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22021.12

우리고장 평화의 길

‘드나듬’의 평화를 위한
군산의 호흡을 마주하다



군산 하제마을과 불과 5m 남짓 떨어진 곳에 미군기지 소유의 탄약고가 지어졌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2005년, 탄약고 안전거리 확보를 이유로 주민 이주가 결정됐다. 법적인 절차를 무시한 미군의 일방적인 탄약고 설치로 하제포구에서 어업을 평생 직업으로 삼아 아이를 가르치고 먹히고 입히던 마을 주민들의 평화는 한순간에 빼앗기게 되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힘겹게 이겨냈고, 그 상처를 간직한 근대역사거리는 뉴트로 감성의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지만 군산의 아픔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2021년 7월 군산에 개관한 평화박물관에서 군산의 평화이야기를 배워본다.

지난 7월 개관한 군산평화박물관
미군이 자리 잡은 군산에서 마주하는 일상의 평화
  시작은 군산공항 활주로 사용료 폭증 청구였다. 군산공항 활주로는 예나 지금이나 미군의 소유이다. 민간기가 활주로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매년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지만, 이는 군산시민이 알 길도, 알 수도 없는 일이었다. 미군측의 부당한 사용료 청구는 시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동결되었다. 1997년 평화바람의 시작이었다. 이후 작은 미니버스를 구입해 전국을 다니면 평화를 외치던 시간들은 6mm 비디오 필름 1,500 통에 고스란히 기록되었다.

  이 필름들은 다섯 가지 주제를 가지고 다섯 가지 색을 입은 미니다큐가 되고, 평화를 지켜내는 사람들의 역사가 되어 박물관에 자리 잡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전략적인 미군기지 재배치가 이뤄졌다. 2004년 아파치 헬기부대 배치가 결정되었고, 2006년 미군의 국제폭격장이 신설됐다. 평화박물관 관계자는 국제폭격장의 경우 전 세계에서 근무하는 미군이라면 승진을 위해 꼭 다녀가야 하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주한 미군만이 사용 가능한 곳이 아니니 군산 옥도면 직도에 얼마나 많은 폭탄이 잠들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설명을 듣는 내내 한 가지 의문만이 머릿속을 맴돈다.

  ‘왜 몰랐던 것일까?’

  2018년 하제마을은 단 두 가구를 제외한 모든 주민이 이주를 완료했다. 현재 미군은 국방부에 하제마을 일대에 대한 토지 공여를 요구하고 있다.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과 발길이 닿지 않는 하제포구의 평화는 600년을 묵묵하게 버텨온 한그루의 팽나무가 지켜내고 있다.

  2021년 6월 25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48호로 지정된 팽나무는 더 이상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게 되었다. 박물관 관계자는 사람의 ‘ 드나듬 ’ 을 통해 토지 공여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 미군 측이 토지 공여를 포기하지는 않더라도 늦추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또한 평화를 지키는 방법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문제들, 차별, 젠더, 비정규직과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드나들며 우리가 이곳에 있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군산 평화박물관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평화 해설사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을 마친 후에는 주말을 이용해 직접 해설도 할 수 있다. 각자가 생각하는 시선과 방향이 다르기에 자신만의 색을 더해 설명하기도한단다. 아이들이 보는 평화는 어떤 모습일지 주말 나들이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최초로 경내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동국사 ⓒ한국관광공사
참회와 마주한 평화의 소녀상
  평화박물관을 나오며 근처의 동국사를 찾았다. 동국사는 일본 승려에 의해 1909년 금강선사라는 이름의 포교소로 개창되었다가, 1945년 해방과 함께 정부에 이관 되었다. 최근 동국사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더욱 많아진 것은 2015년 국내 최초로 사찰 경내에 조성된 평화의 소녀상 때문이다. 일본의 과오를 반성하는 불교적 참회의 의미로 참사문비 앞에 세워져 더욱 의미가 깊다. 저물어가는 초겨울 해를 등지고 선 소녀상과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자니 무척 쓸쓸했다. 조만간 모자와 목도리를 들고 다시 찾아야겠다.

수시탑 앞에서 진행된 군산시협의회 퍼포먼스                                          
아픈 역사를 딛고, 희망을 만든다
  군산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운동코스 월명산에는 예전 일본신사 자리에 세워진 수시탑이 있다. 돛을 펼친 배 모양을 형상화한 조형물은 높이 28m로 군산시민의 경제적 번영을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평통 군산시협의회는 2032 서울-평양공동올림픽 개최의 필요성을 군산시민에게 알리기 위해 이곳에서 평화의 친환경 비둘기를 날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군산은 평화와 자유를 빼앗기고 기름진 쌀을 앞에 두고도 보리로 끼니를 이어야 했던 아픈 역사를 안고 차근히 새살을 돋아 왔다. 군산은 매년 보리를 테마로 ‘꽁당보리축제’를 열고, 수제맥주 사업 양성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아픔을 해학으로 승화하며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평화통일을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닐까.

* 사진: 필자 제공

문지윤 청년자문위원 기자
(군산시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