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112024.9·10

지난 6월 19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새로운 파트너십 기념식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담은 문서를
교환하고 있다. (AP/뉴시스)

국제

러·북 신조약 분석을 통한 우리의 대응 방안

러·북 자동 군사개입 ‘제한적’
北 도발 대비하며 러·중과 소통 강화해야

2024년 6월 19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러시아와 북한이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러·북 신조약)’을 체결하면서 역내 긴장감이 고조됨은 물론 새로운 러·북 관계 정립과 주변 정세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신조약 조문 분석과 함께 우리의 대응 방안을 모색해봤다.

냉전 시절 소위 동맹 관계였던 러시아와 북한은 냉전 종식 후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포함된 1961년 ‘상호원조조약’이 1996년 폐기되는 등 오히려 중·북 관계보다 더 소원해진 관계로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최근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전쟁이 예상외로 장기화하면서 러시아는 군수물자가 부족한 상황에 처하게 됐고, 북한은 기존의 유엔 제재에 더해 코로나19 차단을 위한 국경 봉쇄에 이은 심각한 자연재해로 경제난이 더욱 가중되는 상황에 몰렸다. 결국 양국은 소위 신냉전이 본격화되는 국제 관계 속에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관계 개선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번 푸틴 대통령의 방북과 신조약 체결 이전에도 유엔 제재 대상인 북한의 군수물자 반출은 이미 비공개로 합의 및 진행된 것으로 관측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가로 러시아 또한 식량과 에너지, 미사일 기술 지원 등 북한의 요구에 상당 부분 호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양국 정상이 공식적으로 대외에 공표하는 문서로 ‘구속력 있는 합의’를 도출했기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는 물론 그 함의 또한 적절히 분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러·북, 사실상 준동맹 관계로 격상
우선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1961년 조약 제1조의 유사시 자동 개입 조항이 이번에 부활돼 양자 동맹 관계가 재건된 것인지에 대해 살펴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 조건 없이 유사시 자동 무력 개입을 규정했던 1961년 조약과 달리 이번에 체결된 신조약 제4조에는 두 가지의 추가 요건이 삽입돼 분명한 온도차가 존재한다.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 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러·북 신조약 제4조)

우선 러·북 신조약은 1961년 조약과 마찬가지로 일방이 ‘무력 침공(armed attack, 무력 공격)’을 받아 ‘전쟁 상태(in a state of war)’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지체 없이(immediately)’ ‘군사적 원조(military assistance)’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제공할 법적 의무(shall extend)를 규정하고 있다(영문은 유엔에 공식 등록된 1961년 조약 문구 참조). 즉, 두 조약이 공히 한반도 유사시 소련 또는 러시아의 군사개입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있는 것이다(그 반대도 성립). 다만 그 대상이 국제법상 금지된 침략 전쟁이 아니라 제3국으로부터 먼저 공격을 받은 경우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러시아가 먼저 침공한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북한이 남침한 6·25전쟁 등은 내용적으로 이 조항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푸틴 대통령 방북 바로 다음 날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된 2024년 러·북 신조약 제4조에는 ‘유엔 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의 법에 준하여’란 문구가 추가된 것이 눈에 띈다.

첫째, 유엔 헌장 제51조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자위권 행사를 규정한 조항이다. 양자가 국제법상 무력 사용 금지 원칙의 대표적인 예외 사항인 자위권 행사와 관련해 ‘합법적인’ 군사원조만 제공할 것임을 더욱 명확히 확인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군사원조를 침략 전쟁에까지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한 조약을 설사 양자가 체결한다고 해도 국제법상 ‘강행 규범(jus cogens)’ 위반에 해당해 이 조약은 원천 무효다.

두 번째로 러시아와 북한의 국내법에 준한다고 규정한 내용은 실질적 추가 조건을 새롭게 부과한 것으로 보인다. 1953년 한미 상호방위조약, 1960년 미·일 신안보조약 등 다수의 동맹조약에도 국내법 관련 규정이 존재하는데, 통상 각국의 헌법상 절차의 제한을 받게 된다. 이번 신조약의 경우 북한의 관련 국내법 규정은 특별히 확인되지 않으나, 러시아 연방 헌법 제102조에서는 국외 군사개입 시 연방 상원 재적 의원 과반의 찬성이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어 러시아의 군사개입은 국내 절차에 의해 거부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자동 군사개입’이란 단어가 이번 조약과 관련해 사용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푸틴 대통령의 절대적 영향력하에 있는 러시아 국내 정치 상황까지 함께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참고로 러시아는 벨라루스 등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과는 ‘전략적 동맹 관계’를 맺고 있으며 중국, 베트남 등과는 이번에 북한과 합의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아세안(ASEAN) 국가들과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러·북 신조약은 군사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의 양자 협력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도 적절한 관심과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제6조에서는 국가 주권 및 발전권을 강조하며 ‘정의롭고 다극화된 새로운 세계 질서 수립’과 관련된 양자 협력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반미를 기조로 한 소위 신냉전 구조의 공고화를 의도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이버·원자력 분야 협력도 예의주시해야
비슷한 맥락에서 제16조에서는 유엔 외 미국 등의 일방적 제재 조치에 대한 국제법상 위법성을 지적하며 이와 관련한 양자 협력을 규정하고 있다. 현재 국제사회의 주요 우려 사항과 관련될 수 있는 내용으로, 제8조에서 양국은 방위 능력 강화를 위해 공동 조치 관련 제도를 마련할 것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좀 더 체계적인 군사 협력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와 북한이 새롭게 체결한 신조약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러시아가 무력 침공한 전쟁은 ‘자동 군사개입’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사진은 러시아 국경 근처에서 불타는 차량 옆을 지나가는 우크라이나 탱크. (AP/뉴시스)
또 무역, 투자 분야 협력 확대와 함께 과학기술분야 중에서도 우주와 원자력 기술과 관련한 공동 연구를 제10조에서 적시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최근 힘을 쏟고 있는 인공위성 및 탄도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기술 협력은 물론이거니와 최근 미국 수출이 중단된 러시아 농축 우라늄의 북한 수출을 포함한 원자력발전소 관련 양자 간 협력 가능성도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이 최근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 비대칭전력인 사이버 분야 및 관련 국제규범 형성에서의 협력도 규정하고 있다(제18조). 문학과 언어, 출판, 언론 등에서의 협력도 규정하고 있는데(제19조, 제20조), 최근 외부 문물 및 문화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북한이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대안으로 러·북 간 관련 협력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번 신조약은 본 조약의 이행 등을 위한 추가적인 부문별 협정 체결 가능성을 명시하고 있다(제21조). 실제 두만강 국경 자동차 다리 건설에 관한 협정, 기타 보건과 의학·교육·과학 분야 협력 협정 등이 이번 푸틴 대통령 방북 시에 함께 체결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의 대러시아 노동자 송출을 위해서는 이러한 다리 건설뿐 아니라 유엔 제재를 회피할 수 있는 학생 비자나 관광 비자 발급 방안에 대해서도 양자가 함께 협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러시아·중국과 소통 강화 노력해야
이번 신조약은 과거 동맹 시절과 유사한 군사적 원조 가능성이 추가됐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러시아와 북한 내 관련 법제를 확인·분석함과 동시에 러시아의 구체적 관련 입장에 대한 추가 확인 또한 면밀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

1961년 조약에 없던 내용, 특히 러시아의 국내법에 준한다는 내용이 새롭게 포함된 것은 러시아 나름의 포석이 깔린 것으로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러·북 간에는 한미동맹과 달리 실제 동맹 관계로서의 제도화된 양자 군사 협력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향후 발전 방향을 예의주시하며 러시아와의 소통을 지속하면서 우리의 우려와 의사를 명확하고 선명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실제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료된다면 또 다른 상황이 전개될 수 있으며, 푸틴 사망 이후 변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월 3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AP/뉴시스)
동시에 우리의 동맹국인 미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협력 방안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 중국의 미묘한 입장 변화를 예의 주시하며, 명목상으로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여전히 유효한 1961년 중·북 상호원조조약의 당사국인 중국과의 소통 또한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를 적대국 관계로 규정한 북한으로서는 한국과 미국, 중국에 강력한 메시지를 주며 나름의 군사적, 경제적 실리를 취할 수 있는 러시아와의 양자 협력 강화를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는 당분간 러·북 협력에 대한 원칙적 비판 입장을 견지하며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견고한 방어 태세를 확립함과 동시에,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외교적 노력 또한 지속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북한과의 대화도 계속 열어놔야 한다. 현재 남북관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임에도 식량난과 경제난, 재난 등에 대한 긴급 구호 등 북한이 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있는 의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할 것이다.

조 정 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