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만나다│길위의 풍경

하늘과 땅이 맞닿아, 김제

한 눈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너른 평야에 선다. 노랗게 머리맡을 물들인 채 고개를 숙인 벼이삭 너머, 저 멀리 하늘과 땅이 맞닿는다. 한반도 땅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 내는 곳. 북쪽의 만경강과 남쪽의 동진강 사이 풍요로운 땅, 김제만경을 품은 이곳이 김제다.

황토 땅에 다독여 묻은 그리운 이름 하나,‘황토정보화마을’

황토정보화마을 더 없이 평범한 김제의 시골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고향이다. 껑충 키가 자랐어도 ‘늘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리워’지는 고향.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하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나고, 동네 어귀까지 구수한 밥 냄새가 퍼지던. 추억 어린 그 곳. 굳이 이곳 태생이 아니어도, 김제는 다 큰 어른들이 가슴속에 품고 있는 고향땅과 참 많이 닮았다. 그래서였을까. 한국전쟁당시 황해도 등 이북지역에서 내려 온 피난민들이 하나 둘, 이 땅 어디쯤 터를 마련해 살기 시작한 이유 말이다.

황토정보화마을 김제시에서 북동쪽으로 18km쯤 달리면 닿는 황토정보화마을은 김제시의 대표적인 실향민 마을이다. 또한 2011년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해 경상북도 상주시 봉상마을과 지역 특산물을 교환하며 동서화합 한마당잔치를 개최한 곳이기도 하다.

논과 밭전쟁의 포화를 피해 남으로, 남으로 내려 온 피난민들은 조용한 야산 한 자락에 옹기종기 터를 잡고 논과 밭을 가꿨다. 다행히 비옥한 황토는 정직하게 땀 흘린 만큼 질 좋은 농산물을 선물로 주었고 그렇게 고향땅을 떠나 60여 년이 훌쩍 넘었다. 현재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실향민은 약 80여 명. 16, 17살에 피난을 온 홍안의 청년들은 이제 흰머리가 성성해졌다. 마을 한쪽 망향탑을 세우고 고향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 이 중에 벌써 세상을 뜬 이들도 여럿이다. 정 붙이고 살고 있는 곳이 고향이라 했던가. 이제는 고향생각보다 타지에서 생활하는 자식 걱정이 더 크지만 아직도 겨울이면 마을회관에 모여 황해도식 만두를 빚어 나눠 먹곤 한다고. 마을이장인 이철웅 씨는 황해도 송화군 출신의 아버지가 9살 때 피난을 와 이곳에 터를 잡은 경우다. 고향을 그리워할 새 없이 그저 주린 배를 채우기에 바빴던 지난 세월을 덤덤히 회고하는 어르신들. 하지만 아직도 이북에서 내려 온 고향동무들을 만날 때면 열여섯. 그 꽃 같았던 시절의 얼굴이 되곤 한다. 어디 그립다 말하지 않는다 한들 그립지 않을 리 있을까. 그때 그 시절, 꽃 피고 새 울던 내 고향이 말이다.

느리고, 바르고, 기쁘게 걷는 길, ‘김제 아름다운 순례길’

순례길 안내도언젠가부터 사람들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느리게. 처음 길에 나선 이유나 방법은 저마다 다르지만 걸을수록 말수는 줄어들고, 생각은 많아진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길의 끝에 다다를 쯤, 자신을 괴롭혀 왔던 수많은 생각이 부질없음을 깨닫게 된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어도, 누구하나 현명한 대답이나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음에도 그저 그 길을 오롯이 걷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깨닫고 치유 받는다. 아마도 그래서 이 길을 걷기 시작했으리라.

당연한 이야기지만 길에는 흙과 자갈, 들꽃과 먼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람과 햇살, 눈물과 웃음, 그리고 한숨이 섞인 이야기가 차곡이 쌓여 길이 된다. 전라북도의 대표적인 도보 길인 ‘아름다운 순례길’ 역시 마찬가지다. ‘느리고, 바르고, 기쁘게’의 줄임말인 달팽이 ‘느바기’의 안내에 따라 전주, 익산, 김제, 완제를 잇는 길은 꼬박 일주일 이상을 걸어야 완주할 수 있는데, 그중 김제 금산사에서 금산교회와 원평교당을 지나 수류성당에 이르는 14.5km 구간은 이 도보 길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개신교와 원불교, 불교, 천주교 등 4대 종교 유적은 물론 동학농민운동, 일제강점기 민족 저항 운동의 역사적 흔적까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1400년 시간 속을 걷다,‘금산사’

김제 순례길의 시작은 1400여 년 역사를 간직한 불교사찰, 금산사로부터 시작된다. 금산사는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모악산 자락에 위치해 있어, 빼어난 자연풍광을 자랑하는데 특히 가을날의 운치를 만끽하기에 좋다. 금산사 평탄하게 이어진 길을 차분히 걷다보면 사찰의 관문인 홍예문을 시작으로 일주문과 금강문, 천왕문, 보제루 등을 차례로 지나, 드디어 사찰 경내에 들어서게 된다. 백제시대에 지어져, 후백제의 견훤이 유폐되었던 곳. 신라의 통일 이후 중창되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승병들이 백성을 지켜냈고, 그 보복으로 정유재란 당시 불에 탔던, 사찰은 그 존재 자체로 역사가 된다. 그리고 긴 역사를 증명하듯 무려 11개의 국가지정 문화재를 보물처럼 품고 있다.

금산사 미륵전그중 가장 장엄한 볼거리가 바로 미륵전이다. 겉으로 는 나무로 지어진 3층 건물로 보이지만 안쪽으로는 통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개를 쳐들지 않으면 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미륵불이 모셔져있다. 사찰 자체가 워낙 규모가 큰데다 볼거리가 많아 머무는 동안 지루할 틈 없이 시간이 흐른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바삐 걸음을 옮길 필요는 없다. ‘걷는 사람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 거처를 정한다’하지 않던가. 그저 제 마음이 내키는 만큼 머물러, 쉬었다 또 다시 걸어가면 된다.

세월을 견뎌 온 강건함, ‘금산교회’

그래도 기왕 내딛은 걸은 순례길을 조금 더 걷고 싶다면 가을 햇살 아래 호수처럼 곱게 반짝이는 금평저수지를 옆에 끼고 금산교회 방면으로 향하면 된다. 낡은 나무 종탑이 가장 먼저 반기는 금산교회는 1908년 터를 잡은 후 100여 년이 넘는 동안 자리를 지킨 국내 단 두 개 남은 ‘ㄱ’자형 한옥교회다. 남녀가 유별했던 시절, 남성과 여성의 접촉을 막기 위해 ‘ㄱ’자 형으로 지어졌는데 천정의 대들보에는 각각 한자와 한글로 성경 구절이 적혀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 해도 당시의 시대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심지어 남자목사와 여신도들 사이, 시야를 막기 위해 쳤던 휘장까지도 그 시절의 것이다) 한옥 교회는 방문자의 조용한 경외를 자아내게 한다. 불쑥 교회 안으로 들어선다 한들 막는 이 하나 없다. 오랫동안 그래왔듯이 누구든 들어와 머물다 갈 수 있는 이 소박한 교회에는 긴 세월을 버텨 온 강건함이 남아있다. 금산교회

쌍룡이 지키고 있는, ‘벽골제’

지평선 벽골제 김제까지 왔으니 하늘과 땅이 일직선으로 맞닿는 지평선은 봐야하지 않겠나 싶겠지만 일부러 찾아 나설 필요는 없다. 걷다보면 시선이 닿는 어느 한 곳 쯤에서는 꼭 지평선을 만나게 될테니 말이다. 그래도 욕심내 제대로 김제평야를 보고 싶다면 벽골제 방향으로 향하면 된다. 매년 가을 지평선축제가 열리는 벽골제 인근에는 농경문화를 테마로 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벽골제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고대저수지다. 백제 비류왕 27년에 처음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많이 훼손됐으나, 고대 농경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로 보존되고 있다. 특히 벽골제를 비롯해 인근의 탁 트인 평야를 보고 싶다면 옥상전망대를 추천한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거대 규모의 청룡과 흑룡, 쌍룡이 버티고 있는 평야를 보고 있자니 감탄과 함께 든든한 기분마저 든다.

벽골제

정갈한 사찰이 낙조에 물드는 시간, ‘망해사’

망해사 어느덧 불그스름한 해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기 시작한다면 망해사로 간다. 만경강 하류와 서해에 접해있는 이 아담한 사찰은 늘 정갈한 모양새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화려한 볼거리도 압도적인 규모도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한번 발길이 멈추면 쉬이 자리를 옮길 수가 없는 특별함이 있다.

제법 서늘한 기운을 머금은 가을바람이 불어 고개를 들자, 새만금 방조제가 수평선 끝자락에 걸쳐있는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낙조가 시작된다. 전국에서도 한 손에 꼽힌다는 이 작은 사찰의 낙조는 기이할 만큼 조용하고 그래서 경외롭다.

아담한 사찰만 구경하기에 서운타 싶다면 사찰 뒤편으로 가보자. 망해사 뒤쪽에서 이어진 산책로는 바다와 평야를 모두 관람할 수 있어 은근 입소문을 타고 있는 ‘새만금 바람길’의 일부로 1km 남짓만 걸으면 심포항이라는 작은 포구도 갈 수 있다. 또한 망해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진봉산 전망대에 오르면 시원하게 펼쳐진 서해와 김제평야, 그리고 김제시의 모습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소박하고 평범한 집 밥이 그리울 때

밥 하루 종일 황금빛 들녘, 이곳저것을 걷다보니 ‘밥’이 먹고 싶어졌다. 그것도 제대로 차려 낸 한정식이 아닌 소박한 집 밥이. 다행히 벽골제 바로 앞에는 주막이나 밥집이 여럿 자리해 어렵지 않게 밥상을 받아들 수 있다. 지평선축제기간이 아니어도 상시 운영 중인 가게 중 한 곳을 차지하고 앉아 우거지해장국에 밥 한 그릇을 말아 게 눈 감추듯 해치운다. 때론 어떤 값비싼 상차림보다 매일 먹는 소박한 밥상이 그리운 법이다.

<글. 권혜리 / 사진. 나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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