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12022.09.

도네츠크주 마우리풀 자유와 평화 광장에 설치된 예술 작품. 러시아의 군사작전으로 파괴된 건물과 평화의 상징물이 대비를 이룬다. ©연합

분석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밀착하는 북러관계

긴 안목으로
비핵화 환경 조성해야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가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배경과 이것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알아본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한 지 6개월이 훌쩍 지났다. 이번 사태는 해당 국가들과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소모전과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어 누구도 그 전도와 결말을 쉽게 예상하기 어려워졌다. 이번 전쟁을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러시아와 미국을 비롯한 서구세계 사이에서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비서구세계의 여러 국가가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이례적으로 자국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이번 사안에 대해 러시아를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지지·지원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전략적 협력관계 강화하는 북한과 러시아
북한은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이후 러시아에 대한 유엔 등 국제기구의 대러 규탄 및 제재 결의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이 나토의 지속적 동진·팽창 등 미국의 패권정책에 있다고 거칠게 비난했다. 또한 북한은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추진을 발트해의 군사적 균형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판하며 러시아를 두둔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는 그동안 견지해 온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입장에 기초해 유엔 안보리의 추가 대북제재 승인을 보류시키고 대북제재를 통한 압박 정책의 철회를 요구했다. 특히 러시아 외무부는 북한이 1년 반 이상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여전히 제재를 부과하고 있다며 북한의 미사일 발사 재개 상황에 대한 이해를 표명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러시아는 북한의 ICBM, SLBM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 차원의 규탄 성명에 반대해 그 채택을 기어이 무산시켰다.

이와 함께 북한과 러시아는 외교 당국 간 회담을 통해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북러공동선언 22주년(7.19.)과 조국 해방의 날(광복절) 77주년(8.15.) 등 각종 연대기적 일정을 계기로 친서를 교환하고 화첩을 발간하는 등 양자관계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도모했다. 러시아연방 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2021년 북러 교역 총액은 4만 469달러로 2020년 4,274만 달러에 비해 9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코로나19로 사실상 중단됐던 양국 간 무역·통상 부문 협력이 2022년 상반기부터 ‘단계적 회복’을 위한 방향으로 전환됐다. 이를 위해 신홍철 주러 북한대사와 체쿤코프 극동·북극개발부 장관이 회담을 가졌다. 러시아는 2022년 9월 5일부터 8일까지 이어지는 동방경제포럼에 북한 대표단을 공식 초청했다. 또한 북한에 대한 항공운항 제한 조치를 해제했고 북한 내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른 혼란 국면에서 신홍철 주러 북한대사와 모르굴로프 외무차관이 회동하여 백신, 의약품 지원 등 해당 사안에 대한 협력 문제를 협의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북한이 지난 7월 13일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했다는 점이다. 주지하듯 DPR과 LPR은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유로마이단 혁명을 통한 친러 정권의 붕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추진해 왔다. 그동안 두 공화국을 공식적으로 승인한 국가는 러시아와 시리아뿐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의 이 같은 조치는 국제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연히 우크라이나는 이에 강력 반발하면서 즉각 북한과 단교를 선언했고 미국과 EU도 해당 조치를 국제법 위반과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적대행위라고 비판했다. 현재 DPR·LPR과 북한은 해당 지역의 전후 재건 사업과 관련한 북한 노동자들의 파견 문제와 두 지역에서 생산되는 부품과 설비의 제공, 광물자원과 식량 교역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데일리 메일(Daily Mail) 등 일부 서방 매체들은 북한과 러시아가 10만 명의 북한군을 DPR과 LPR에 배치하는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어 그 진위 여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7월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인정했다.
사진은 지난 7월 14일 신홍철 러시아 주재 북한대사와 미로슈니크 러시아 주재 루한스크인민공화국 대사가 모스크바에서 만난 모습 ©연합
북한과 러시아 밀착의 배경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진행 과정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은 다음의 몇 가지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양국 모두 국제적 고립 상황을 타개·완화할 필요성이 있었다. 북한은 1993부터 1994년까지의 제1차 핵 위기 이래로 핵·미사일 프로그램 고도화 과정에서 국제사회로부터 강도 높은 제재에 직면했다. 특히 2017년 제6차 핵실험과 ICBM 발사 시험을 계기로 대북제재는 포괄적이고 전방위적인 성격으로 강화됐으며 핵심 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마저 이에 참여함으로써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따라서 작금의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사태의 발발을 통한 신냉전 경향의 출현은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라는 전통적 우방국들과의 관계 증진을 모색하고 국제적 고립을 타개·완화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쟁을 통해 미국과 서구세계의 포위·압박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자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지지·지원하는 국가의 등장은 러시아에게도 ‘가뭄에 단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미러 갈등의 지속적인 심화·악화 속에서 러시아는 동북아 지역 내 완충지대 유지를 위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확인했다. 러시아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 및 서구와의 관계 개선을 희구했으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버리고 독자적 세력권 유지·강화를 위해 진력해 왔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바이든 정부 출범과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이처럼 미러 관계의 악화 속에서 러시아에게 한반도 북부의 완충지대(우호적 국가) 유지에 대한 전략적 이해와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고도화를 우려하면서도 미국과의 갈등·대립의 심화 국면 때문에 해당 사안의 중요성을 부차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셋째, 북한의 대중 지렛대 확보와 열악한 경제 상황의 타개 필요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냉전 종식 이후 북한의 최우선 협력 대상은 중국이었다. 북한의 교역량 가운데 95%를 차지하고 있는 현황이 말해 주듯 중국은 다른 국가들과의 비교를 불가하는 절대적 위치를 점해왔다. 북중 양국은 피로 맺은 유대, 우정과 연대를 강조해왔지만 늘 상호 불신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중국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징적 사안에 대해 러시아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연대를 표명했다. 이는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물리적·비물리적 지원과 같은 보상 행위를 의무화할 것이다. 즉 북한은 대러관계 강화라는 전략적 행보를 통해 향후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일종의 균형과 견제를 위한 지렛대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또한 유엔 미승인국인 DPR과 LPR과의 경제 협력은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를 우회해 북한 경제에 유의미한 동력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과 러시아는 북러 공동선언 22주년(7.19.), 조국 해방의 날(광복절) 77주년(8.15.) 등 각종 연대기적 일정을 계기로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광복절 77주년을 맞아 해방탑에 헌화하는 북한 주재 러시아대사관 성원들 ©연합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러밀착, 북한 비핵화 의지 약화시키는 계기 될 것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로 서구 세력권과 유라시아 세력권 사이의 경쟁이 지속·강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한과 러시아 간 상호 지지·지원 경향과 양자관계의 강화 경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북러 간 교역량이 단계적으로 회복되는 가운데 러시아의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 북한 노동자의 DPR·LPR 진출, 자원과 식량의 수급, 제재 효과 감소를 위한 양자 간 가상화폐 거래 확대 등이 예상된다. 이와 함께 유엔 안보리 제재의 범위에 속하지 않은 각종 문화, 체육 등 민간 교류도 증가할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북한의 파병 문제는 여러 역사적·현실적 조건들을 고려할 때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발발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크게 약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라크, 리비아 사례와 함께 현재 우크라이나가 처한 상황은 ‘힘의 정치’가 통용되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작금의 현실은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포기·축소보다는 고도화에 대한 유인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더욱이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북러의 밀착은 비핵화 진전을 위한 중국과 러시아의 적극적 행보를 제약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비핵화 협상 재개, 비핵화 여건 조성을 희망하지만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대변되는 국제사회 내 세력권 분리와 북핵문제의 장기화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유럽의 서구 세력권,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유라시아 세력권 간 경쟁은 지정학적 단층대인 한반도에서 진영화와 대립·경쟁의 분위기를 고조시킬 것이다. 이 같은 부정적 여건에서 한국은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내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주축으로 자강을 추구하는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 등 역내 국가들의 과도한 대북 경사를 방지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북핵문제의 장기화를 고려해 근시안적 접근보다는 긴 안목에서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고 관리하면서 비핵화 협상의 재개를 위한 남북 간 및 국제적 환경 조성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장 세 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