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통일 | 여행이 문화를 만나다

청포를 입고 찾아온 여름, 경북 포항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淸泡)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 이육사 <청포도> -

경북 포항

한반도의 진짜 맥박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해가 뜨는 가장 동쪽인 포항 호미곶.
이육사는 이곳 동해 바다를 마주보고 서서 바다 너머 거대한 세계를, 나아가 펼쳐질 조국의 미래를 예감했다.
‘내가 바라는 손님’이 입었을 청색 도포는 낡아도 표 나지 않는 옷이라 예로부터 청빈한 선비의 표상이었고,
또 당시 독립운동가가 즐겨 입었던 복장이기도 하다.
그 푸른빛은 어쩌면 정신과 기개, 모든 것을 품어 스스로 깊어가는 색깔일 것이다.
바다가 가장 푸른빛을 띠는 계절인 여름.
청년처럼 힘차게 태동 중인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8월의 바다 여행을 시작한다.

어둠을 몰아내고
새 역사를 기원하다, 호미곶

한반도를 호랑이 형상으로 보면 호미(虎尾)곶은 꼬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우리나라 동쪽 땅 끝에 있다. 새해 울산의 간절곶과 함께 일출의 명소로 꼽히지만, 동해 여름 바다의 풍경은 특별한 이벤트 없이도 발길을 이끈다.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서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조형물은 단연 ‘상생의 손’이다. 한 손은 바다 위에 있고 또 한 손은 육지에 있는데, 아이를 안기 위해 한껏 벌린 어머니의 넓은 품처럼 품이 넓으니 그 어떤 것도 감싸 안을 수 있을 것 같이 넉넉하다. 바다와 육지에 서 있는 손은 너와 나, 서로 다른 것들의 화합을 상징한다고 한다. 2000년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기념으로 조성됐는데 이 청동 조형물과 바닷물 색의 푸른 조화가 퍽 이채롭다.

상생의 손 왼편에는 육각형 모양의 6층짜리 대형 등대가 서 있는데, 이 등대의 사연도 예사롭지 않다. ‘호미곶 등대’는 1903년 고종 때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대의 등대로, 등대 내부의 천장에 대한제국의 상징인 오얏꽃 문양이 새겨져 있다. 어둠을 몰아내고 조국을 밝힐 등불로 여겼을까, 고종은 곳곳에 등대를 지어 풍전의 등불 같은 조국을 지키고, 다시 떠오르는 해처럼 역사를 시작하고자 했다. 어쩌면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들, 우리가 너무나 놓치는 의미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화려한 해변의 의미 뒤에 숨은 진짜 무거운 역사 때문이다. 그 절박한 의미를 읽어내고는 문득 걸음이 느려졌다.

호미곶 광장에서 조금 벗어나면 해안을 배경으로 이육사의 시비가 서 있는데, 정돈되지 않고 어수선한 주변 때문에 찾기가 쉽지 않다.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을” 만큼, 그토록 소원하던 그 평화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데,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 걸까. 비석 하나에 겨우 몇 글자 새겨놓았을 뿐인 듯하여 보는 사람의 마음이 쓸쓸해졌다.

마주보는 ‘상생의 손’과 호미곶 광장의 전경 ▲ 마주보는 ‘상생의 손’과 호미곶 광장의 전경

‘고전적인 느낌이 드는 호미곶 등대 ▲ 고전적인 느낌이 드는 호미곶 등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淸泡)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 이육사 <청포도> -

풍요로움 그 이면의
아픈 역사를 담은 항구, 구룡포

풍요로움의 상징, 구룡포항 ▲ 풍요로움의 상징, 구룡포항

'번화했던 옛 풍경을 담고 있는 목조 건축물 ▲ 번화했던 옛 풍경을 담고 있는 목조 건축물 포항하면 어떤 이는 구룡포를 떠올릴 만큼 이름도 풍경도 유명한 항구가 바로 구룡포항이다. 구룡포구에는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고 갯내음만 맡아도 어촌의 분위기가 확연하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품은 갯마을인 구룡포.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일상의 풍경 사이에는 일제 강점기 번화가의 흔적도 보존되어 있다. 이는 일제 강점기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근대문화역사거리’다. 평화로운 어촌에 어울리지 않게 일본식 목조 건물이 줄지어 있는데, 일반 가옥보다는 그 시절의 병원, 백화상점, 요리점, 여관 등의 상점이 대부분이다. 먼 한때 이곳은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고 노랫소리로 소란스러웠을 것이다.

본디 구룡포는 풍요의 항구였다. 일제 강점기에도 동해 최대의 어업 전진기지로서 일본 정부를 통해 어업권을 확보한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던 것도, 풍요로운 어업 자원 때문이었다. 그 당시 일본인들이 동해에서 잡아들인 물고기로 얻은 수익은, 들판에서 수탈된 곡식과 비견할 만큼 막대한 양이었다. 광복이 되면서 주인을 되찾은 구룡포항은 과메기와 오징어, 전국 최대의 대게 산지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속의 아픈 추억은 옛말이 되었지만, 슬픈 그 풍요의 흔적, 가슴 아픈 역사의 자취를 천천히 걷는다.

‘떠오르는 해’와
‘동해 바다의 바람’을 벗삼다, 해파랑길

최근 포항의 뜨는 명소인 ‘해파랑길’은 ‘해랑 바다랑 말동무 하며 걷는다’는 의미로 지어진 예쁜 우리말 이름이다. 부산의 오륙도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이어진 트래킹 코스로, 동해 바다를 옆에 끼고 끝도 없이 걸어가는 해안길이 백미다. 싱가포르 총리 리셴륭(李顯龍)이 휴가 때 해파랑길을 걷고 페이스북에 사진과 감상을 올린 후 그 정취가 외국 관광객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리 총리가 걷지는 않았지만, 호미곶에서 구룡포까지 이어진 14코스를 따라 걷는 해안로 역시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호미곶이 호랑이의 꼬리로 비유된다면, 동해안 해안을 타고 걷는 이 길은 호랑이의 등허리인 셈이다. 해파랑길을 걷노라면 망망한 동해 바다를 따라 호랑이의 등을 타고 질주하는 듯 시원하게 막힌 속이 트인다.

걷기가 부담스럽다면, 드라이브도 역시 좋다. 본디 도로는 빠르고 편리한 교통을 위해 만들어졌겠지만, 해파랑길의 일부 해안의 도로는 구불구불 이어져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안개가 조금 있는 하늘이었으나 여기저기 눈 닿는 자리마다 빛이 닿았다. 우렁차게 몰아치는 파도의 기세도 좀처럼 거부감이 들지 않고 마치 내 몸의 움직임처럼 익숙하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파도도 마음도 어느새 유순해진다. 홀로 바닷길을 가는 이유는 이런 감동 때문이 아닐까. 주인 없이 온전한 바다나 하늘이 내 앞에서 한동안 여운에 잠긴다.

동해안 해파랑길 ▲ 동해안 해파랑길

풍부한 먹거리,
없는 게 없는 죽도시장

‘시장에서 먹은 물회 한 그릇 ▲ 시장에서 먹은 물회 한 그릇 수산물 풍부한 포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행코스, 포항의 죽도 시장을 혹자는 ‘대한민국 해물 1번지’라고도 하고 ‘노량진 수산시장의 업그레이드판’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규모도 커서 여기저기 어항 가득 대게며, 오징어며, 고등어와 방어가 물 만나 반짝반짝 빛을 낸다. 이곳에 왔으니 누구나 꼭 한 번은 먹어본다는 물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한 그릇 먹기 위해 앉았다. 일단 그릇 안에 담긴 회만 보아도 배가 무를 만큼 포항의 ‘물회’는 명성 그대로 푸짐하다.

전통시장을 들르면 멋드러진 우리네 삶을 덤으로 얻어가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여행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재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기운찬 상인들의 목소리가, 막 떠오르는 태양처럼 힘차고 그 에너지에 8월 더위에 지쳤던 발걸음 또한 가벼워졌다. 온몸으로 뛰놀아도 아름답고 땀에 흠뻑 젖을 만큼 숨 가쁜 우리의 청춘, 이를 예감했던 옛 사람들의 삶을 이제는 기억해주고 싶었던 뜻 깊은 어느 여름의 포항이었다.

<글: 김혜진 / 사진: 김규성>

※ 웹진 <e-행복한통일>에 게재된 내용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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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발행 : 2017-07-12 / 제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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