방문을 통해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 요청이 있었고 푸틴의 답방 의사도 페스코프 대통령 대변인 등에 의해 확인됐다. 시기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빠르면 5월 중국 방문 전후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고, 늦어도 9월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이나 10월 일대일로 정상포럼을 전후해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쇼이구 국방장관의 평양 방문 이후 북·러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두 국가가 서로 필요한 무기와 경제적 지원을 교환할 필요가 관계 발전을 추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기저에 양국의 대외 전략적 상호 접점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러시아는 한·미·일 공조 강화와 나토 연계를 통한 반중 및 반러 글로벌 안보 구도 출현에 대응해 북한을 교란 수단으로 활용하려 하고, 북한은 그간 추진해 온 미·북 관계 개선 시도보다는 진영화하는 국제 질서에 편승하려는 전략적 변화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크라이나 전쟁 종료와 미국 대선까지는 북·러 관계 개선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그 이후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속도는 가변적이지만 장기적으로 그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푸틴의 평양 방문으로 북·러 협력이 전방위로 확대될 것으로 보기에는 일정한 제약이 있다. 안보리 이사국으로서 표면적으로라도 유엔 제재를 준수해야 하는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거나 군사기술 협력의 수준을 핵무기까지로 확대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토권을 가진 안보리 이사국의 지위를 러시아가 상실한다면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급감할 수밖에 없다. 북·러 접경지대에 새로운 상업단지 건설, 나진·하산 사업 정상화, 루블 기반 결제 시스템 구축 그리고 에너지 협력 등 많은 경제협력 의제가 논의될 것이지만 지난 20년간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양국 경제협력이 갑자기 활성화되기는 어렵다. 더욱이 최근 러시아 경제 상황이 북한에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하기에는 어렵기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이 문서 서명을 위한 만남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무기 거래에 대한 대가로 경제 협력을 강화하려는 러시아와 핵무기, 미사일 발사체, 위성 부문에 대한 실질적인 군사적 지원을 더 바라는 북한 사이에 적정선의 거래 수준을 양쪽이 모색하게 될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에도 양국 협력엔 한계
우려되는 점은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으로 푸틴 대통령의 의도와 관계없이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의 일차적 목적은 김정은 정권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공식적으로 안보리의 추가 대북 제재에 대한 반대를 공식적으로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최근 인터뷰에서 북한이 자체 핵우산을 갖고 있다고 말한 푸틴 대통령이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북한에 대한 위협이고 이에 대응해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고 실험 발사하는 것이 자위권임을 인정하는 언급이 나온다면 러시아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하고 북핵 문제에 대한 과거의 전향적 입장에서 후퇴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4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 알렌산더홀에서 열린 21개국 대사 신임장 제정식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 회복은 한국에 달려 있으며 러시아는 관계 회복을 위한 준비가 돼 있다”라고 말했다. (모스크바=AP/뉴시스)
북·러 밀착 이후 북한의 대중 의존도가 일정 수준 하락할 가능성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북·러 관계가 중국의 대북 레버리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는 물론 아니다. 중국에게 북한은 전략적 자산이면서 동시에 부담도 되고 있다. 북·중·러 관계는 과거 냉전시대와는 달리 ‘반미’라는 부정 담론과 긍정적 발전 담론이 없는 소극적 연계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중·러 밀착은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여론 확산을 가져오고 유엔 안보리의 무력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중국에게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 중국은 북·러 밀착에 일정 거리를 두면서 중국 특유의 모호성을 유지하고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접근이 북한과 러시아와는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킬 계기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이번 푸틴의 평양 방문이 북·중·러 연대의 신호탄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원칙적 대러 외교·세심한 양국 관계 관리 필요
북·러 관계의 급진전은 대러 관계 관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북·러 간 군사협력에 대해서는 독자 제재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대러 관계를 관리하고 싶어도 북·러 관계가 고도화할수록 그 방안이 군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러시아의 전략적 중요성을 바탕으로 관계 관리를 지속할 의지는 분명히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 시각에서 러시아는 한반도 통일에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한반도의 인접 강국이다. 경제적으로도 큰 시장과 자원을 갖고 있으며, 유라시아 대륙의 물류 경유국이라는 점에서 전쟁 이후 한·러 관계 복원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당장 북·러 관계가 너무 밀착해 러시아가 핵무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군사기술을 지원하거나 북한의 핵 국가 지위를 인정한다면 한국 안보에는 재앙이 된다.

따라서 러시아의 국제법 위반에 대해 국제사회와 연대하고 전쟁의 고통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원칙적 대러 외교를 견지하면서도 세심한 대러 관계 관리가 필요하다. 우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 무기 제공은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전쟁 종료 후 건설적 양국 관계 복원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비제재 부문의 양국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고 양국 학자 교류 등 양국 소통 채널을 활성화해야 한다. 특히 러시아가 그간 북한 비핵화에 가졌던 전향적 입장이 변화하지 않도록 양국 비핵화 전문가 소통을 이른 시간 내에 개최할 필요가 있다.

엄 구 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