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112024.9·10

예술로 평화

휴전선 귀순 실화 그린 영화 ‘탈주’

실패할 자유 있는 ‘내일’ 향한 질주
쫓고 쫓기는 긴박한 추격전에 흥행 가도

탈북 과정을 다룬 작품은 많다. 북에서 탈출해 남한에 정착하기까지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의 고군분투를 그린 작품도 많다. 대개 탈북민이 남한 생활에 대한 희망과 꿈을 품고 탈북을 감행하다 위기를 맞고, 그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운 위기를 겪지만 끝내 자유의 땅을 밟는다는 내용이다.

탈북 과정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굶주림에 지친 생계형 탈북, 민주주의를 지향한 정치 이념형 탈북, 종교의 자유를 소망하는 신앙형 탈북, 북에서의 생활보다 나은 삶을 원해 택하는 이민형 탈북, 더 넓은 곳에서 공부하기를 원하거나 자녀의 미래를 생각한 유학형 탈북이 소재가 되곤 한다. 일가족이 목숨을 걸고 탈북을 진행하는 ‘비욘드 유토피아’. 탈북자들이 겪은 열악한 수감 생활을 담은 ‘도토리’, 탈북을 한 가장이 북에 두고 온 아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크로싱’이 이런 이야기에 속할 것이다. 탈북은 그렇게 인생의 한순간을 통해 장면화된다.

실패할 자유 있는 ‘내일’ 향한 질주
영화 ‘탈주’는 순간의 연속을 통해 탈북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북한 비무장지대(DMZ) 인근 최전방 군부대에서 10년 만기 제대를 앞둔 중사 규남(이제훈 분)은 자신의 출신성분으로는 북한에서 더는 희망을 찾기 어렵다는 걸 자각한다. 때마침 우연히 접한 남한의 한 라디오 방송이 그에게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방송은 규남의 탈주를 돕는 경로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지리적 환경에서 벗어나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희로애락을 담는다.

영화는 미래를 선택할 수 없는 북을 벗어나 원하는 것을 해볼 수 있는 철책 너머로의 탈주를 시도하는 규남의 이야기를 다각도로 담는다. 규남의 탈주 계획을 알아챈 하급 병사 동혁(홍사빈)이 먼저 탈주를 시도하고, 이를 말리려던 규남까지 졸지에 탈주병으로 체포된다. 탈주병 조사를 위해 부대로 온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은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규남을 탈주병을 체포한 노력 영웅으로 둔갑시키고 사단장 직속 보좌 자리까지 마련해주며 실적을 올리려 한다. 그러면서 규남에게 “허튼 생각 말고 받아들여. 이것이 네 운명이야”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규남이 본격적인 탈출을 감행하자 현상은 물러설 길 없는 추격을 시작한다. 규남의 실패할 자유가 있는 내일(한국)을 향한 질주와 오늘(북한)을 지키기 위한 보위부 장교 현상의 목숨 건 추격전이다.

영화 탈주는 7월 3일 개봉 10일 만에 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하며 올여름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최단기간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8월 말 기준 누적 관객 수 255만 명을 넘기며 장기 흥행 모드에 들어갔다. 북한 또는 분단을 소재로 한 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사그라질 즈음 충무로의 예상을 깨고 관객을 사로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이 영화의 매력은 귀순 병사의 뻔한 탈출기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더욱이 영화의 흥행을 보장하는 요소인 남북 대결 구도를 비중 있게 다루는 것도 아니다. 그저 탈출하지 못하더라도 꿈과 자유를 얻기 위해 탈주를 선택하는 전개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복잡한 일상과 오버랩되며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

“자유의 땅에서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다“
영화는 실제 북한 군인의 탈북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 때문에 더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에 단역으로 직접 출연까지 한 배우 정하늘 씨다. 영화 속 북한 군대와 군인들의 실상, 탈북 과정 역시 정 씨의 탈주를 모티프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북한 최전방에서 병사로 근무하다 휴전선 지뢰밭을 넘어 2012년 탈북해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남한에 정착한 지 5년 만에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고, 국회 인턴, 선교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021년에는 탈북민 유튜브 채널 ‘북시탈’을 개설해 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채널에는 탈북민들이 출연해 북한 사회와 군대의 실상, 북한 젊은 층의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의 유튜브 채널을 눈여겨보던 영화사 관계자가 정 씨에게 북한 관련 영화에 관해 자문을 하게 된 일을 계기로 이 영화의 제작 자문역뿐만 아니라 단역으로 출연까지 했다. ‘소총남 1’이 정 씨가 연기한 인물로, 북한 내부 저항세력의 두목(이솜 분) 옆에서 총을 쥐고 있는 청년이 바로 그다. 정 씨의 활약 덕에 영화는 북한 실상을 생생하게 담은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가 개봉해 국내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이 어떨까. 정 씨는 “영화 촬영 현장을 다니면서 영화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 영화 제작과 촬영은 무척 매력적인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정 씨는 훗날 기회가 닿는다면 철책선을 앞두고 몇 년 전 자신처럼 잠복근무에 시달리고 있을 북한 군인들에게도 자유의 땅, 대한민국의 존재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지금 바로 최전방에 나가 ‘너희가 독재의 노예로 살고 있을 때 목숨 걸고 그 삶을 뿌리친 나는 자유의 땅에서 자유로운 창작을 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다’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습니다.”

·김 건 희 기자 |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