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공공외교
동남아남부협의회가 꾸는 통일의 꿈
한류의 힘으로 통일을 열다
지난 5월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그곳에 새겨져 있던 문구 하나가 필자의 마음을 끌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기억하라”
사실 필자의 출생은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6·25 전쟁터에서 맺어진 인연으로 우리 5남매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함흥간호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평양인민병원에 근무하시던 어머니는 1950년 차출돼 전쟁터로 나가셨다. 그리고 그해 겨울, 북한군의 열세로 후퇴 대열에 끼어 걷던 중 국군에게 붙잡혔다. 천우신조라 해야 할까. 마침 취조하던 정보장교가 개성출신이었고 외할아버지의 학교 후배였던 터라 신분이 인정돼 국군 의무대로 인계됐다. 20대 초반의 국군 의무대 병사와 북한 출신 간호사는 그렇게 만났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군용차에 몸을 싣고 의무병들과 한 팀이 돼 전상자들을 치료하셨다. 여자 혼자의 몸으로 군대에서 일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그때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분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엄마, 전쟁에서 꽃핀 로맨스가 한편의 드라마 같아요.” 이야기를 듣던 언니의 말에 쓸쓸히 먼 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는 항일 투쟁으로 명망이 높으셨던 외할아버지가 특별히 사랑했던 외동딸이었다. 김일성대학 철도차량과에 다니던 오빠와 하모니카를 불며 행복해하던 어린 소녀가 어느 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휴전 이후 아버지를 따라 제주도 모슬포로 내려간 어머니는 가족들 생각에 갓 태어난 필자를 업고 바닷가 앞에서 눈물을 훔치시곤 했다. 어머니는 1983년 이산가족 찾기 특별 생방송에 나가며 가족들을 찾기 위해 애를 쓰셨으나 아직까지 소식을 듣지 못했다. 두 분이 겪은 전쟁의 참상에 대한 기억은 가족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전쟁의 아픔을 평화로 잇다
전쟁의 아픔은 평화의 바람으로 이어졌다. 필자는 40년째 해외 생활을 하며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14년 동안 봉사하고 있다. 이 일에 남다른 열정을 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몸속에 남과 북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서 동남아남부협의회 자문위원들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알리기 위한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다.
협의회는 지난 6월 25일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남북 평화기원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의 작품들은 ‘평화통일 사생대회’에서 수상한 싱가포르 한국국제학교 학생들의 작품들로 채워졌다. 전시회 작품을 감상하며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바로 지금 우리가 평화와 자유를 누리게 됐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됐다.4월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해 1만 싱가포르달러의 성금과 1천만 원 상당의 한국 특산품을 주싱가포르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전달했다. 성금 모금은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지회 등 90여 명 자문위원의 동참으로 이뤄졌다. 자문위원들은 한국도 전쟁의 아픔을 겪은 나라로서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함께할 수 있도록 힘을 더하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우크라이나 대사관 측은 “한국과 같은 나라들이 함께해 줘서 큰 힘이 된다”며 우크라이나의 어린이들을 위해 소중히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싱가포르국제학교에서 개최된 ‘2022년 평화통일 골든벨 대회’
주싱가포르 우크라이나 대사관 성금 전달식 모습
평화통일의 새로운 페이지 열어가길
한인 차세대와 현지인을 위한 활동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싱가포르에서 재학 중인 한국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차세대 워크숍을 진행했고, 올 6월에는 평화통일 골든벨 대회를 3년 만에 대면으로 개최했다. 인도네시아지회가 주최한 골든벨 대회에는 현지인 대학생들이 다수 참여해 한국 청소년들과 함께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는 100여 개국의 대사관이 있고 인구 550만 명 중 외국인이 150만 명이 넘는다. 이에 동남아남부협의회는 본부 역할을 하는 싱가포르에서 간담회와 강연회를 통해 평화통일공공외교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관련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지회는 매해설날 외국인 친구들을 초청해 한복과 한국 음식 등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자문위원들의 노력 덕분인지 동남아지역에서 한류가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은 싱가포르 사람들이 가장 여행 가고 싶은 나라 중 하나가 됐고, 코로나 기간 현지인들은 한국 드라마와 한국 음식을 통해 어려운 시기를 넘기기도 했다.
북미 정상 간 세기의 만남으로 온 세계가 이곳을 주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평화통일을 위한 꾸준한 노력으로 이곳에서 다시 한번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
최 남 숙
민주평통 동남아남부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