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112024.9·10

푸른 낙엽 김유정 지음/ 280쪽/ 푸른사상

북한 리얼 스토리

목숨 건 탈북녀의 초상 아픔을 딛고 나아가다

김유경 작가는 북한 조선작가동맹 소속 작가로 활동하다가 2000년대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작가는 자신이 겪고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탈북민의 애환을 소설로 담았다.

그동안 3만5000여 명의 탈북민이 우리 사회에 정착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목소리가 나온다. 그들이 새로운 땅에서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북한 조선작가동맹 소속 작가로 활동하다 한국에 들어온 저자는 북한에 남은 가족이 감당해야 할 위험 때문에 여전히 실명과 과거 행적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

“중앙당에서 내려온 지도원 동지이시오,
수혁 아바이를 찾아오셨소.”
부락 당비서는 몇 살 위인 남편을 아바이라 불렀다.
하긴 남편은 누가 봐도 초췌한 시골 노인네였다.
반가움보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남편과 달리 중앙당 손님은 벙글거리며 매끈하고 통통한 손을 내밀었다.
평양 손님은 남편의 손을 얼른 당겨 잡으며 측은해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평양손님
타도 계급인 지주로 드러나면서 삼십여 년 전 이른 봄날 추방된 남편을 평양에서 왜 찾아왔을까. 남편 친구인 평양 손님은 곧 소환장이 떨어지고 남편이 물리학연구소에서 근무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남편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나갔다. 손님이 들었던 윗방 앉은뱅이책상 위에 놓인 하얀 쪽지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월남한 허 동무 백부가 미국에 살고 있는데 죽기 전 허 동무 아버지와 가족을 만나고 싶어 하네. 허 동무는 평성과학원에서 의젓한 과학자 신분으로 백부를 만나야 하지만, 자네를 보니 너무도 몰라보게 변했네.’ 변장을 하라는 말에 남편이 거절한 것이다. 그렇지만 온 마을에서 보는 눈이 달라졌다. 가족과 따돌림을 받으며 결혼한 나로서는 뼈저린 만족이었다.

‘장첸 씨 아내’는 지금 대한민국 교수님
“소연은 오로지 장첸 씨 가슴에만 아내로 깊이 새겨졌을 뿐,
이 세상 그 어디서도 인정받기 힘든 관계였다.
아내는 중국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이었다.
그래서 결혼 등록을 바로 할 수 없었다.
장차 돈을 마련해 아내의 호적을 사고 결혼 등록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럴 사이 없이 아내가 도망쳤다.”
-‘장첸 씨 아내’
아내가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확신하게 된 것은 동네에서 살던 탈북 여성의 귀띔 때문이었다. 장첸 씨는 한국에서 아내를 찾기 위해 한국말을 공부했다. 2년 만에 한국으로 가는 취업비자를 얻어 식당일을 하면서 아내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그 아내는 장첸 씨 집에 발을 들인 첫날부터 탈출을 생각했다. 중국 남성에게 팔려간 것은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수난에 불과했다.

아내는 대한민국에서 문 교수로 변해 있었다. 최연소 박사가 되고 대학교수로 뛰어난 인재라고 소문이 났다. 유튜브를 통해서 지난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열아홉 살에 탈북을 했고 낯선 이국땅에서 살기 위해 팔려갔으며 뱃속에 딸을 임신한 상태에서 탈출했다. 딸아이는 아버지에 대해 한마디도 묻지 않는다고 했다. 장첸 씨는 그 모습을 영상으로 보고 늑대 소리 같은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입가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너 혹시 조선족 아가씨야? 나는 한국말로 물었다.
아가씨는 대번에 눈이 커지더니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어머나, 그럼 아저씬 남조선 사람? 나는 흠칫 놀랐다.
그때까지 북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조금 마신 술기운이 싹 가셔지고 날카로운 경계심이 뒤통수를 갈겼다.
웨이터를 부르려고 하자 아가씨가 나의 팔을 잡으며 애원했다.
나를 내쫓으면 매를 맞아요.
제발 쫓지 마세요.”
-‘푸른 낙엽’
미선을 처음 알게 된 것은 8년 전 중국에서였다. 꽤 큰 식품회사 사업을 하던 나는 IMF로 사업을 접고 간신히 집 하나를 건졌다. 중국 사업에 사활을 걸었지만 이미 회사는 기울었고, 통역 겸 경리인 조선족이 회사 자금을 빼돌려 도망쳤다. 아내와 이혼 서류에 도장 찍은 날, 칭다오의 한 술집에서 탈북자 미선을 처음 봤다. 그녀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저히 도와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입국한 미선은 간호대학에 입학했다. 혼인신고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자신이 대학 졸업 때까지 미루자고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언젠가는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이 차이 등으로 자존감은 늘 곪아 있었으며 둘 사이에 다툼은 점점 늘어갔다. 갈수록 말은 거칠어졌고 서로 깊은 상처를 남겼다.

허무하게 관계가 끝나려는 어느 날 미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환자가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입원했습니다.’ 간호사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쿡 솟구쳤다. 면회 후 허둥지둥 병실을 나섰다. 나는 물기를 머금고 반들거리는 푸른 낙엽 몇 개를 집어 들고 들여다보았다. 그 가여운 미선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눈물과 빗물이 앞을 가렸다.

무한경쟁 속 ‘적응기’ 사실적 묘사
“언니야, 다시는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 거야, 꼭.
근데 한국 말고 우리 조국에서 살 거야.
그깟 집? 조국에 돌아가면 예술단 주변에 집을 잡아주고 언니와 같이 살게 해준댔어.
언니의 잘못을 다 용서해준다고, 과거를 묻지 않고 받아준다고 했어.
정말이야, 내가 장담해.
당 비서 동지랑 보위원 동지랑 약속했거든.”
-‘붉은 낙인’
흰 볼이 통통한 동생의 얼굴은 무척이나 낯설면서 낯익었다. 동생 진미와 헤어진 지 만 십년 만의 자매 상봉이다. 편안하게 자는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동생을 탈북시켰다는 것이 실감났다. 상하이에 도착해서 이틀을 기다려 그렇게 찾던 동생을 만났다. 동생은 브로커가 마련한 옌지(연길)의 가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별을 절감한 진옥의 구슬픈 호곡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저자의 소설은 목숨 건 탈북 과정뿐만 아니라 중국에서의 숨죽인 삶, 어렵게 찾아온 남쪽에서의 녹록지 않은 생활에도 초점을 맞춘다. 평생 좁은 우물에 갇혀 살다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삶에 적응해가며 넘어지고 일어서는 용기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윤 융 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