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02022.08.

북한 관영 매체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5차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6월 8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대미노선으로 ‘강 대 강, 정면승부의 투쟁원칙’을, 대남노선으로 ‘대적투쟁’을 언급했다. ⓒ연합/조선중앙통신

북한포커스

북한의 대규모 인사 변동과 정책 전망

내부 경제시스템 정비하며
대남·대외 강경기조 유지

북한은 지난 6월 8~1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5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대규모 인사 교체를 단행했다. 이번 인선의 특징과 대남, 대미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북한은 지난 6월 8~1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5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열고 경제·국방·방역정책 등 당 및 국가 정책의 집행 실태를 중간 점검하면서 하반기 사업 방향과 투쟁 방침을 제시했다. 이번 당 전원회의는 북한이 코로나19 발생을 공식 발표한 뒤 한 달쯤 지나 개최된 만큼 방역과 경제계획 수행에 초점이 맞춰졌다.
기강 확립과 분위기 쇄신 차원의 대규모 인사
이번 당 전원회의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지난해 1월 열린 제8차 당대회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인사가 단행됐다는 것이다. 불과 6개월 전에 있었던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상당한 규모의 인사이동이 있었는데도 제8기 제5차 전원회의를 통해 정치국 위원 및 후보위원, 중앙위원과 후보위원 상당수가 교체됐고 비서 3명, 부장 6명, 중앙군사위원 4명, 중앙검사위원장과 위원 1명이 교체됐다. 내각 구성원도 6명이 바뀌었고 군부 최고위직인 총참모장, 총정치국장, 사회안전상, 국가보위상도 교체됐다. 북한의 고민과 정책적 방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대규모 인사는 이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5월 15일 소집된 당 정치국 협의회에서 책임자를 강도 높게 질책하면서 어느 정도 예고됐다. 이 협의회에서 김 위원장은 “사법, 검찰부문이 의약품 보장과 관련한 행정명령이 신속 정확하게 시행되도록 법적 감시와 통제를 못하고 있다”면서 중앙검찰소 소장의 사례를 거론하며 직무태공, 직무태만 행위를 신랄히 질책한 바 있다. 당시 비판의 초점은 주로 노동당이 제시한 노선과 방침의 집행상황을 통제하는 감독사업체계에 맞춰졌다. 당연히 이번 당내 인사는 주로 규율과 경제 부서에 집중됐다.

우선 제8차 당대회에서 권한이 강화된 당 중앙검사위원장에 내각 총리와 당 조직지도부장 출신의 김재룡이 기용됐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제8기 1차 전원회의에서 “당 안에 당규약과 당정책을 엄격히 이행하는 강한 규율을 세우기 위해 규율감독체계를 새롭게 세워야 한다”며 당 중앙검사위원회와 검열위원회를 통합해 ‘당의 중앙집권적 규율’을 담당하는 중앙검사위원회를 만들었다. 감독기관으로 권한이 대폭 강화된 중앙검사위원회는 특별히 당 간부들의 세도, 관료주의, 부정부패, 전횡 등 당규율 위반행위를 감독·조사하는 데 집중했다.
경제질서 확립과 경제계획 수행에 초점
북한이 이렇게 당 중앙검사위원회를 강화한 이유는 국가의 중앙계획경제시스템을 이탈했거나 기관이기주의가 강한 당·정·군의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에 대한 합법적인 검열과 통제를 강도 높게 추진하기 위한 조치였다. 지속적으로 폐단이 되어온 권력기관의 권력남용과 내각의 경제사업에 대한 불필요한 개입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조선노동당 제8기 5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인사 변동 내용

당 중앙위 위원 박지민, 박수일, 최선희, 조춘룡, 박희철, 김인철, 리창대, 한광상
당 중앙위 후보위원 장창민, 김순철, 신창남, 마혁철, 박형렬, 곽정준, 리두일, 김두일, 곽영호, 려철웅, 안영환, 전승국
당 정치국 위원 전현철, 리태섭, 박태성
당 정치국 후보위원 조춘룡, 박수일, 리창대, 최선희, 한광상
당 비서 김재룡, 전현철, 박태성
당 중앙군사위 위원 리태섭, 조경철, 박수일, 리창호
당 부장 조용원(조직지도부장), 조춘룡(군수공업부장), 전현철(경제부장), 리충길(과학교육부장), 리선권(통일전선부장), 한광상(경공업부장)
당 중앙검사위 전승국(내각부총리), 최선희(외무상), 박형렬(식료공업상), 곽정준(상업상), 리두일(국가과학기술위원장), 김두일(내각 정치국장 겸 당위원회 책임비서)
무력기관 리태섭(군 총참모장), 정경택(군 총정치국장), 박수일(사회안전상), 리창대(국가보위상)
출처 : 통일부 「주간북한동향」 제1625호

이것은 지난해 열린 제8기 제2차 당 전원회의에서 우상철 중앙검찰소장이 “경제계획 수립과 집행과정에서 법적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천명한 발언에서 확인된다. 이와 관련 그는 “특수의 울타리를 쳐놓고 법의 통제 밖에서 사회주의경제 관리질서를 난폭하게 위반하는 단위들에 대한 법적감시를 공격적으로, 연속적으로 드세게 진행하는 것과 함께 경제일꾼들이 사회주의원칙을 양심적으로 지키고 당의 경제정책을 진심으로 받들어 나가도록 준법교양을 강화해 국가경제관리체계와 질서를 침해하는 위법요소들을 미연에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방향은 지난해 4월 제8기 제2차 당 전원회의에서 단위특수화, 본위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6월 제8기 제2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책임간부들의 직무태만 행위 문책을 강력하게 제기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즉 당 중앙검사위원회, 중앙검찰소 등 주요 검열기구의 권한 강화는 일차적으로 주민 통제보다 내각 중심의 경제질서와 내각의 권한을 강화하는 데 주요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규율부서를 겨냥한 비판의 강도에 비해 해당 부서에 대한 인사 폭은 크지 않았다. 세대교체 차원에서 노령의 정상학 당 검사위원장을 대신해 김재룡을 기용한 것 외에 리희용 당 중앙검사위 부위원장이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박태덕 당 검사위 부위원장 겸 규율조사부장과 직접 비판의 대상이 된 우상철 중앙검찰소장은 유임됐다. 이것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의약품 공급과정에서 벌어진 혼란과 권력기관의 본위주의가 특정 간부의 무능력이 아니라 내부 당정 운영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 6월 12일 소집된 중앙위원회 비서국회의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은 “일부 당 일꾼들 속에서 나타나는 세도와 관료주의를 비롯한 불건전하고 비혁명적인 행위들을 표적”으로 “검사위원회의 사업보좌기구인 규율조사부서들의 권능과 직능을 확대 강화할 것”을 주문했지만 단기간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인사와 검열을 담당하는 조직지도부 인사도 주목된다. 조직지도부장이던 김재룡이 당 중앙검사위원장 겸 규율비서로 승진하면서 조직비서였던 조용원이 조직지도부장직도 겸직하게 됐다. 8차 당대회에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서 파격적으로 조직비서 및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된 조용원은 국무위원에도 선출된 데 이어 이번에 당 조직지도부장까지 겸직해 명실상부하게 최고 실세임을 재확인했다. 또한 조직지도부에서 당생활 지도부문, 검열 지도부문을 담당하는 제1부부장을 교체했다. 신임 리희용 제1부부장은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출신으로 함경북도 당위원장을 거쳐 당 중앙검사위 부위원장에 기용됐다가 다시 당 조직지도부로 자리를 옮겼다. 천대길은 조직지도부 부부장에서 당생활 지도부문을 담당하는 제1부부장으로 승진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농사와 소비품 생산을 경제 과업 급선무로 강조해 왔다.
이번 전원회의에서 내각 식료공업상과 상업상이 교체된 것은 인민소비품 생산을 정상화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사진은 농업생산을 독려하는 평양 류경김치공장의 모습 ⓒ연합

경제 분야에서는 당 경제비서와 경공업부장이 동시에 교체됐다. 신임 경제비서 겸 부장에는 8차 당대회 이후 신설된 당 경제정책실장을 맡아온 전현철이 기용됐고 경공업부장에는 한광상 전 재정경리부장이 임명됐다. 당 경제부서 책임자 교체는 김정은 위원장이 농사와 소비품 생산이 올해 경제 과업 중 급선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주민생활에 직결된 식량과 소비품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방증한다. 이번 전원회의에서 내각의 식료공업상과 상업상을 교체한 것도 식량과 소비품 공급이라는 과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물은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당 재정경리부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 한광상을 경공업부장에 기용한 것도 어떻게든 인민소비품 생산을 정상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이번 전원회의는 새로운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이전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목표 추진을 위한 중간점검을 하고 당 비서국과 규율·경제 분야 전문부서의 인사를 통해 분위기를 일신하고 하반기 성과를 독려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외무상과 당 통일전선부장 교체, 남북대화 복원 기대 어려워
대외적으로 가장 관심을 끈 인사는 역시 대외, 대남정책 책임자의 교체다. 새 외무상에 미국통으로 손꼽히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대남사안을 총괄하는 당 통일전선부장에 리선권 전 외무상이 임명됐다. 새 외무상에 임명된 최선희는 지난 2018년 남·북·미 간 비핵화 협상 때 핵심 역할을 맡았던 인사다. 그는 미국과의 소통을 담당하면서 주요 계기 때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의 입장을 설명하는 등 비핵화 협상 전면에서 활약했다. 2019년 2월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의 협상이 중단된 상황에서 최선희의 승진은 주목을 받았다. 북한이 중장기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을 준비하고 있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대미협상은 외무성 내 미국국을 담당하는 제1부상이 총괄하고 외무상은 구 사회주의권과 제3세계 외교, 유엔 외교에 치중했다. 과거 북핵과 대미외교를 책임졌던 강석주와 김계관 제1부상도 외무상을 맡지 않고 끝까지 제1부상 자리에 머물렀다. 또한 최선희 외무상은 2019년 2월 하노이회담을 앞두고도 ‘미국 불신론’을 제기할 정도로 북한 내의 대미 강경입장을 대변하는 행보를 보여 왔다. 따라서 최선희의 외무상 기용은 대미협상을 염두에 둔 것이라기보다 대미외교가 장기전에 돌입한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 등 전통적인 우방과의 외교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최선희의 외무상 기용은 대미 외교가 장기전에 돌입한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 등 전통적인 우방과의 외교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2019년 확대회담에 참석한 북러 정상 모습 ⓒ연합/조선중앙통신

또한 2018년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던 당시 남북대화 창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을 지낸 리선권이 당 통일전선부장으로 임명된 것은 남북대화를 염두에 둔 것이라기보다는 건강이 좋지 않은 김영철 전 통일전선부장의 공백을 메우려는 보완책일 가능성이 더 크다. 조평통, 민족화해협의회 등 남북대화와 교류를 담당하는 기관들에 대한 충원 인사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신임 통전부장 임명을 통해 전향적인 남북대화 복원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북한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대미노선으로 ‘강 대 강, 정면승부의 투쟁원칙’을, 대남노선으로 ‘대적투쟁’을 언급했다. 북한의 이러한 기조는 5월 이후 숨고르기에 돌입했지만 올해 하반기부터 다시 다양한 형태의 ‘무력시위’ 등 강경 기조를 이어나갈 것임을 예고한다. 대화 재개 기대보다는 긴장 고조에 대비해야 하는 셈이다.

정 창 현 평화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