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792021.09

분석

코로나19 확산,
스가 사임으로 혼란한 일본
새로운 대일 외교 구상해야



팬데믹 속 열린 도쿄올림픽 이후 일본의 국내정치 상황을 진단하고 한일관계 발전 방안을 살펴본다.



  일본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는 총리가 퇴진하는 징크스가 있다. 1964년의 도쿄 하계올림픽, 1972년의 삿포로 동계올림픽,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이 열린 해에 모두 총리가 교체되었다. 총리 퇴임은 올림픽이 예정되어 있던 해에도 해당되는데, 도쿄 하계올림픽과 삿포로 동계올림픽이 모두 중지되었던 1940년에는 내각이 두 번 교체되기도 했다. 이번 도쿄올림픽 개최가 예정되었던 2020년에는 아베 총리가 사퇴했다. 결국 스가 총리도 ‘올림픽 징크스’를 피하지 못했다.

  스가 총리가 백기를 들었다. 지난 9월 3일 차기 자민당 총재 입후보를 단념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코로나19 대응과 총재선(選)을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으나, 도쿄올림픽 강행으로 코로나19가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는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정권을 내던진 꼴이다.

  도쿄올림픽이 끝나고 일본에서 코로나19 확산이 심상치 않은 가운데 ‘정변’이 일어난 것이다. 국민 절반이 반대하는 올림픽이었지만, 일본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폐막 직후에는 결과적으로 잘했다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올림픽 폐막 후 폭발적인 감염 확대 사태가 통제되지 않았고 일본 국민들은 스가 내각을 퇴장시켰다. 올림픽이 끝나고 실시된 8월 22일의 요코하마 시장 선거가 레드카드였다. 스가 총리의 정치적 기반인 요코하마에서 그가 전면 지원한 오코노기 하치로(小此木八.) 전 국가공안위원장이 크게 패배했던 것이다. 스가의 총재선 재도전 의지를 꺾기에 충분한 충격적인 결과였다.


‘설명하지 않는’ 스가에 절망한 일본 국민
  지난 7월 스가 내각이 올림픽 개최를 강행할 때, 자민당 관계자는 도쿄에서 확진자가 3~4,000명이라도 나오는 사태가 발생하면 스가 총리가 퇴진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런데 도쿄도의 감염자 수는 올림픽이 개시 된 후 급증하기 시작해서 7월 28일 3,000명을 넘어섰고, 31일에는 4,000명을 넘어섰으며, 폐막 직전인 8월 5일에는 5,00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스가 총리는 이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내 유동인구는 올림픽 전후에 변화가 없다며, 올림픽과 감염 폭증의 상관성을 부인했다. 일본 국민들은 이런 스가 총리의 모습에서 무책임의 전형을 보기 시작했다. 과거 일본을 전쟁으로, 그리고 패전으로 이끌었던 오판들이 회자되며 스가 내각에서 이러한 무책임의 체질이 부활하고 있다는 경고가 지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일본 선수들의 메달 획득 소식으로 잠깐 들떴던 일본 국민들은 올림픽 이후 남겨진 것이 거대한 파편더미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대회 관련 경비는 3조 엔 이상으로 늘어났는데, 무관객으로 치르게 되어 관객 수입은 전혀 없었다. 당연히 경제파급효과는 없었고, 신국립경기장 등 관련 시설 유지비 등이 부담으로 남게 되었다. 기대했던 올림픽 정상 외교도 무산되었다. 거꾸로 도쿄올림픽 관계자들의 여성 비하발언, 장애인 괴롭힘 등의 스캔들로 일본의 낮은 인권감수성이 드러났다.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의료붕괴’가 현실화되었다. 특히 ‘자택요양’ 중에 사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8월 중 순 코로나19 확진 후 입원할 병원을 찾지 못해 자택요양 중이던 임산부가 집에서 출산한 뒤 신생아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는 병원 입원을 거부 당한 60대 확진 남성이 집에서 쓰러져 사망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수습되지 않는 가운데 개최된 도쿄 패럴림픽을 둘러싸고도 일본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국민의 정부 불신은 더욱 커졌다. 수학여행 중지 명령이 내려진 가운데, 초중등학교 연계관전 프로그램이 교육적 조치라는 명목으로 실시되었다. 그러나 그 모순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본 국민은 ‘설명하지 않는 스가 총리’에 절망하고 있었다. 긴급사태선언이 9월 12일까지 연기된 가운데 앤드루 파슨스(Andrew Parsons) 국제패럴림픽 회장의 환영회가 일본 정부 주요 인사 40여 명이 참석해서 개최된 데 대해서도 일본 국민은 납득하지 못했다.


스가 내각에 대한 불신과 정권 재창출 가능성
  이러한 불만과 불신은 스가 내각 지지율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8월 말 아사히신문과 NHK의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28~29%를 보여 30% 선이 무너졌다. 급기야 28일에 발표된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서는 26%로 곤두박질쳤다. 올림픽 이전인 7월 1일 조사 때 30%였던 것에서 4%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올림픽을 성과 삼아 9월 이후 자민당 총재 재선과 중의원 총선 승리를 이끌어가려던 스가 총리에게 올림픽은 오히려 정권 재창출의 암초가 되었다.

  같은 조사에서 자민당 총재 적임자를 묻는 질문에 선두 그룹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과 고노 다로(河野太.) 행정개혁담당상이다.

  스가의 총재선 불출마 선언으로 이 두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민적 인기에도 자민당 내 지지기반이 약한 이시바 전 간사장은 한때 불출마를 선언했었다. 코로나19와의 전선에서 정부와 국민이 일치단결해서 대응해야 할 상황인데, ‘내가 나서겠다’는 것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 불출마의 명분이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치러진 지난 총재 선거에서 예상외로 대패했던 것이 상처로 남아 있는 상태다. 총재선이 단거리 달리기가 된 상태에서 이를 짧은 시간에 극복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고노 행정개혁담당상은 지난 1월부터 백신접종담당상을 겸하고 있어 코로나19 대응의 핵심인 백신 공급과 접종에서 총책임을 맡고 있다. 백신 접종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혼란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다. ‘코로나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던 장수가 제대로 전과도 올리지 못한 채 후방으로 빠져나와 사령관이 되겠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지가 관건이다.

  이 두 사람을 제치고 가장 먼저 움직이고 있던 정치인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자민당 정조회장이다. 위에 소개한 여론조사에서는 10%를 차지했는데, 같은 내용으로 지난 1월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불과 2%를 차지했던 것에 비하면 기시다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반 아베, 반 스가의 기대감이 기시다에 모이고 있는 것이다. 이미 스가 지지를 내비치고 있던 아베 전 총리와 아소 부총리의 동향이 관건이다. 아베 전 총리가 이끄는 최대 파벌, 호소다(細田)파와 아소(麻生)파, 니카이(二階)파 등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다. 자민당 내 초장파 의원 및 지방 당원의 위기의식을 대변하는 이시바 전 간사장이 이들을 얼마나 조직화해내는가, 이시바 전 간사장에 적대적인 아베 전 총리와 호소다파가 이에 어떻게 대응해서 전선을 만들어낼 것인가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올 9월 이후 우리가 상대해야 할 일본 정부는 오리무중에 있다. 기시다가 앞서고 고노와 이시바가 뒤따르는 가운데,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상,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 환경상 등의 동향이 주목되고 있고, 다카이시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자민당 간사장 대행 등 최초의 여성 총리를 꿈꾸는 정치인들이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절대강자가 안 보이는 가운데, 아베를 다시 호출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지난 2월 18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도쿄 의료센터 코로나19 접종현장을 찾았다. ⓒ연합   

차기 내각은 코로나19와 올림픽 패럴림픽 후의
혼란을 수습하고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외 환경 안정화를 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 가운에 하나가 한일관계다.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지난 7월 23일 올림픽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시위하고 있다. ⓒ연합   

현상유지 정책 보완하며 구상 새롭게 해야
  그렇다면 우리의 대일외교는 어떠해야 하는가? 과거사 해법과 현안 협력을 분리하는 투트랙 접근으로의 복귀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이미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일본이 이러한 접근을 완강히 거부하고 과거사 문제 해법을 우리 정부에 강요하는 원트랙 접근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차기 내각은 코로나19와 올림픽 패럴림픽 후의 혼란을 수습하고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외 환경 안정화를 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 가운에 하나가 한일관계다. 이미 일본에서는 4차 한류를 배경으로 혐한류에 대한 피로감과 의구심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늘고있다. 아베 및 스가 정권의 대 한국 정책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미·일 동맹은 한계를 보이고 있고, 일본은 보험을 들어 위험을 분산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대만 문제에서 일본이 미·중 전략경쟁에 끌려들어갈 것을 경계하던 참에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계기로 일본은 다시 연루와 방기의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공격적인 해양 정책에 나서고 있고 이에 대한 일본의 경계심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일관계 개선은 차기 내각에게 외교 분야에서 성적을 올려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항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일관계 전환의 기회가 숨어 있기도 하다. 하반기 일본 정국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나아가 투트랙 접근의 한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투트랙 접근은 과거사 문제를 관리하고 현안 협력의 기조를 유지 발전시킨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상유지적이며 소극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G7에 초청된 민주주의 선진국가(D10), 기술 선진국가(T10)로서 지구정치에서 일정한 책임을 자임하며 중견국 외교를 지향한다면 대일 외교의 내용도 변해야 한다.

  저출생고령화, 기후변동 등은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야 할 새로운 영역이며, 경제와 안보 협력의 지체보다 더 심각한 구조적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이미 늦은 감이 있으나, 더 이상 늦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운 협력 트랙을 설정하고, 여기에서 신뢰를 구축하여 과거사 해결과 현안 협력으로 이끌어가는 보다 큰 구도의 대일 외교 구상이 필요하다. 한일 미래협력의 구상은 문재인 정부가 남은 임기에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다.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