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812021.11

포스트 코로나를 진단하는 연간기획 미래가 온다.
번 호에는 코로나19 백신 불평등 문제와 함께 남북 보건의료 협력의 가능성을 알아본다.

코로나19가 인류에게 주는 교훈

  코로나19는 인류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다. 10월 22일 현재 2억 4,200만 명이 감염되었고, 493만 명이 사망했다. 건강과 생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엄청난 파급효과를 낳았다. 글로벌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 백신 불평등으로 표출된 자국 이기주의, 마스크 착용 등 방역의 일상화, 코로나 블루의 확산, 랜

  선 라이프의 등장 등 인류 역사는 코로나19 이전(BC, Before Corona)과 이후(AC, After Corona)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비싼 대가를 치르며 코로나19로부터 인류가 배우고 있는 교훈이 있다. ‘모든 생명은 잇대어 있다’는 점이다. ‘잇대어 있다’는 표현은 ‘서로 이어져 있고, 기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번 팬데믹을 통해 ‘남’이 건강하지 않으면 ‘나’도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감하고 있다. 일상이 된 마스크 쓰기나 백신 접종도 나의 건강을 지키기 위함이자 타인에 대한 배려이다. 시야를 넓혀 지구적 차원에서 바라보자. 백신으로 집단 면역이 가능하다는 나라도 그렇지 못한 나라에서 발생한 또다른 변이 바이러스에 의한 2차, 3차 감염의 위험이 상존한다. 이미 세상은 ‘one world, one health’의 초연결 사회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팬데믹이 마무리될 때까지 한 나라의 성공은 진짜 성공이 아니다.

북한 코로나19 방역의 명암

  북한의 상황은 어떨까? WHO(세계보건기구) South-East Asia 주간 보고에 따르면, 지난 10월 11일까지 4만 2,095명의 북한 주민들이 코로나19 PCR 검사를 받았으며 이 중 양성으로 밝혀진 경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환자가 없다는 점은 믿기 어렵지만, 국경의 폐쇄, 방역과 예방의 강화, 지역 이동 금지, 능동적 자가 감시의 확대, 언론매체를 통한 대대적인 선전교육 등 코로나19에 대한 북한 당국의 적극적 노력이 방역 측면에서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는 자명하다. 방역 조처로 취한 북한의 자발적 국경 폐쇄는 유엔제재 상황에서 그렇지 않아도 마이너스 성장하던 북한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있고, 보건의료 영역에도 이 충격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와 국내 민간단체의 지원도 매우 제한적이어서 열악한 보건의료 인프라와 환경, 영양의 부족 등은 언제든 북한의 보건안보(health security)를 폭발시키는 심각한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무역량의 절대적 감소, 식량 및 생필품과 필수 의약품 부족 등은 북한 당국 스스로 ‘전쟁 상황에 못지 않은 시련의 고비’라고 할 정도이다.

  코로나19 백신 불평등이 드러낸 인류의 민낯 백신은 코로나19의 게임 체인저이다. 통상의 백신 개발에는 10년 정도가 걸리는 데 반해 코로나19 백신은 불과 1년여 만에 상용화되었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초고속 개발이다. 이 백신의 등장으로 코로나19의 공포로부터 인류가 차츰 여유를 찾아가고 있고, 백신 접종률이 높은 일부 국가에서는 ‘위드 코로나’를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백신과 관련된 국가 간 격차는 인류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10월 현재 세계 인구의 48%가 1회 이상 백신을 접종받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들의 백신 접종률은 아직도 2.9%에 머물러 있다. 백신 접종률이 70%에 달하는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에서는 3차 부스터 접종을 준비하는 반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의 저소득 국가들은 1차 백신 확보조차 쉽지 않다.

  지난 9월 5일 주요 20개국(G20) 보건 장관들이 ‘로마협정’을 통해 개발도상국가들에 더 많은 백신을 제공하자고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지원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비용 부담과 물량 확보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고, 무엇보다도 단기간에 전 인류에게 접종할 정도의 물량 공급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전 세계의 팬데믹 극복은 요원하다. 바이러스도 생명체이기 때문에, 백신을 손에 쥔 인류의 대응에 맞서 반격하기 마련이다.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이 그런 예이다. 코로나19가 백신의 효과를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해나가기 전에 지구적 차원에서 관리가 중요한 이유이다.

  백신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지식재산권을 유예하거나, 신속한 기술이전을 진행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백신 접종 현황과 대북 백신협력 방안

  북한은 공식적인 백신 접종률이 0%인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국가이다. 유엔제재에 이은 엄격한 국경 봉쇄로 인해 식량, 의약품, 생필품의 부족 사태가 가중되고 있고, 이는 북한의 취약계층에 더욱 큰 위협이 될 것이다. 북한이 국경을 열기 위해선 백신이 필수적이다. 북한의 백신

  접종은 건강과 생명의 위협에 직면한 북한 주민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다. COVAX(국제 백신 공동구매 프로젝트)에 백신을 요청하고 국제기구와 관련 논의를 하는 것을 보면 북한 당국 역시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북한에 배정된 COVAX를 통한 백신지원(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70만 회 분)은 멈춰 있다. 일각에서는 콜드체인(저온 유통체계)과 모니터링 이슈를 이야기하지만, 기존 사례를 보면 이것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실제로 북한은 2007년 홍역 유행 당시, WHO와 UNICEF의 도움을 받아 콜드체인을 유지하며 하루 평균 무려 330만 명을 예방 접종한 경험이 있다. 중국과 러시아 백신의 경우는 COVAX를 통하지 않고 국가 간 직접 지원의 형태로 받을 수 있을 법한데, 여기엔 또 다른 이슈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북 백신협력 방정식은 해법이 쉽지 않다. 북한은 전국민 접종이 가능한 백신(1,500만~2,000만 명 분)을 원할 것이나 백신 공급의 세계적 난맥상을 고려하면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 역시 백신 굴욕이라는 비판으로 홍역을 치른 마당이니 지금 당장 대북 백신협력에 나서기 어렵다. 여유 백신을 가진 미국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매력적인 거래라고 판단하지 않는 한 협상카드로 내놓지 않을 것이다.

  쉽지 않은 방정식이지만, 백신협력을 계기로 북·미 간의 ‘전략적 인내’가 강 대 강이 아닌 선 대 선으로 나아갈 방법은 없을까? 북한을 설득하려면 실리뿐만 아니라 명분이 중요하다. 미국을 설득하려면 대북제재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북한이 비핵화 진척에 나서게 해야 한다.

  필자가 이전부터 주장해 온 가능한 해법을 제시해 본다. 미국은 파격적인 양의 백신을 북한에 제공하여 적대시 정책 완화에 성의를 보인다. 강력한 국경 봉쇄보다 더한 제재가 없음을 고려할 때 현 단계에서는 유엔제재 완화보다도 북한이 자발적으로 봉쇄한 국경을 여는 게 더 시급하다. 그런 의미에서 백신지원은 유력한 제재 완화책이라 할 수 있다. 국경이 열리면 개성공단도 재개한다. 단 국제적 명분을 얻기 위해 개성공단은 방역용품 생산 등 감염병 대응의 전초기지로 전환한다. 북한 입장에서 미국 발 백신의 수용은 북한이 글로벌 팬데믹 극복에 기여하기 위함이다. 지금은 서로가 아닌 공동의 적,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명분이 있다.

  북한은 전 국민 백신 접종을 계기로 국경을 여는 실리를 취하면서, 상응 조처로 한 단계 높고 실효성 있는 비핵화 조처를 실천한다. 국경이 열리면 이에 대한 모니터링도 가능하다. 북한의 비핵화 실천 수준에 상응하여 유엔제재 완화, 경제협력, 평화협정 등 단계별 로드맵을 조율한다. 이런 방정식이 풀리려면 상호간의 신뢰가 필수적인데, 백신협력과 종전선언이 그런 신뢰 형성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북·미 간에 명분과 실리를 교환하게하는 드러나지 않는 촉진자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이 역할을 잘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남북 협력으로 만드는 한반도형 방역 모델

  궁극적으론 남북이 힘을 모아 백신 및 치료제를 공동 생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반생명(反生命)의 상징인 전쟁의 유산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에서 남북이 협력하여 백신을 만드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한반도-백신으로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갈등이 첨예한 지역이 인류 상생의 전초기지가 되는 역설이 될 것이다. 한반도 백신허브가 가질 문명사적 가치를 주목하며 준비해 가자.

  또한 K-medical로 방역 모범 국가로 등장한 대한민국의 기술력과 시스템이 인력 중심인 북한의 고전적 방역과 상호보완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면 ‘위드 코로나’ 시대에 한반도형 방역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남북 보건의료인들의 협력으로 동북아를 넘어 전 세계 감염병 극복을 위한 창의적인 방안을 제시해 나가자.

  한반도는 아직도 두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70년 전 발생한 ‘과거의 전쟁’ 유산이 지속되고 있고, 이제는 코로나19라는 ‘현재의 전쟁’에 직면해 있다. 남북과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잘 이겨낸다면, ‘아직 종전되지 못한 나라’라는 불명예를 극복하는 데에도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역으로 종전을 위한 남북과 미·중의 협력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게 할 수도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단절보다 더 심각한 남북 간의 단절이 빨리 극복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