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52023.01.

칠곡보 생태공원 풍경 ⓒ경북나드리

우리고장 평화통일 기행

전쟁의 상흔 딛고 통일의 미래로
칠곡으로 떠나는 소풍

구미시에서 대구광역시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칠곡군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충적평야가 자리한 서부 군역과 천생산, 백운산, 건령산 등의 능선이 이어지는 동부 군역으로 나뉜다. 지금이야 낙동강에 놓인 다리를 통해 동서를 자유롭게 오가지만 1950년만 해도 동쪽으로는 국군과 유엔군이, 서쪽으로는 인민군이 대립하며 최후 방어선을 두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대한민국의 임시수도가 위치한 대구로 향하는 길목이었던 칠곡군은 6·25 전쟁 당시 치열했던 격전지 중 하나였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흐른 현재 칠곡군은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전쟁의 위기를 딛고 평화를 선물한 행운의 도시 ‘LUCKY 칠곡’을 소개한다.

파괴된 다리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칠곡 왜관철교
본래 경부선 약목역과 왜관역을 잇는 철도교였던 칠곡 왜관철교는 6·25 전쟁 당시 두 동강 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1950년 6·25 전쟁 당시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낙동강 일대에서는 치열한 방어전이 벌어졌다. 북한군이 낙동강을 건너갈 경우 지금의 대구와 부산을 점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결국 북한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총길이 469m의 왜관철교가 굉음을 내며 폭파됐다.

왜관철교 폭파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아군은 무사히 낙동강 일대를 지킬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왜관철교는 ‘나라를 구한 다리’라는 의미에서 ‘호국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의 포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왜관철교 인근은 치열했던 낙동강 전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자리 잡았다. 왜관철교는 등록문화재 제406호로 지정되며 시민들이 호국평화 시화전, 평화 음악분수 등을 즐기는 평화의 상징이 됐다.
기억하고 추모하다,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왜관철교에서 북쪽으로 향하면 칠곡보 생태공원을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위치한 이곳은 계절마다 물놀이장, 놀이터, 산책로 등으로 변신하며 군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부는 봄, 가을이면 낙동강가에 부서지는 햇살을 보며 라이딩도 즐길 수 있다. 해마다 이곳에서 열리는 ‘낙동강 세계평화 문화 대축전’은 칠곡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축제가 됐다.

칠곡보 생태공원에서 대로를 건너면 낙동강 방어전의 모든 것을 담아놓은 칠곡호국평화기념관과 왜관지구전적기념관을 만나볼 수 있다. 6·25 전쟁 당시 55일간의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재조명하기 위해 2015년 10월 문을 연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연면적 9,048㎡,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를 자랑하는 국내 최대 전쟁박물관이다. 기념관에는 호국전시관, 전투체험관, 어린이 평화체험관, 4D 입체영상관 등이 마련돼 있다. 국군 복장 체험하기, 포탄 피하기 게임, 사격 게임, 호국평화지킴이(주니어 레인저)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어 아이랑 함께 나들이 가기 좋은 곳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낙동강과 경부고속철도의 시원한 풍경이 한눈에 펼쳐져 가슴이 뻥 뚫리는 뷰를 만끽할 수 있다.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전경

호국평화기념관 인근에 있는 왜관지구전적기념관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치러진 왜관지구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고 전몰장병을 추모하기 위해 1978년 7월 건립됐다. 2016년 새 단장을 마친 전시실에는 박격포 등 총 242점의 전시물이 전시돼 있고, 외부광장에는 참전용사를 추모하기 위한 왜관지구전적비가 마련돼 있다.
오래된 아름다움을 간직한 ‘가실성당’과 한국의 산티아고 ‘한티가는 길’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칠곡 가실성당은 1895년 다섯 칸 규모의 기와집에서 시작됐다. 이후 신자가 늘어 본당이 비좁아지자 1923년 투르뇌(한국 이름 여동선) 주임 신부가 현재의 자리에 성당을 새로 지어 이듬해 완공됐다. 6·25 전쟁 때 야전병원으로 사용된 가실성당은 치열한 낙동강 전투 속에서도 피해를 입지 않아 2003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됐다. 충남 아산의 공세리 성당과 더불어 한국의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히는 이곳은 사진작가들의 최애 포인트 중 한 곳이다. 배롱나무꽃 명소로도 유명해 매해 여름이면 성당에서 배롱나무꽃과 함께 찍은 사진이 SNS에 도배되기도 한다.

한국의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히는 가실성당 전경

가실성당은 ‘한티가는 길’의 시작점이다. 왜관읍 가실성당부터 동명 천주교 한티성지까지 이어지는 한티가는 길은 자연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나를 돌아보는 ‘한국의 산티아고 길’이다. 과거 천주교인들이 도보 순례로 걷던 구간을 이어 5개 구간 45.6km의 장거리 트래킹 코스로 조성했다.

구간의 이름은 각각 돌아보는 길(제1길), 비우는 길(제2길), 뉘우치는 길(제3길), 용서의 길(제4길), 사랑의 길(제5길)이다. 돌아보고, 비우고, 뉘우치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다섯 개의 코스를 완주하고 나면 종교의 의미를 뛰어넘어 내면의 성장을 이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로운 ‘금락정(琴洛亭)’과 금빛 물결 ‘심천리 마을’
굽이굽이 울퉁불퉁한 건령산 산길을 오르다 보면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에 아찔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금락정(琴洛亭)에 올라서면 “잘 왔다, 역시 좋다”는 말만 연발하게 된다. 금락정에서 내려다보는 금호강 풍경은 그야말로 평화 그 자체이다. 금락정은 조선 중종 때 조성된 정자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맑은 날에는 왼편의 금호강(琴湖江)과 오른편의 낙동강(洛東江)이 한눈에 보인다 하여 첫머리 글자를 따 금락정(琴洛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한반도 모습을 빼닮은 ‘심천리 마을’

건령산 중턱에 세워진 ‘심천리 마을’ 하트 포토존


건령산(516m) 중턱에서 금락정을 지나면 한반도 모습을 빼닮은 ‘심천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 논, 밭이 하나로 어우러져 평화롭고 고요한 한반도 지형을 빚어낸다. 가을철 벼가 익을 무렵에는 철책선 없는 온전한 모양의 한반도 지형이 황금물결을 이룬다. 심천리 마을이 알려지게 된 건 이곳 출신의 한 공무원을 통해서다. 그는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한반도 지형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하트 모양의 포토존을 설치했고, 이후 입소문을 타며 관광객과 트래킹 마니아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칠곡의 얼 담긴 양반촌 ‘매원(梅院)마을’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양반촌으로 불린 칠곡 매원(梅院)마을은 오백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선비의 고장이다. 최대 번성기였던 1905년에는 400여 채의 가옥이 있었지만 6·25 전쟁의 폭격으로 가옥 대부분이 소실되어 60여 채만 남았다. 이곳에는 호국의 고장 칠곡의 역사와 정체성이 담겨 있다. 매원마을은 1920~1938년까지 농촌계몽을 위한 야학당으로 활용되었고 이곳 출신들이 1938년 ‘왜관독립운동’을 주도해 독립운동가 마을로 불린다.

매원마을 입구엔 이 마을을 상징하는 감호당(鑑湖堂)이 우뚝 서 있다. 감호당은 조선시대 경성판관과 담양부사를 지낸 석담 이윤우 선생이 마을 풍경을 즐기기 위해 1623년 지은 건물이다. 이후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교육의 장소이자 후학을 가르치는 강학소가 되었다. 감호당을 지나 마을 쪽으로 500여 미터를 걸어 들어가면 수백 년 역사를 지닌 한옥들이 보인다. 전쟁 당시 부상병들을 위한 치료소 역할을 했던 지경당(止敬堂)도 그중 하나다. 지경당 대문 안의 사랑채 마루와 창문짝에는 6·25 전쟁 당시의 총탄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다. 지경당을 감싸고 있는 흙 돌담은 폭격으로 다른 담들이 모두 쓰러진 가운데서도 150여 년 세월을 살아남았다.

조선시대 3대 양반촌 중 하나인 매원마을의 한옥 풍경 ⓒ칠곡군

현재 매원마을에서는 세시풍습 놀이, 음악회, 매원마을 가을잔치, 문학 행사, 시극 공연 등 주민들과 관람객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와 한옥 숙박 체험이 운영되고 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어느 한 곳,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마음이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한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은 한집 한집의 마음과 정성으로 완성되듯 온 국민의 마음과 정성이 하나하나 모일 때 평화통일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채 윤 민주평통 칠곡군협의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