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812021.11

10월의 진주는 진주성과 남강을 중심으로 개천예술제와 유등축제가 한창이다. 유등이 강물을 붉게 비추고 소망등이 유유히 헤엄치면, 전국의 사진 잘 찍는 이들은 며칠의 기다림을 조급해하지 않고 연신 카메라를 움직이며 그 장엄한 기억을 기록하곤 한다.
마치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지금. 진주대첩의 도시, 농민항쟁의 고을, 형평운동의 발상지 진주에서 과거를 소환하고 축제와 소통으로 하나되는 평화와 통일을 새롭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진주시는 대한민국 남서부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인물이 많이 나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조정 인재의 절반은 영남에서, 영남 인재의 절반은 진양(진주)에서 난다”는 말은 이를 증명한다.

  삼한시대에는 변한의 12국 중 고순시국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가야시대에는 고령가야의 고도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거열성, 통일신라시대에는 거열주, 청주, 강주로 개칭되다가 고려시대(서기 940년) 태조 23년 마침내 진주라는 이름을 얻었다. 조선시대(1896년)에는 도청 소재지였으나 일제강점기인 1925년 도청이 부산부로 이전하였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진주시로 승격, 1995년 1월 1일 진양군과 진주시가 통합되어 통합 진주시가 되었다.

  남해고속도로가 영호남을 잇고, 통영대전고속도로는 남북으로 연결되어 있는 진주는 사천공항이 인접하고, 앞으로 남부내륙고속철도가 계획되어 있는 만큼 남부지방 교통의 요충지가 될 것이다. 현재 인구 36만 명을 향해 가고 있는 진주는 LH 등 11개의 공공기관이 혁신도시에 자리 잡아 지역인재의 일자리를 늘려가고 있다. 구도심을 중심으로 항공국가 산업단지가 대규모로 조성되고 있고, 주변의 넓은 농지에서는 딸기, 파프리카 등 진주의 대표 수출작물이 재배된다. 전국 실크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5대 실크 명산지이자 진주성과 촉석루가 있는 역사의 도시, 진주남강유등축제와 개천예술제 등 국제적인 축제의 도시, 2019년 유네스코 공연·민속예술 창의도시로 지정된 곳이 바로 진주이다.

  진주는 백제시대 ‘거열성’이라 불렸다. 이로 보아 이미 삼국시대부터 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주성은 남쪽으로 강이 흐르고 기암절벽이 벼랑을 이루고 있으며, 동서쪽과 북쪽은 들판으로 되어 있는 천혜의 요새이다. 고려 말 왜구의 노략질을 방어하는 기지이자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을 이룩한 이곳에서 1593년 민·관·군 7만 명이 왜구의 재침에 맞서 끝까지 항쟁하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고, 의기 논개는 적장을 안고 의암에서 투신했다.

  촉석루는 평양의 부벽루,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다. 일명 ‘남장대’라고 하며, 남쪽 남강가의 벼랑 위에 우뚝 솟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고려 고종 28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전쟁 시에는 지휘본부로, 평상시에는 향시를 치르는 고시장 등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촉석루는 창건 후 수차례 중수되었는데, 지금의 촉석루는 1950년 9월 1일 북한군 본부로 사용되고 있었던 것을 국군이 폭격하여 소실되자 1960년 재건한 것이다. 재건사업은 당시 한국의 고건축 재건의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전국의 고건축 전문가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진주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촉

  석루는 일제강점기 때 제작된 설계도가 보존되어 있어 원형을 복원할 수 있었다. 불타기 전의 촉석루는 국보 제276호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문화재 자료가 되었다.

  남강과 진주성, 촉석루가 이루는 절경은 언제 보아도 가슴을 뛰게 한다. 촉석루는 미국 ‘CNN GO’에서 한국 방문 시 꼭 가봐야 할 관광명소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1923년 4월 25일 조선시대에서 가장 차별받던 천민 백정들이 저울(衡)처럼 평등한(平) 사회를 지향하며 형평사라는 단체(社)를 만들었다. 진주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형평운동은 일제강점기 가장 오랫동안 활발하게 전개된 사회운동이자 신분 해방운동이었다.

  형평운동은 백정들만의 신분 해방운동은 아니었다. 당시 진주에는 백정들의 어려움과 고초를 함께 해결해 나가려고 했던 지식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새백정’으로 불리며 온갖 모욕적인 언사와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초월한 사회운동에 협력하고 있었다.

  교육운동가 신현수 선생은 백정들이 사용하는 저울처럼 모두가 평등하다는 의미로 ‘형평(衡平)’이라는 이름을 제안하였고, 형평운동의 아버지 강상호 선생은 백정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었다. 형평운동에 참여했던 지식인들과 가장 낮은 곳에 있던 백정들은 일제와 일반인(비백정)으로부터 행해진 차별, 편견, 억압, 폭력 그리고 반형평운동에 맞서 싸웠다. 그런 의미에서 형평운동은 인간 평등과 존엄의 가치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한국 최초의 인권운동이자 민족 해방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92년 뜻있는 진주시민들이 힘을 모아 ‘형평운동 70주년 기념사업회’를 결성하고 형평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96년 진주성 앞에 기념탑을 세웠다. 여기에는 평소 진주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백정들의 한을 풀어주자는 의미도 있다. 지난 20년간 형평정신을 일깨워 주었던 기념탑은 2017년 12월 10일 경남문화예술회관 부근으로 자리를 옮겨 오가는 사람들에게 진주에서의 신분 해방운동이자 인권운동의 역사를 안내해 주고 있다.

  ‘공평(公平)은 사회의 근본(根本)이요, 애정(愛情)은 인류의 본량(本良)이라’. 이러한 형평사 정신은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문보다 25년이나 앞선 것으로, 세계인권선언문 못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진주에서 인권조례를 탄생시킨 배경이 된 형평운동은 인권의 도시 진주가 미래가치를 추구해 갈 수 있는 역사적 기반이 될 것이다.

  1949년 11월 23일 자주독립을 기리고, 예술문화의 발전을 위한 ‘영남예술제’가 창렬사 시제를 시작으로 열렸다. 예술진흥의 새로운 장을 연 대한민국 최고(最古)·최대(最大)의 종합예술축제인 ‘영남예술제’는 1959년 제10회 때부터 ‘개천예술제’로 이름이 바뀌었다. 1950년 한국전쟁과 1979년 10·26 사태를 제외하고는 매년 그 맥을 이어왔으며 가장행렬, 예술경연, 각종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로 구성돼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진주의 또 다른 대표축제인 남강유등축제는 개천예술제 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되던 ‘유등대회’가 2000년부터 분화되며 만들어졌다. ‘흐르는 물에 등불을 띄우는(流燈)’ 유등놀이는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에서 유래한 진주의 풍습이었다. 유등은 임진왜란 당시 적의 심리를 교란하는 전술이었고, 성 밖의 아군이나 가족과의 통신수단이었다. 또한 논개의 순국을 추모하기 위해 기생과 백성들이 남강에 유등을 띄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축제로 발전한 유등축제는 개천예술제와 동시에 진행되며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진주 남강유등축제는 우리나라 축제사상 최초로 해외로 수출된 대한민국 글로벌축제로 평가받고 있다.

  머지않은 10월의 어느 날, 북한 어린이가 남강에서 소망등을 띄워 보내고, 유등으로 가득차 있는 남강의 밤에 평양과 함흥, 진주의 냉면 그릇이 나란히 유등이 되어 눈길을 사로잡을 날을 기대해 본다. 또한, 향토 음식점에서 평양과 함흥에서 온 음식을 나란히 맛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확신해 본다.

  함경도에서 냉면축제를 열고, 압록강, 두만강, 대동강에서 유등축제를 함께하며, 평양의 부벽루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고, 평양의 거리에서 평화의 행렬을 이어가고, 진주의 실크가 남북 철도를 따라 세계로 수출되는, 그런 날들을 진주에서 준비해 보자.

*사진: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