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22021.12

특집

2021년 한반도를 돌아본다


하노이 ‘노딜’ 딛고 ‘친서’로 다시 연결된 남과 북
종전선언 입구로 단계적 평화 조치 실행



2021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정책과 2021년 남북관계 및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종합적으로 진단한다.


  정권 후반기에 한반도정책의 결실을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시종일관 노력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남기는 족적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분단 극복을 위한 일에 임기 초중반, 후반이 따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과거를 반추해 보더라도 2007년 10월 ‘10·4 선언’은 임기 말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무리라는 의견과 그렇지 않다는 의견의 갑론을박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긍정적인 평가가 많아지면서 ‘2차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회자하고 있다.

2019년 3월 15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외신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연합
하노이 ‘노딜’을 딛고 ‘친서’ 대화로 통신선 연결
  주지하다시피 한반도는 2018년 봄날을 맞이했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막을 내리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길로 접어들었다. 북·미관계는 악화되고 북한은 더 이상 ‘성과 없는’ 대화에 나오지 않으려 하고 있다. 북한의 입장은 2019년 3월 15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외신기자회견에 모두 집약되었다. 4건의 대북제재 중에 민생과 민수분야에 대한 제재를 풀어달라고 요구했고, 대신 영변 핵시설을 포기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미국은 추가적인 비핵화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난관 속에서 남북관계도 2019년 8월에 한미연합훈련 실시를 계기로 심각하게 악화되어 북한의 매우 거친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더 나아질 것이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고 말았다. 올해에도 이러한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남북관계에 어떠한 돌파구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전문가와 정부 관료들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이 있다. 남북관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의 철저한 대북제재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북한이 폐쇄되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뜻이다. 참으로 무책임한 발언으로 들릴 수 있지만, 현실이 그러했다.

  그런데 올 7월부터 남북관계에 놀라운 변화가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단되었던 남북통신연락선이 413일 만인 7월 27일 정전협정 68주년에 복원되었다. 정전협정일에 남북통신선이 복원됐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연이라기보다는 휴전(정전)을 종전으로 바꾸고자 하는 남북 정상의 의도가 표출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 정부는 4월부터 10여 차례 남북 정상 간 친서를 주고받은 결과라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5월 2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함께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이 “남북대화와 관여, 협력을 지지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남북 정상 간 친서를 주고받으면서 전개된 상황을 바이든 대통령과 충분히 공유하고 교감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8월 한미연합훈련 재개로 인해 8월 10일 또다시 통신연락선 중단사태를 맞게 되지만, 9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연설과 일주일 뒤 김정은 총비서의 시정 연설 이후 5일 만인 10·4 선언 기념일에 다시 통신연락선이 재복원되었다. 이 과정들을 보면 마치 ‘약속대련’을 한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즉 10여 차례 친서를 주고받으면서 한미연합훈련 변수에 대해서 남북 정상이 충분히 교감하고 양해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북한이 아무런 일이 없는 듯 행동할 수는 없었을 것이며, 그로 인해 통신선 일시 침묵과 이후 복원으로 돌아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은 남북대화 복원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와 같이 한반도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요청했고, 국제사회의 호응과 북한의 반응이 긍정적으로 돌아서면서 한반도 시계는 매우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5월 21일 한미 정상이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성명에서 미국은 “남북대화와 관여, 협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백악관

종전선언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
  최근 한미 간에는 종전선언에 대한 내용 조율이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종전선언은 개념이 다양하다. 종전선언이 처음 제기된 것은 2006년 11월 부시 대통령의 제안이었다.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하고 미국이 중간선거에서 참패하면서, 북한 비핵화 문제와 그 해결을 위한 한반도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생각한 것이다. 2006년 11월 하노이와 2007년 9월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시 남·북·미 3자가 평화조약을 통해 전쟁을 종결한다”고 발언하여, 당시에는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을 구분하지 않았다. 2007년 10월 9일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종전선언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협의한 내용으로 우리의 협의 방향과 일치하는 것” 이라고 확인한 바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이라는 용어가 제기된 배경은 부시 대통령이 “북핵 폐기 시 「한국전쟁을 끝내는 평화협정」에 서명할 용의가 있다”는 발언을 전하면서 백악관 대변인이 ‘평화협정’ 대신 ‘종전선언’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이후 종전선언이 평화협정의 이전 단계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 2007년 ‘10·4 선언’에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 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문장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최근 북핵대표들의 회담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인식이 우리와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11월 6일 한·미·일 북핵대표 회담에서 일본의 후나코시 다케히로(아시아-대양주 국장) 북핵대표는 종전선언이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후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0월 말, “시기와 조건 등 관점이 다소 다를 수” 있다고 언급 한 바 있다. 그러나 11월 한·미·일 차관급 회의에서 셔먼 국무부 부장관이 만족을 표현한 점은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국가별 이해관계의 차이와 개념 이해의 차이 때문으로 해석된다. 우리 정부는 종전선언을 입구론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과 일본은 출구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미국과 일본은 비핵화가 상당히 진행된 이후의 절차로 이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한국은 종전선언을 계기로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풀어나간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9월 말 리태성 외무성부상 담화로 우려할 만한 반응을 보였지만 김여정 부부장은 긍정적인 담화를 발표했고 김정은 위원장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물론 종전선언 이후 관계의 변화를 어떻게 가져갈지는 과제로 남아 있다. 북한의 요구조건인 적대시정책 철회와 제재 완화, 이중기준 변경 등을 어디까지 받아들일것인지가 관건이다. 또한 종전선언 이후에는 유엔사령부의 역할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출발하면서부터 모든 조건을 다 갖추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종전선언은 입구론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이며, 이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과제를 하나씩 풀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만약 교황이 평양을 방문한다면 한반도 평화 분위기는 한층 더 힘을 받을 것이다. 그 시점은 남·북·미 3자 간에 의견 일치를 본 직후가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또한 당사국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참여와 동의를 얻어내는 것은 우리 외교의 몫이라 할 수 있다.


대일 외교는 한반도 문제 해결의 열쇠
  대일 외교도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이다. 2018년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가 시작된 이후에 우리와의 이견이 큰 국가로 일본이 등장했다. 존 볼튼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일본 외교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호소하는 우리의 외교와 방향을 달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태평양의 전후 질서는 ‘미일안보조약’을 바탕으로 하며, 이는 동북아의 위기요인이 존재할 때 가치를 발휘한다. 과거의 위기요인이 소련의 공산화 확산이었다면 현재의 위기요인은 중국의 부상이다. 명분상으로 이를 대체하는 것이 북한의 ‘도발적 행동’들이었다.

  결국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당사자로서 남북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면서 주변국들과 협력을 부단히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특히 일본과는 정부 간 외교가 어렵다면 비정부 간 민간외교와 공공외교를 통해 우리의 평화를 위한 입장을 공유·확산하고 공감을 얻어나가야 한다. 새로운 인도·태평양 전략의 틀에서 일본의 위상은 변화하고 있고, ‘미일안보조약’만 존재하던 시대와는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네트워크, 외교력과 재정적 능력은 여전히 강대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이 미국의 고위관료들을 추동한다면 바이든 대통령 혼자의 힘으로 정책을 전개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고위관료들만을 상대하는 외교는 지속가능한 힘을 받기 어렵다. 실무관료와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복합적인 외교가 매우 필요하다.

진희관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