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협의회는 지난 16기 동안 24쌍의 멘토-멘티팀을 구성해 매달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올해 17기가 출범한 지 두 달여 만에 다시 총 30쌍으로 늘려 멘토-멘티결연식을 가졌다. 중랑구협의회 멘토링의 특징은 초중고 아동 및 청소년, 대학생뿐만 아니라 성인 탈북민들에게도 멘토링을 실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멘토링사업을 맡은 여성분과 위원들은 월례회의를 통해 사업을 수시로 점검하고 멘티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행사들을 만들어냈다. 명절이나 김장철의 나눔활동은 물론 여러 가지 문화체험 등을 병행하고 있다.
꾸준한 활동 덕분에 지역 내 탈북민들은 자신이 보살핌과 관심을 받고 있다고 느꼈고 협의회에서 진행하는 통일 사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탈북민들은 누구나 아픈 사연들을 가지고 있고, 그 사연을 말없이 들어주며 어루만져주는 것, 그게 바로 중랑구협의회 멘토단의 역할이다. 스스럼없이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게 되면서 점차 남북한주민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었다.
지난 2년여 간의 멘토링 활동은 많은 미담들을 낳았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55세의 탈북민 김영철(가명) 씨의 경우 교육상담과 청소년 재소자 심리당담을 맡고 있는 멘토자문위원이 멘토링을 맡으면서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 자신감을 얻고 공부를 시작하게 됐으며 남들에게 봉사하며 사는 삶을 꿈꾸게 됐다. 탈북대학생 선영(가명)이는 영어공부 때문에 늘 고민이었는데 멘토 자문위원의 후원으로 학원비를 지원받아 공부한 결과 9개월간 시드니로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또한 중학생 연호(가명)의 경우 멘토링에 참여는 하고 있었지만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어서 엄마와 자주 연락을 하고 지냈는데, 연호 엄마는 사춘기를 겪는 아들이 스마트폰에만 빠져있다며 멘토 자문위원에게 하소연했다. 멘토 자문위원의 조언에 따라 엄마는 주말에 한 번이라도 대화할 시간을 만들었고 그 결과 친밀감이 깊어져 예전의 관계를 회복했다고 한다.
전주시협의회는 ‘통일맞이 하나-다섯사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탈북민 멘토링을 구상하고 있었다. 일단 결연식을 맺고 초등학교 4명을 포함해 8명의 아이들을 멘티로 맞이했지만, 자문위원들과 학생간 나이차가 많다보니 1:1 멘토링이 어렵다고 판단, 남녀 자문위원 1명과 대학생 1명을 한 팀으로 이뤄 1:3 멘토링 결연을 맺었다. 또한 아이들이 혼자 멘토링활동에 나오기 꺼려할 수 있기 때문에 엄마까지 한 팀으로 묶어 2:3 멘토링을 지속해왔다. 이후 전주시협의회의 멘토링이 잘 이뤄진다는 소문을 듣고 두 가정의 탈북청소년과 엄마가 참여하길 희망해서 17기에는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멘토링은 지역문화 탐방과 역사체험을 비롯해 영화, 뮤지컬, 스포츠경기 관람 등 단순한 학습보다는 여러가지를 경험할 수 있도록 진행했으며 지난 10월에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윤봉길의시기념관과 김좌진 장군 묘역을 돌며 역사공부도 하고 체험도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11월에는 민주평통 통일한마당 행사에 부스를 마련해 ‘탈북민정착지원금 마련 바자’를 열었으며 올 연말에는 장학금 수여식과 함께 멘토링 평가와 소감을 듣는 시간도 예정돼 있다.
김분호 정착지원분과 위원장은 멘토링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거리감이 많았지만, 이젠 무슨 말을 해도 서로 대화가 되는 이웃이 됐다고 말한다. 김분호 위원장은 “멘티 아이들만 데리고 하는 활동도 몇 번 있었지만 엄마들을 참여시켰더니 호감도 높고 참여율도 높다”며, “무엇보다도 일회성 만남보다 지속적인 관심과 만남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 사하구협의회는 11월 정기회의에서 멘토링단을 재정비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경찰서 보안계에 의뢰한 결과 6명의 탈북청소년들을 소개받아 17기 멘토-멘티 결연식을 12월 7일 진행할 예정이다.
사하구협의회에서는 조병철 멘토자문위원(간사)의 멘토링 활동이 눈에 띈다. 조병철 자문위원은 지난해 초등학교 4학년인 강원이(가명)의 멘티가 됐다. 강원이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아이였다. 엄마가 밤중에 현관문을 두드린 남자에게 문을 열어줬다가 이유도 없이 30여 곳을 찔렸고 이를 말리려던 아빠마저 중상을 입었다. 겁에 질린 강원이가 112에 연락해 경찰이 들이닥쳤지만 강원이는 그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항공회사를 퇴직하고 심리상담을 하던 조병철 멘토 자문위원은 이들 가족을 매달 2~4번 가량 만나면서 심리치료도 하고 식사를 하면서 애로사항을 경청했다. 조 위원은 강원이의 이름이 특정 지역명과 같아서, 그리고 중국 말투를 쓴다고 해서 놀림을 자주 당한다는 말을 듣고 이름을 개명해줬다. 또한 병문안을 가거나 생일을 축하해주는 등 강원이를 세심하게 챙기면서 가족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제거하는 심리치료를 지속적으로 실시한 결과 아빠는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엄마도 파트타임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말을 잘 안하던 강원이는 이제 ‘까분다’고 할 정도로 성격이 밝고 명랑해졌다. 강원이는 이제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도 시작했다. 식사하다 말고 “저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요?”하고 묻자 조 위원은 “아프지 말고 네가 잘하는 축구도 열심히 하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만 잘 들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또한 중국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와 더불어 영어 실력도 갖춰나가면 미래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해줬다. 조 멘토자문위원은 ‘아이들은 멘토가 이끌기 나름’이라며 멘토의 마음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와 결연된 멘티를 자식 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해요. 내 시간 좀 뺏긴다고 소홀하면 아이들이 서운해 하거든요. 안 바쁜 사람이 어딨습니까? 정말 따뜻하게 포용해줘야겠다는 마음자세가 중요해요.”
<글. 기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