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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통일 느낌 있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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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마음만 넘어 갈 수 있는 '그 곳' DMZ 트레인

멈춰 섰던 철마, 다시 달리기 시작하다 'DMZ 트레인'

잘 벼린 칼날처럼 경계가 삼엄한 남북한의 국방경계선. 당연히 민간인 통제지역(민통선)이다. 인적이 드물어, 스산했던 그 곳 주변으로 끊겼던 철로가 이어지고 멈춰 섰던 철마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딱 한 발자국이지만 북한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됐다. DMZ 주변이 여행지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4년 개통된 DMZ트레인의 영향이 크다. 평일 낮 한산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서울역에서 출발한 도라산 행 DMZ트레인은 만석이다. 총 세 칸짜리 관광용 트레인이라지만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부터 낯선 언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들과 젊은 연인들, 봄날의 병아리마냥 노란 원복을 맞춰 입은 유치원생까지 기차 안을 가득 채운 관광객들은 놀라울 만큼 그 연령대가 다양하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부터 매점 앞에 줄을 섰던 개구쟁이 녀석들이 남북분단 역사의 현장을 담은 사진으로 장식된 차량 벽면을 기웃거린다. 한국전쟁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원래 하나였으니까 통일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 덕분일까. 통일과 사랑, 화합을 테마로 화려하게 장식된 차량 안은 유독 반짝반짝 겨울 햇살이 넘쳐난다.

DMZ 트레인

북으로 향하는 철길, '경의선과 경원선'

DMZ트레인은 서울에서 출발해 임진강과 도라산 역으로 향하는 경의선과 서울, 청량리를 거쳐 연천, 백마고지로 향하는 경원선 두 개 노선으로 나눠 운행 중이다. 사실 목적지만 다를 뿐 최종 도착지인 도라산과 백마고지 역에서 바라보는 북한의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민통선 안에 경의선 최북단역인 도라산 역을 가보겠단 욕심에 고민 끝에 경의선에 올랐다. 덜컹거리는 기차의 흔들림에 익숙해 질 쯤 임진강에 도착한다. 목적지인 도라산 역에 가기 위해서는 임진강에서 출입신청서 작성과 신분증 확인이 필수다. 엄격한 표정으로 인원수를 꼼꼼히 확인하는 군인들의 서슬에 긴장한 것은 겁 많은 어른들 뿐. 고사리 같은 손을 맞잡은 유치원 아이들이나 개구쟁이 초등학생들에게는 그저 신기한 구경거리다. 인원점검이 끝나 다시 출발한 기차 안이 북적이기도 잠시, 한국전쟁 당시의 치열했던 흔적들이 느리게 창밖으로 지날 때마다 짧은 정적이 이어진다. 폭격으로 끊어진 다리와 한 번 멈춰선 뒤 두 번 다시 달리지 못하고 있는 녹슨 철마 그리고 철조망들이 새삼 우리가 하나였다 둘이 됐음을 깨닫게 한다.

경의선에서 보는 풍경

마음의 거리가 더 먼 그 곳, '도라산전망대와 도라산평화공원'

마침내 종착역인 도라산 역에 도착한다. 주변 안보관광지 시설 이용권과 셔틀버스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관광시설이용권을 구입했다면, 도라산 역 앞에 정차된 버스에 올라타면 된다. 탁 트인 들녘을 달려 닿은 첫 번째 관광지는 도라산 전망대다. 이곳에서는 망원경을 통해 북쪽 땅을 바라보면 개성 송악산과 김일성 동상, 장단역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물리적으로 지척이지만 마음만은 멀고 험한 거리. 바로 그곳에 북한이 있었다.

하지만, 평화로워 보이는 북한의 풍경에 긴장을 풀기도 잠시 사람 손으로 팠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깊고 좁은 제2 땅굴을 방문하는 순간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남북한의 대치상황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도라 전망대

얼어붙었던 마음이 슬그머니 다시 녹기 시작한 것은 도라산 역 인근의 도라산평화공원에 도착해서다. 분단의 현재와 통일의 내일을 꿈꾸는 다양한 조형물로 꾸며져 있는 공원에서 제일 먼저 시선을 붙잡는 것은 ‘분단의 벽을 넘어서’라는 제목의 은빛의 반짝이는 탑이다. 탑 주변으로는 사진전과 아담한 호수가 자리하고 있어, 유유자적 산책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금 이 계절이 좀 더 깊어져 희끗희끗 흰 눈발이 휘날리는 날에 찾아도 좋을 것이다.

남쪽의 마지막이 아닌 북쪽으로 향하는 처음, ‘도라산 역’

도라산 역 통일플랫폼다시 자박자박 길을 걸어 도라산 역으로 향한다. 최근 도라산 역사 안팎은 ‘통일로 가는 플랫폼’이란 주제 아래 특별한 전시들이 진행되고 있다. 통일을 향한 간절한 염원과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마련된 전시에서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평화를 적은 ‘통일의 문’, ‘유라시아 횡단철도 노선도’, 냉전시대 동독과 서독을 오갔던 미군 우편화차 등을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것은 플랫폼 이정표에 선명하게 새겨진 다음 정거장의 이름이다. 발이 묶인 철마가 제대로 달린다면 도라산 역 다음 정거장은 개성 역일 것이다. 물끄러미 북쪽을 향해 길게 뻗은 철로를 바라본다. 절절한 사연이나 남다른 애국심이 없다 해도 이 순간만큼은 한마음으로 기원하게 된다. 도라산 역이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닌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 될 수 있기를.

도라산 역 통일플랫폼

본래 하나였던 땅, 이 계절 같은 풍경이 흐르다 ‘임진각 국민관광지’

도라산 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다시 임진강 역에서 몸을 푼다. 임진강 역에서 5분 거리에는 임진각 국민관광지가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이곳에서는 황해도 한포역에서 출발해, 개성을 지나 장단역 부근에서 폭격으로 멈춰서야 했던 마지막 경의선 증기기관차와 분단된 국토를 잇는 통로인 83m 길이의 자유의 다리를 볼 수 있으며, 전망대에 오르면 남북한 똑같이 맞이한 이 계절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본 계절 풍경

투박하지만 따뜻하게 준비한 한 끼

DMZ 주변 관광의 매력 중 하나를 더 꼽자면 오염되지 않은 청정의 자연을 빼놓을 수 없다. 돗자리 하나만 있다면 어디든 피크닉 장소로 손색없어, 삼삼오오 도시락을 펼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미처 도시락을 못 챙겼다면 민통선 안 실향민 거주지역인 통일촌이나 임진각 주변의 식당을 찾아도 좋다. 질 좋은 콩을 생산하기로 유명한 지역답게 대부분의 식당이 직접 담근 장을 이용해 찌개나 전골 등을 투박하지만 정성스럽게 끓여낸다. 특히 통일촌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뷔페식으로 백반을 제공하는 식당도 있다. 반찬 수는 적지만 담백한 맛에 한 접시를 깨끗하게 비우게 된다.

뷔페식 백반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가장 특별하고 위험하다는 군사경계지역이란 사실이 희미해질 만큼 잘 웃고, 잘 걷고, 잘 먹고, 잘 생각하고 돌아오는 길. 학교에서 단체로 견학 온 아이들은 여행을 마치며 기차 내 비치된 기념엽서에 서툴지만 정성스럽게 ‘통일이 되자’고 눌러 적는다. 당연히 되어야 할 일. 하지만 아직 되지 못한 일. 하나였던 땅이 둘이 된 고통을 이 아이들이 깨닫기 되기 전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글/사진. 권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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