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02022.08.

그린 한반도

멸종위기의 한반도 야생동물

한반도 생태 통일이
야생동물 복원의 희망

고조선 건국에 담긴 단군신화를 통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곰과 이를 견디지 못한 호랑이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민족은 그 시작부터 곰과 호랑이 같은 맹수와 함께해 왔던 민족임을 알 수 있다. 한반도의 맹수들은 백두산 원시림을 통해 북만주의 샤오싱 안링산맥, 러시아의 연해주와 하바롭스크에 걸쳐 있는 시호테알린산맥의 원시 밀림을 넘나들었다. 조선시대 왕조실록에 의하면 1345년부터 1884년까지 호랑이 350회, 표범 51회, 늑대 1회 등 402건의 맹수가 출현했다는 기록도 있다.1 이처럼 멀지 않은 과거에도 야생동물은 사냥의 대상이 돼 고기나 모피 등 이익을 주기도 했으며, 민가에 침입해 가축을 잡아먹는 피해를 주기도 하는 등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왔다.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 토테미즘에서 알 수 있듯 숭배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 이렇게 5천 년의 기나긴 역사를 함께해 온 대형 맹수들이 최근 들어 너무나 짧은 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지 2019, 22: 35~45

한반도의 대형동물은 어떻게 사라져 갔을까?
한반도에서 대형 포유동물이 사라지게 된 주요 출발점은 무엇일까? 야생동물의 종 다양성이 감소하는 원인은 서식지 파괴, 기후변화, 외래종 침입, 질병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그러나 한반도 대형 동물 멸종의 경우 일제 강점기에 자행된 무분별한 남획이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일제는 ‘해수구제 정책’이란 이름하에 호랑이, 표범, 곰, 늑대 등의 대규모 수렵을 진행했다. 야마모토 타다사부로 같은 일본인 사업가는 정호군을 조직해 한반도의 호랑이, 표범을 사냥한 후 조선반도 호랑이 수렵기인 『정호기(征虎記; 1917년 일본원정대의 한반도 야생동물 사냥 행사 때 찍은 사진과 일기 등 자료를 모은 책)』란 책을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일제 강점기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사람 주권뿐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야생동물은 6·25 전쟁과 서식지 파괴로 인해 또다시 멸종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야생동물 또한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생명을 잃는 고통을 받았다. 진정한 주권 회복은 남과 북의 인적 통일과 함께 생태 통일이 이뤄졌을 때 실현될 것이다. 한반도 내 사라져 가는 야생 동물을 보호하고 복원하고자 남한에서는 호랑이, 표범, 반달가슴곰, 늑대, 대륙사슴, 여우, 산양, 사향노루, 스라소니 등을 포함한 20종(1급 12종, 2급 8종)의 포유동물을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북한은 호랑이, 대륙사슴, 불곰, 검은단비, 수달, 사향노루, 산양 등을 포함한 9종을 멸종위기종으로, 16종은 취약종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2
2) 북한의 환경과 기후변화 전망, 2012
돌아온 반달가슴곰, 희망이 되다
이런 상황에 지리산에 반달가슴곰이 돌아왔다. 국립공원공단이 2004년부터 진행해 온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 마침내 결실을 거둔 것이다. 현재 70마리 이상의 반달가슴곰들이 지리산과 그 주변에 터를 잡아 살고 있다. KM53번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에서 북쪽으로 80km 이상 떨어진 김천의 수도산까지 진출했다. 이를 통해 지리산의 반달가슴곰들이 백두대간 생태축을 따라 북쪽으로 서식지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지리산 반달가슴곰들은 KM53번처럼 자신 앞에 놓인 수많은 도로를 가로지르고 서식지 단절을 뛰어넘어 언젠가는 강원도 설악산에 도착할 것이고, 마침내 DMZ(비무장지대) 철망을 넘어 금강산에도 터를 잡을 것이다. 우산종(Umbrella species)인 반달가슴곰을 연결고리로 금강산과 설악산을 잇는 광역 생태축이 복원되면, DMZ에 세워진 철조망과 지뢰밭으로 인해 단절됐던 야생동물이 만나게 되고 유전자 교류가 촉진될 것이다.

설악산국립공원에서 시작된 산양 복원사업도 결실을 맺고 있다. 속리산국립공원, 주왕산국립공원에서도 산양이 관찰됐고 경기 북부지역 등 국립공원 이외의 지역에서도 출몰 소식이 들려온다. 소백산국립공원에서 복원 중인 여우의 자연 번식도 순조롭다. 최근 SKM-2121번 여우는 방사 지역인 영주 소백산국립공원을 벗어나 단양, 영월, 평창, 동해, 울진 등 총거리 400km를 이동해 부산에서 관찰됐다. 이처럼 복원 여우들도 다양한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산림녹화사업, 멸종위기 야생동물 복원사업 등을 통해 우리 주변의 숲이 회복되고 반달가슴곰, 산양, 여우, 따오기, 수달 등 야생동물들이 마침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야생동물 복원도>


설악산-산양

소백산-여우

지리산-반달가슴곰

출처 : 강원대학교 야생동물연구실 한소현
‘생태 통일’로 ‘사람 통일’의 물꼬를 트자
생태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남북 간 개체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 지리산에 복원 중인 반달가슴곰의 경우 북한 개체보다는 혈연적으로 친척인 중국과 러시아 개체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북한 개체의 도입을 통해 한반도 고유의 유전자를 더 많이 교류할 필요가 있다. 남한에서 번식, 서식지 적응과 확산에 성공한 산양의 경우 북한에 개체와 복원 기술을 제공해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아울러 멸종위기 야생동물 교류를 통해 멸종위기종의 서식지 보호 및 관리를 위한 남북 상호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 첫 번째 보호관리 대상은 DMZ 동서생태축이라 할 수 있다. 한반도를 횡단하는 DMZ는 동서 길이 248km, 면적 907㎢로 70여 년간 생물다양성이 잘 보전된 한반도의 수평생태축이다. 국립생태원의 DMZ 생물다양성 조사(2018)에 의하면 포유류 47종, 양서 및 파충류 34종, 조류 277종, 담수어류 136종, 식물 1,926종, 곤충류 2,954종, 저서성 대형무척추동물 417종, 거미류 138종 등 야생생물 5,929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남한의 멸종위기종 267종 중 101종(37.8%)이 이곳에 서식하고 있다. 반달가슴곰, 산양, 사향노루 등도 이곳에서 발견됐다.

과거 독일은 동서를 가로지르는 베를린장벽을 그린벨트화했다. ‘그뤼네스반트(Grünes Band, 녹색띠)’라고 불리는 그린벨트는 동서 냉전시대의 철의 장벽을 따라 24개 국가 30개 국립공원이 참여하는 12,500km의 유럽 그린벨트를 출발시키는 시발점이 됐다. 독일의 그뤼네스반트처럼 DMZ에 한국형 그린벨트를 구축해 지리산 반달가슴곰이 설악산과 금강산을 거쳐 북만주의 샤오싱안링산맥, 그리고 러시아 시호테알린산맥까지 다다를 수 있는 생태축을 구축해야 한다. 한반도 야생동물 이동로의 중심은 바로 설악산-금강산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이 지역은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남북으로 뻗은 백두대간의 수직생태축과 DMZ의 수평생태축이 교차되는 한반도 백두대간 생태축의 교차지점이다. 체코와 폴란드가 공동 운영하는 카르코노셰 국립공원3처럼, 먼저 이 지역을 남북 공동 생태시범 사업지역으로 지정하고 설악-금강 생태 평화 공원을 조성해 야생동물의 길을 열고 한반도 생태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길 기대한다.
3) 카르코노셰 국립공원은 체코와 폴란드의 국경지대에 걸쳐 있으며 1992년 유네스코 접경지역 생물권 보전지역에 지정됐다.



박 영 철 강원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