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82022.06.

지난 4월 24일(현지시간) 마크롱 대통령이 대선 직후 파리 에펠탑 앞에 모인 자신의 지지자들과 함께 재선 성공을 자축하고 있다. ⓒ연합

국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재선,
유럽의 결속력 다지는 모멘텀 될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결선 투표에서 르펜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이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유럽지역 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지난 4월 24일 프랑스 대선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5년의 새로운 임기를 맞게 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2027년까지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를 책임지게 됐다. 27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유럽연합(EU)에서의 정치 경험이 누적된 마크롱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러한 경험과 리더십으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를 잇는 ‘유럽의 목소리’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유럽주의의 승리를 대표하는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 정계에서 손꼽히는 유럽주의자다. 프랑스 대선에서 EU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결선에서 반(反)유럽 민족주의 포퓰리즘을 대변하는 마린 르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유럽의 다른 국가 지도자들과 비교해도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 건설을 통해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프랑스 대선 결과에 EU의 많은 회원국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던 배경이다. 흥미롭게도 프랑스 결선 투표가 치러지던 날 슬로베니아에서는 반유럽 집권 세력이 총선에 패배해 친유럽 중도 세력에게 권력을 양도하는 결과가 도출됐다. 같은 날 발표된 프랑스와 슬로베니아 두 국가의 선거 결과가 유럽주의의 승리를 보여준 셈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 건설에 대해 일관된 목표 의식을 보여주며 비전을 제시해 왔다고 평가된다. 예를 들어 지난 2017년 대통령에 처음 당선됐을 때도 ‘소르본 연설’을 통해 유럽이 나아가야 할 청사진을 제안하며 ‘유럽 주권(European sovereignty)’이라는 개념을 선보였다. 일반적으로 민족 국가에 적용되는 주권이라는 개념을 EU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그의 정치적 행보는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자마자 새로운 유럽의 비전을 내세웠다. 먼저 지난 5월 9일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의원은 물론, EU의 주요 지도자와 800여 명의 유럽 시민으로 구성된 ‘유럽 미래 회의(CFE)’와 만나 앞으로 추진할 통합의 방향을 설명했다. 첫 번째 임기의 ‘소르본 연설’에 이어 두 번째 임기의 ‘스트라스부르 선서(Serment)’를 선포한 것이다.

선서란 공직자가 임기를 시작할 때 약속하고 다짐하는 행위이자 과거 주권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큰 상징성을 갖는다. 마침 프랑스는 올 상반기 6개월짜리 유럽이사회의 순회 의장국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 이사회 단기 의장국 수반으로서 연설을 한 셈인데 막 재선된 터라 마치 5년 임기의 유럽 리더가 정식 선서라도 하는 듯 보였다.

지난 5월 4일(현지시간)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러시아 원유와 석유제품 수입을 중단하는 내용의 대러시아 6차 제재안을 제안했다. ⓒ연합
프랑스가 주도하는 EU의 제도적 개혁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선서를 통해 EU의 제도적 강화를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그는 코로나19 위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2020년대 유럽을 강타한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유럽은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현재 제도로는 곤란하다고 진단했다. 특히 외교·안보 등 주요 정책에서의 만장일치제는 신속한 정책 결정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다수결의 원칙을 적용하는 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도적 개혁은 유럽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영역이다. 수십 개 회원국이 모두 합의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2000년대 EU는 유럽 헌법(European Constitution)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해 거의 성공에 이르렀으나 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어 주저앉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유럽은 민주주의와 법치국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에 일단 합의하면 통합이 순탄하게 진행된다는 특징도 있다. 역사에 뚜렷한 업적을 남기려는 마크롱 대통령이 욕심을 낼 만한 영역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현재 EU의 주요 지도자를 임명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바 있다. 그는 2019년 유럽의회 선거 이후 새로운 지도자 진영을 마련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나 샤를 미셸 유럽이사회 의장을 추천하거나 선출되도록 하는 데 큰 힘을 쏟았다.

독일은 프랑스가 새로운 유럽 질서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파트너다. 유럽 통합의 역사에서 프랑스와 독일은 각각 정치와 경제를 대표하는 세력으로 쌍두마차를 이뤄왔다. 독일은 지난해 총선을 치르고 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녹색당의 연합 정부를 구성했다. 대통령이 핵심 역할을 하는 프랑스와는 제도적으로 다르나 중도 성향의 친유럽 정부가 들어섰다는 점에서 프랑스와 독일의 공동 리더십을 점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독일 외교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독일은 1970년대 이후 무역이나 협력을 통해 동독, 소련, 중국, 러시아 등 독재국가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동방정책(Ostpolitik)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나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독재의 침략적 속성을 바꾸는 데 실패했음을 절실히 깨닫고 군사적 강화를 통한 억지와 적극적 안보정책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프랑스의 유럽 주권이나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수용할 정치적 공간이 생겼다는 의미다.

물론 EU의 정치는 프랑스와 독일이 합의하더라도 다른 회원국의 지지를 받아야 추동력을 얻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헝가리와 폴란드는 EU의 틀을 벗어나는 돌발적 행동으로 분쟁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번 마크롱 대통령의 제도 개혁안에 대해서도 주로 동유럽과 북유럽 회원국들은 시기상조라며 반대의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달리 말해 제도 개혁을 포함한 유럽의 다양한 정책 추진은 장기적인 설득 노력을 동반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EU의 제도적 강화를 중요한 과제로 삼고 다수결 원칙의 적용 영역을 넓히는 제도적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24일 재선에 성공한 마크롱 대통령의 취임 연설 모습 ⓒ연합
EU,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결집력 강화하며 중국 견제
당장 유럽 발등에 떨어진 불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러시아의 노골적인 군사적 위협이 실천으로 옮겨지자 EU 동부 국가들은 유럽 연대를 강화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핀란드와 스웨덴은 중립주의 전통이 강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NATO 가입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러시아의 위협은 당분간 외교·안보 분야에서 유럽의 결집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경제 분야에서도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의존과 취약성을 드러냈다. EU는 현재 러시아산 석유 수입 중단조치를 논의 중이며 장기적으로 러시아산 석유·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을 펼것이다. 그 여파로 러시아는 중국이나 인도 등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 가려 유럽과 중국의 관계는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EU는 중국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EU는 2019년 중국을 ‘체계적 경쟁세력(systemic rival)’으로 규정했고 2020년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중국에 대한 공급사슬 의존도의 심각성을 경험했다. 2021년에는 중국이 대만 문제로 EU 회원국인 리투아니아에 대해 강압적 외교 및 무역 압박을 가한 것에 대해 유럽은 집단적으로 반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이 보인 태도도 유럽의 ‘중국관’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러시아의 호전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실제로는 독재 세력의 연대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중국이 계속 유지하고 있는 ‘제로 코로나’ 정책 또한 중국 체제의 특수성을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유럽이 미국만큼 강력한 중국 견제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중국을 국제 질서의 위협 요소로 바라보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국제 사회에서 마크롱 대통령을 유명하게 만든 표현은 ‘NATO의 뇌사(Brain Dead)’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미국과 동맹국 간의 관계가 악화될 당시 NATO의 마비를 비판하는 표현이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호주와 영국을 포함한 오커스(AUKUS) 동맹 형성 등에서도 미국-유럽, 미국-프랑스의 관계는 순탄하지 못했다. 2024년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도 미국-유럽 관계에 불안의 먹구름을 띄우는 요소다.

EU는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으로 확실한 리더를 갖게 되었고 제도 개혁을 통해 유럽 주권이나 자율적 외교·안보 능력을 추진할 만한 모멘텀을 얻었다. 독일과 프랑스가 원만하게 협력한다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룰 가능성도 있다. 외부 환경도 변화를 돕는 모양새다. 러시아가 가하는 직접적인 군사 압력은 유럽의 단합을 만드는 동력이며, 중국이 국제 사회에 보이는 오만한 태도 또한 유럽의 결속을 가속하는 요인이다. 여기에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0년대 후반에 보여준 대서양 동맹의 취약성과 불안정성도 유럽의 자율성을 자극할 전망이다.

조 홍 식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