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832022.01.

2021년 12월 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화상을 통해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막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

진단

민주주의 정상회의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구축

지난 12월, 한미안보협의회와 바이든 미 대통령이 주최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구축 노력을 살펴보고 한미동맹과 한미안보협력의 과제를 살펴본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110여 개국을 초청하여 12월 9~10일 비대면 화상 회의 방식으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이었다. 2020년 「포린어페어(Foreign Affairs)」지 3~4월호에 실리고, 웹으로는 1월에 발표된 “미국 리더십의 복원(Why America Must Lead Again: Rescuing U.S. Foreign Policy after Trump)”에서 바이든은 민주주의의 복원, 중산층을 위한 외교, 그리고 미국 리더십의 재건을 대외정책의 세 가지 주요 목표로 내세웠다. 또한 민주주의 기획의 일환으로 취임 첫해에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a global summit for democracy)” 개최를 공약했다. 그리고 공약대로 임기 첫해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계기로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가 개최됐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둘러싼 논란
미국은 2020년 1월에서 2021년 12월 사이에 코로나19 팬데믹, 경제-인종 위기, 트럼프의 대선 불복과 1·6 의사당 반란 사건, 아프간에서의 전면 철군, 미·중 갈등 의 심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여파로 민주주의 정상회의 역시 논란의 대상이었다.

1·6 의사당 반란의 충격 속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도 2월 4일 발표한 “세계 속의 미국”이란 대외정책 연설에서 “체계적 인종주의”를 교정하는 등 미국 민주주의의 기반을 공고히 해야만 자신의 임기 초에 개최될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of Democracy)”에서 미국이 민주주의 기획의 신뢰성 있는 파트너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8월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간에서 전면 철군을 단행하면서,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간에서 벌인 ‘영구한 전쟁’은 탈레반의 승리로 끝났다. 아프간 철군 과정에서의 혼돈은 바이든 행정부에게 심대한 타격이었다. 미국인 소개(疏開)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능, 동맹국들과의 협의 부족에 따른 신뢰 훼손, 그리고 ‘무조건 철군’이 의미하는 민주주의 기획의 포기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출범 원년의 마지막 주요 외교 행사로 추진했다.

11월 미 국무부가 초청국 명단을 발표하면서 폴란드와 필리핀, 인도와 파키스탄 등이 과연 민주주의 국가인지, 110여 개국이 참여하는 이틀간의 비대면 회담에서 민주주의의 증진을 위한 실제적 합의가 가능한지 등 다양한 논란이 촉발됐다. 특히 미국이 대만을 초청하고 회담 개최 직전에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발표하면서,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민주주의 정상회담을 냉전의 진영 체제를 부활시키려는 미국의 패권주의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둘러싼 이러한 논란의 역사적·구조적 배경은 미국 민주주의와 리더십의 상대적 쇠퇴이고, 그 직접적 원인은 민주주의의 복원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바이든의 구상 자체에 있었다. 바이든이 2020년 1월에 밝힌 민주주의 정상회의의 목적은 “자유세계 국가들의 정신과 공통 목표를 갱신(to renew the spirit and shared purpose of the nations of the free world)”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상대적 쇠퇴는 2002년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와 2021년 바이든 행정부의 ‘잠정 국가안보전략 지침(Interim National Security Strategy Guidance)’을 비교하면 극명하게 확인된다. 2002년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의 서문에서 부시 대통령은 냉전의 종언으로 미국체제 즉,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기업은 이제 모든 국가에게 적용되는 단 하나의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이며, “미국은 유례없는 군사적 힘과 거대한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천명했다.

2021년 12월 1일 제53차 한미안보협의회(SCM)를 하루 앞두고 한미는 서울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제6회 한미동맹의 밤’ 행사를 가졌다. ⓒ연합
역사적 변곡점에 처한 바이든 행정부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은 미국의 군사적 힘이 지닌 한계와 민주주의 증진 기획의 처참한 실패를 노정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병폐가 드러났고, 2016년 트럼프의 집권으로 미국 민주주의의 역진이 시작됐다. 2021년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 지침’은 민주주의의 위기, 중국의 부상에 따른 실제 세력균형의 변화,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쇠퇴, 그리고 기술혁명으로 인해서 미국은 민주주의와 독재 중 어느 체제가 더 성장과 안정 등을 제공하는지 경쟁하는 ‘역사적 변곡점’에 처해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미국은 상대적 힘의 우위를 재건해야 하는데, 그방법으로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미국체제의 재건(내적 균형), 동맹과 파트너들을 동원하는 세력균형, 그리고 미국 중심의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을 들고 있다.

2020년 대선 국면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극복하려 한 민주주의와 동맹의 훼손, 경제적 민족주의와 배외주의, 인종주의 등 트럼프의 적폐는 미국체제가 지닌 구조적 병폐의 산물이었다. 바이든의 민주주의 정상회의 구상은 “연방선거에서 사적 자금의 영향력을 완전히 제거하는 헌법 개정안”을 포함하는 미국 정치의 구조적 개혁을 전제하고, 그 연장선에서 부패 해소, 권위주의에 맞선 민주주의 방어, 그리고 인권 증진을 의제로 한 것이었다. 금권선거를 포함한 부패의 해소는 민주주의 쇠퇴의 공통적 원인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위한(for) 정상회담’ 의제의 성격을 띠지만, 권위주의에 맞선 민주주의 방어는 민주주의 국가만 참여하는 ‘민주주의의(of) 정상회담’ 의제의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2021년 12월, 실제 민주주의 정상회의 의제는 민주주의 방어, 부패 해소, 인권증진 순으로 설정되었는데 이는 진영 대립의 성격이 상대적으로 강조된 것이다.

이에 따른 논란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가치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통해서 미국이 과연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자유세계 국가들”의 단합을 이끌어냈는가 하는 전략적 효과에 관한 것이다. 물론 이 둘은 민주주의 대 독재의 경쟁이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역사 인식’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2021년 12월 15일(현지 시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화상을 통해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두 정상은 미국의 압박에 맞선 전략적 공조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연합
민주주의 정상회의의 전략적 효과와 한계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에 주목하는 입장에서는 민주주의와 독재의 성과 경쟁이라는 틀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민주주의는 정치공동체의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공평한 권력의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로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이를 성장이나 안정과 같은 성과의 문제로 치환하면 서구 민주주의 내부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모디 총리 등과 같은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정당화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미국과 인도와 폴란드 등 미국의 동맹국들이 2010년대 이후 민주주의의 역진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이러한 비판은 특히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연관되어 힘을 얻고 있다. 바이든이 희망한 “체계적 인종주의”의 교정이나 금권선거의 개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공화당원의 60%가 2020년 대선이 불법선거였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지지하며, 주 의회 차원에서 공화당이 선거관리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소수인종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입법을 시도하여 다음 대선에서는 ‘합법적인 대선 불복’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현실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기획이 국제적 지지를 받으려면 미국 자신의 문제에 대한 정직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하고, 동맹국들의 비자유주의 리더십에 대한 통제가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정상회의의 전략적 효과로는 적어도 이런 국제회의를 미국이 개최할 수 있는 능력이 확인된 점과 중국과 러시아가 강력하게 반발한 데서 드러나는 이념적 견제의 효과를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기후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등 인류 전체의 공통 위협에 직면한 상황에서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글로벌리즘’의 반발도 거세다. 미국이 대만과 홍콩, 신장 문제 등으로 중국과 대치하는 동시에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와도 대립하면서 중·러 양국의 협력이 강화되는 전략적 구도도 버겁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도전은 경제적인 영역에서 추동되는 것인데, 바이든 행정부가 ‘중산층을 위한 외교’ 때문에 경제적 다 자주의의 복원에서 전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군사적 견제에만 치중해서는 애초 미국이 제안했었던 CPTPP1에 가입을 신청한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비관론도 제기된다.
1) CPTPP: 일본 주도로 아시아·태평양 11개국이 참여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으로, 2018년 12월 30일 발효되었다.
이 혜 정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