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82022.06.

서방권의 결속과 함께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양국관계를 넘어 점차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진영 간의 대립으로 전개되고 있다.
사진은 우크라이나 서부의 르비우 시청 인근에 마련된 전쟁 희생자 추모공간 ⓒ연합

분석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한

글로벌 대립구도 계기 삼아
핵능력 고도화 주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북한의 대응을 살펴보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국제질서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을 분석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발한 사실상 최초의 전면전이며 핵을 보유한 세계 2위의 군사강국 러시아가 자발적 비핵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으로 전쟁은 장기화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진영 간 대립으로 번진 우크라이나 사태
러시아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러시아 수뇌부는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쟁 직후인 2월 27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난하며 핵무기를 운용하는 전략로켓군에게 ‘특별전투임무태세 돌입’을 지시했다. 이어 3월 26일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핵 충돌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푸틴 대통령은 4월 20일 자국의 신형 ICBM인 RS-28 사르마트 시험발사 직후 “적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러 구조적 제약상 러시아가 실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언술적 차원의 경고 성격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꺼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존 핵비확산체제(NPT)와 글로벌 핵질서는 직간접적 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러시아가 고전하고 있는 원인은 우크라이나군의 분투와 국민적 저항, 러시아군의 부실한 전력과 전쟁 수행능력 결여 등으로 다양하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미국과 NATO 등 서방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다. 스팅어, 재블린, NLAW 등 미국과 NATO가 제공한 무기체계는 막강한 러시아의 기갑전력 및 항공 세력을 무력화하고 있다. 서방권은 사실상 무제한의 정보와 군수물자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있으며, 4월 2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30억 달러의 추가 지원을 의회에 요청하기도 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은 초기에 소화기를 중심으로 지원했던 것을 넘어 장갑차와 자주포 등 각종 중화기까지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있다. 유럽의 상당수 국가들이 천연가스와 석유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어 서방권의 대응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대부분의 서방권 국가들은 강력한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국제결제시스템(SWIFT) 퇴출에 이어 유엔(UN)의 인권이사국 자격을 정지당했다.

서방권의 결속과 함께 전쟁의 양상은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양국관계를 넘어 점차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진영 간의 대립으로 전개되고 있다. 고립주의적 경향을 보였던 트럼프 정부 때와는 달리 바이든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동맹과의 연대 강화 및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 복원을 도모하는 ‘가치기반 국제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가치기반 국제주의’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진영의 연대를 강화해 권위주의 진영에 대응하겠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권 출범 첫해인 2021년 12월 110개국을 초청해 세계 민주주의 정상회의(Global Summit for Democracy)를 개최했지만 중국·러시아·북한 등은 제외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바이든 정부의 ‘가치기반 국제주의’는 탄력을 받고 있으며, 민주주의 진영의 연대가 강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글로벌 대립구도가 형성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더욱 뚜렷해진 북한의 핵능력 강화 행보
우크라이나 사태는 북한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발적 비핵화를 선택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게 침공당한 상황에서 핵보유에 대한 북한의 집착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북한은 우크라이나 사태 진행 중에 핵능력 고도화를 위한 행보를 가속화했다. 금년 3월 상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국가우주개발국과 서해위성발사장을 방문해 각각 ‘다량의 군사정찰위성 배치’와 다양한 로켓 발사를 위해 “시설을 현대적으로 개건 확장할 것”을 지시했다.

위성과 로켓 발사는 모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개발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북한이 스스로 폭파했던 풍계리 핵실험장의 갱도 복구를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북한은 3월 24일에는 화성-17형이라고 주장하는 ICBM을 발사해 자발적 모라토리엄을 공개적으로 파기했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 가능성도 높아진 상황이다.

한반도는 아직 정전상태에 있으며 북핵 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25일 열린 북한의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기념일 열병식 ⓒ연합/조선중앙통신

우크라이나 사태는 북한의 핵교리(nuclear doctrine)의 변화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4월 16일 김정은 위원장 참관 하에 신형 전술유도 무기를 발사하고 “전술핵 운용의 효과성과 화력임무 다각화를 강화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전술유도무기의 사거리가 110km였다는 점에서 그 대상은 대한민국 수도권임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김여정 부부장은 2022년 4월 4일 담화를 통해 남북 간 군사적 충돌 시 “우리의 핵전투무력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며 남한을 대상으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숨기지 않았다. 김여정 부부장은 전쟁 초기에 핵무기가 동원된다며 핵 선제 사용 의도까지 내보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기념일 열병식에서 ‘근본이익을 침탈’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경고했으며, 기념 연회에서는 핵 선제 사용 가능성에 대해 재차 언급했다. 핵전쟁이 아닌 상황에서도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공언한 셈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근본이익’의 범위는 매우 자의적이며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핵무기 사용조건을 이렇게까지 추상적이고 넓게 정의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북한은 지금까지 핵무기는 북미 간 문제이며 남한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이제 태도를 바꿔 핵무기의 대상은 한국·미국을 가리지 않으며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 한반도에서 선제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재래식 무기의 질적 우위가 현대 전쟁의 향배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입증하고 있다.

재래식 전력에서 한미동맹에 비해 현저한 열세를 보이고 있는 북한이 전술핵무기를 활용해 한반도에서 전술적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반도 핵문제의 질적인 변화이다.
글로벌 대립구도, 신냉전으로 이어질까
북한은 유엔의 러시아 규탄 성명에 반대한 5개국 중 하나로, 우크라이나 사태 전개과정에서 일방적으로 러시아를 지지했다. 북한과 러시아 모두 강력한 국제제재에 직면해 있다는 동병상련을 기반으로 북러 연대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한편, 우크라이나 사태의 모든 원인을 미국과 NATO에 돌리며 비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고립무원의 러시아로서는 북한의 일방적 편들기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2018년 3월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북중관계는 지속적으로 강화돼 왔다. 중국에게도 전략적 자산으로서 북한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점차 심화되고 있는 미중 전략경쟁 구도 속에서 북한은 중국이 사실상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맹방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북러관계의 밀착행보를 지속해 향후 북·중·러 연대의 강화를 도모할 개연성도 있다. 북·중·러 협력체제의 형성은 북한의 고립을 완화시켜 주는 완충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가 주도하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진영 간 대립구도가 심화될 경우 북·중·러 간 연대도 자연스럽게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의 글로벌 대립구도를 신냉전으로 규정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냉전체제에서 공산권은 코메콘(COMECON) 등 자체 내의 지역 공급망(RVC)을 형성함으로써 자본주의 진영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았다. 반면 현재 러시아는 물론 중국도 글로벌공급망(GVC)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각 국 내 민주주의 및 인권 상황이 상이하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진영의 글로벌 연대 강화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쿼드 참여국 중 하나이면서도 우크라이나 사태에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인도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 자본주의국들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에서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진영 간 대립구도의 형성은 중국과 러시아에게 도전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북러경협은 북중관계에 비해 매우 미미한 수준이며 러시아는 에너지를 제외하고 북한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공산품을 제공할 능력이 없다. 북한 역시 외교안보와 경제적 측면 모두에서 러시아에게 큰 도움을 주기 어렵다. 따라서 북·중·러 연대의 강화에도 불구하고 시너지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한반도는 아직 정전상태에 있으며 북핵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무고한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비극적인 희생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양측의 천문학적인 피해를 감안할 경우 전쟁의 진정한 승리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다.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견인하는 것 이외의 해법이 있을 수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에도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 등 세계질서는 유동적이었다. 기후변화, 코로나19 등 신안보의 시대와 아울러 글로벌공급망, 첨단기술 등 신경제의 시대가 도래했다. 복합적 대전환의 시대라 할만하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평화와 안보의 교훈을 찾고 대전환기에서의 도전을 기회로 삼아 지속가능한 발전을 견인하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가전략을 모색할 시점이다.

조 한 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