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22021.12

평화통일의 창

북한의 자연유산이 움직이고 있다



  유네스코라는 이름을 들으면 먼저 세계유산부터 떠오른다. 하지만 유네스코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지정 사업에는 세계유산뿐만 아니라 생물권보전지역과 세계지질공원, 람사르습지 사업도 있다. 넓은 의미에서 자연유산이란 4대 국제보호지역으로 일컬어지는 세계 자연유산과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 람사르습지를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 집권 후 빠르게 늘어나는 북한의 자연유산
  김정은 위원장은 2014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담화에서 “우리나라의 우수한 물질유산과 비물질유산, 자연유산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활동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북한은 2015년 「민족유산보호법」을 개정하며, 그동안 물질 및 비물질 유산만을 대상으로 하던 민족유산의 범주에 자연유산을 새롭게 포함시켰다. 산과 호수, 동굴, 화석, 자연바위 등도 민족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 당국이 앞으로 유·무형 유산뿐만 아니라 국제보호지역과 같은 자연유산 등재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국제보호지역은 실제로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칠보산과 금강산이 2014년과 2018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평안남도 문덕과 함경북도 라선은 2018년 북한의 람사르협약* 가입과 함께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었다.
* 람사르협약
습지와 습지의 자원을 보전하기 위한 국제 환경 협약으로 ‘습지협약’이라고도 한다.

  작년에는 1989년 이미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백두산을 세계지질공원으로 추가로 등재하기 위해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현재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백두산 현장실사와 심의가 늦어지고 있지만, 백두산이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다면 북한의 자연유산(국제보호지역) 중 절반 이상이 <표1>과 같이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등재되게 된다.

북한이 자연유산에 관심을 갖는 이유
  북한이 국제보호지역과 같은 자연유산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국제보호지역 관련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북한은 국제사회의 정치적 고립으로부터 벗어나 정상 국가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다. 또한 유네스코 등으로부터 생물다양성 보전 역량 강화 프로그램이나 재정적인 지원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이 강조하고 있는 관광사업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북한의 명승지가 세계자연유산이나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 등으로 지정된다면 국제적인 브랜드 가치를 높여 많은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노동신문」은 “여러 나라의 명승지들이 세계생물권보호구, 세계유산, 세계지질공원, 세계해양공원 등으로 등록되며 수많은 관광객들이 생태관광을 하기 위해 그곳을 찾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세계 관광 수입의 약 20%에 육박하는 생태관광이 북한 경제의 자립을 위한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유네스코는 자연의 보전과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국제보호지역을 활용한 생태관광과 환경교육 등을 장려하고 있다. 더욱이, 대규모 개발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생태관광은 개발재원이 부족한 북한에게는 매우 적합한 관광사업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세계지질공원 등재를 추진 중인 백두산 천지의 모습
북한 생태관광과 남북 협력
  국제보호지역은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곳이라는 점에서 북한 인민들의 자긍심을 높여줄 수 있으며, 생태관광 자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향후 북한 당국의 관심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국제보호지역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자연유산 분야의 남북교류협력사업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 남북 양자 간의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대신 유네스코를 통해 북한의 국제보호지역 등재 역량 강화를 지원해주거나 남과 북, 중국, 몽골, 일본,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이 함께 활동하고 있는 ‘동북아생물권보전지역네트워크’를 통해 창의적인 다자협력 방안을 새롭게 구상해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김명신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선임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