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22021.12

미국 민간우주업체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이 11월 10일 케네디 우주센터 발사대를 이륙하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인 3명과 유럽 우주청(ESA) 우주인 1명이 탑승했다. ⓒ연합

진단

우주까지 날아간 군비경쟁,
단계적 대북 접근으로
한반도 평화와 안정 모색해야



미·중의 패권경쟁과 군비경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는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패권경쟁과 군비경쟁 사이에서 평화를 여는 우리의 길을 찾아본다.


  지난 9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인 4명이 스페이스X를 타고 사흘 동안 우주를 관광했다. 우주여행이 본격화되려면 수십 년이 더 걸리겠지만 우주여행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급격히 높아질 전망이다.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이 세계 최초로 우주에 지국을 설립하기로 한 결정이나, 한국과 미국이 합작해 2024년 무인 달 착륙선을 발사해 우주 환경을 모니터링하겠다는 계획 모두 우주개발 선도국들의 분주한 모습의 일면이다. 한국 정부도 내년부터 2031년까지 170여 기의 위성 개발과 총 40회의 위성 발사 계획을 내놓고 있다. 이런 계획들은 1969년 9월 인류가 아폴로 11호를 타고 최초로 달에 착륙했을 때보다 더 가슴을 설레게 한다.

지난 11월 3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소치 관저에서 국방회의를 주재하며 극초음속 미사일 시스템과
고출력 레이저 등 신무기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합
군비경쟁 우주까지 날다
  우주개발 경쟁은 군비경쟁과 겹치면서 전개된다는 사실 때문에 우려를 자아내기도 한다.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가 발간하는 연례보고서 《SIPRI YEARBOOK 2021》은 “우주에서의 분쟁 위험도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안보와 안전에 관한 논의는 계속 중단된 상태”라고 우려를 나타낸다.

  지난 11월 15일(현지 시각) 러시아는 지상에서 예고없이 발사한 미사일로 작동이 중단된 자국의 첩보위성을 파괴하여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난을 샀다. 이 사건으로 국제우주정거장에 있던 우주비행사 7명(러시아인 포함)이 우주선으로 긴급 대피하고, 초속 7km 이상으로 날아다니는 수만 개의 파편과 쓰레기들이 수년간 위험요소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 이전에도 미국, 러시아, 인도가 위성 요격 시험을 감행한 바 있다. 요컨대 우주개발이 민수용 대 군수용, 양면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지난 8월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시험은 우주 군비경쟁이 우려 수준이 아니라 위험 수준으로 악화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최대 핵보유국인 러시아는 극초음속 미사일을 이미 개발해 실전 배치했고 중국과 미국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중국은 핵무기를 포함한 전략무기 통제협정에 가입하지 않은 점을 이용해 미국과의 불균형적인 핵전력을 만회하기 위해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음속의 5배 이상으로 날아가는 극초음속 미사일은 대기권 밖으로 일정한 포물선을 그리며 비행하는 탄도미사일과 달리, 대기권에 머물며 비교적 낮은 고도로 비행해 조기에 탐지하기 어렵다. 서방 언론은 이번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시험은 “우주로 발사해 지구 궤도를 돌다가 낙하해 지상 목표물을 타격하도록 하는 시험”이었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극초음속 미사일을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대만과 동·남중국해 분쟁 시 조기에 전세를 주도하는 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거시전략으로 볼 때 극초음속 미사일은 탄도미사일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때문에 강대국들의 신형 군비경쟁 영역을 ‘대기권 및 우주’로 묶어 말한다. 압도적인 핵전력을 갖춘 미국이 추진하는 미사일방어망 시스템 구축이 중국의 안보정책

  결정 집단에게 어떻게 인식되었을지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로부터 대기권 및 우주에서의 군비경쟁을 중단하고 패권경쟁을 협력관계로 전환하는 데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난 11월 15일(현지 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화상으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
군비경쟁 가열 속 전략적 숨 고르기
  지난 11월 15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가진 첫 화상 정상회담은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및 세계경제 불황의 장기화, 기후 위기 가운데 양국 간 정치군사적 갈등이 겹쳐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결론은 ‘전략적 안정’을 위해 협력하자는 것이다. 달리 말해 총을 쓰지 않는 경쟁을 하자는 것이다. 총을 쓰지 않기로 한 것은 기후위기 해결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양국 간 경제적 상호의존의 영향, 그리고 국내적 문제의 비중이 작용했다. 미국에게 중국은 최대 수입국이자 3대 수출국이다. 정상회담 직전에 미·중은 대만 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파고를 진정시키는 데 합의했다. 왜 대만 문제로 미국과 중국이 군사 충돌 상황까지 치달아야 하는가? 잠정적이겠지만, 전략적 계산의 결과 적정 수준에서 협력과 경쟁을 하자고 판단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유지하고 있고, 대만해협에서 현상변경을 도모하는 일방적 행동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가 코로나19 및 경제 회복이 대만 문제로 중국과 각을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결과이다. 다만 중국의 일방적 행동을 지켜보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히 밝혀두었다. 이는 “대만 독립·분열세력이 도발하고 금지선을 돌파하면 우리는 부득불 단호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한 시진핑 주석의 입장과 맞서고 있다.

  앞으로도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완화되지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SIPRI 보고서는 코로나19 사태의 지속에도 불구하고 양국 모두 군비 지출을 계속 늘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2020년 세계 군사비 지출은 1,981억 달러로, 2019년보다 2.6% 높았으며 2011년보다 9.3% 증가했다. 세계 총생산(GDP) 대비 세계 군사비 지출 비중은 2020년에 0.2%포인트 증가하여 2.4%로 증가했다. 이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군사비 부담이 가장 크게 증가한 것이다. 2020년 세계 총 군사비 지출도 미국과 중국이 선도했다. 미국의 군사비 지출은 3년 연속 증가하여 2020년 7,780억 달러에 도달했는데, 이는 2019년 대비 4.4% 증가한 것이다. 중국의 군사비 지출은 2020년에 2,520억 달러로 추산되며, 이는 2019년 대비 1.9% 증가한 수치이다. 중국의 군사비 지출은 26년 연속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군비경쟁의 가열은 미·중 정상이 합의한 전략적 안정이 양국 간 패권경쟁의 숨고르기일뿐, 협력으로의 전환이 아님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신 한반도 평화 컨센서스’ 구상과 종전선언
  세계 경제의 중심이 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 이동한 지 30여 년이 되었고, 거기에 미국과 중국의 개별 이익이 겹쳐 미·중 패권경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그 수위와 방식을 양국의 정책결정 집단이 조정할 수 있는지가 변수이다. 앞에서 언급한 양국 간 패권경쟁의 양상은 촉진요소와 제약요소로 분류해 그 수위와 방식을 평가해 볼 수 있다. 경쟁의 촉진요소가 더 커 보이지만, 자멸의 공동 위험인식이 작용해 전략적 안정과 같은 미봉책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유동적인 상황 속에서 미·중 양국이 한반도 문제에 협력할 것인지, 아니면 갈등을 초래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과 직접 관련된 문제이다.

  지난 미·중 화상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이는 미·중 간 상호 관심사에서 한반도 문제의 비중이 높지 않음을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 특히 안보 문제는 양국에도 대단히 중요한 이슈이며, 이 문제에 대해 양국은 과거 갈등보다는 협력해 온 관행이 있다. 4자 회담, 6자 회담의 운영 경험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대화와 외교를 통한 접근’에 대한 반복된 확인이 좋은 예이다. 그리고 바이든 정부 들어서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 및 인도적 협력 의사 표명, 무엇보다 동맹국들과의 협의를 바탕으로 조율된 대북정책 추진은 한반도 평화에 우호적인 조건들이다. 다만 미·중 불신이 저변에 깔려 있고 그에 따라 남북이 상호 협력과 동맹진영과의 협력 사이에서 딜레마에 놓일 수 있는 점이 관심사이다. 미국과 중국 중의 선택이라는 프레임은 자살골에 가깝다. 평화와 안정을 목표와 수단 양 측면에서 중심에 놓는 것이 타당하다. 대선 국면에 들어선 한국 내 사정으로 2021-2022 시즌이 소강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근래 한·미·일 사이에서 한국정부가 제안한 종전선언에 관해 건설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어 평화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다. 상대를 겨냥하는 (것으로 보이는) 군사연습과 군사비 증액은 자제하고 불가피할 경우에는 공개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국은 민주주의, 경제성장의 바탕 위에서 최근 기후 위기 대응을 비롯해 국제사회의 보편가치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연결 지어 접근하는 성숙한 외교로 나아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뉴욕, 로마, 글래스고 등 일련의 가을 외교에서 탄소 제로 공약을 내놓고 종전선언 이니셔티브를 이어 갔다. 여기에 더해,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초당적인 통일·평화 여론을 형성하는 일이 대외정책만큼 중요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 ①평화·번영·생태를 비전으로 하고, ②남북협력과 국제협력을 조화시키는 방향성 아래, ③남북 합의 이행, 국내적 합의, 국제적 지지 등 세 조건을 만족시키는 분야부터 단계적인 대북 접근을 해나가는 ‘신 한반도 평화 컨센서스’를 제안해 본다. 이런 점에서 인도적 협력에 대한 대북제재완화, 베이징 동계올림픽 남북 공동 참가, 내년 5월 한국에서 개최되는 세계산림총회는 북한의 참여와 호응을 이끌어 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에 기여할 수 있다. 종전선언은 이와 같은 일련의 상호 신뢰조성 노력 위에서 자연스럽게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서보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