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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아동을 위한 행복그물망 엮어가요” 선생님, 남북한 부모, 탈북학생 멘토-멘티 토크 <서산 차동초등학교>
                    
                    탈북아동들이 세상의 거친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편견의 모서리에 긁혀 상처 나지 않도록 안전하게 행복그물망을 짜고 있는 차동초등학교. 탈북학생들을 가슴으로 보듬는 교사, 서로를 이해하며 공감대를 넓혀가는 탈북학생과 남한학생의 엄마들, 그리고 멘토 대학생과 멘티 탈북학생이 이곳 차동초등학교에 모여 작은 통일토크를 열었다.

5월 통일토크 참가자 소개

북한엄마 남한엄마 “자식 키우는 맘은 다 마찬가지”

서정숙 선생님(이하 선생님)▶ 차동초등학교는 2011년 탈북학생이 처음 입학했고 현재 일곱 명이 재학 중인데 여섯 명이 중국에서, 한 명이 북한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예요. 그동안 한서대학교 학생들이 탈북아이들의 멘토링을 해왔는데 작년부터는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의 탈북학생-대학생 멘토링이 이뤄지고 있고, 학교 자체적으로 선생님이 탈북학생들을 1대1로 돌봐주는 ‘제자맘두드림활동’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작년에 처음으로 탈북 학부모와 남한 학부모가 같이 어울리는 ‘친친부모동아리(이하 동아리)’도 결성돼 남북한 학부모들이 서로 친하게 교류하며 지내고 있어요.

심상옥(이하 남한 엄마)▶ 저는 원래 학교 사서도우미 봉사활동을 했었는데 동아리 취지가 좋아 선뜻 응하게 됐어요. 돕는다는 생각 보다는, 함께 만나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문화체험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처음엔 탈북 과정이나 북한생활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는데, 탈북 학부모들에게 상처가 될까봐 묻지 못하고 주로 육아나 생활 등 현실적인 대화를 하면서 친해졌어요. 한가지 반가운 소식은 탈북 학부모 한 분이 결혼 적령기의 여동생과 떨어져 지내며 걱정을 많이 하시기에 동네의 건실한 청년을 소개시켜 줬는데 이제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답니다(웃음).

조은주(이하 북한 엄마, 중한이 엄마)▶ 5년 전 제가 먼저 한국에 왔고 작년에 아이를 데려왔는데 한국말을 전혀 못했어요. 이 학교에서 다문화 교육을 위해 애쓰고 중국 학생들이 한국말을 배우며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고 우리 아이도 꼭 입학을 시키고 싶었어요. 남한 학교는 처음 와봤는데 교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가족처럼 편안한 느낌이 들면서,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죠. 그날 동아리를 소개받았는데 이 활동에 참가하면 제 아이도 잘 적응할 것 같았어요. 중한이는 지금 자기가 중국에서 왔다는 콤플렉스 없이 너무 잘 어울리고 있고 학교 가는 걸 재미있어 해요. 저는 저대로 어머니, 선생님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많은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선생님, 남북한 부모, 탈북학생 멘토-멘티 토크 선생님▶ 동아리 활동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학부모들을 모시고 워터파크에 갔을 때였어요. 쉬는 날이어서 학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오셨는데, 다 같이 수영복을 입고 화장기 없는 민낯이어서 쑥스럽긴 했지만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는지 몰라요.

북한 엄마▶ 워터파크는 처음 가봤어요. 그때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까지 했었는데, 남한 어머니들이나 우리나 다 같이 ‘자식 키우는 부모’라는 동질감을 느꼈어요. 이 학교를 어딘가에 가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생겼던 것도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아빠에게도 멘토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혜지 / 금석이 혜지(대학생 멘토, 한서대 무인항공기학과 2학년)▶ 고등학교 때 다문화 봉사 동아리를 했고, 마침 작년에 차동초 탈북학생 멘토링을 신청할 수 있게 돼 금석이와 만났어요. 학교가 태안 곰섬에 있다 보니 주말에만 함께 할 수 있었는데 공부보다는 금석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해주려고 했어요. 특히 해미읍성 축제 불꽃놀이를 보고 싶다고 해서 갔는데, 파전도 부쳐 먹고 옥사 체험도 하면서 이틀 연속 만났더니 급격하게 친해졌던 것 같아요.

금석이(멘티, 석림중1)▶ 맨 처음 언니랑 만났을 때 몇 번 만나고 나중에는 안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그랬어요. 대학생 언니랑 영화도 보고, 별도 관찰하고, 염전에도 가고 공부도 했어요.

혜지▶ 금석이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한대서 평생학습관에서 처음 만났는데, 당황했던 게 중국어로 된 책을 읽는 거예요. 책 읽는 걸 좋아하긴 좋아하는구나 생각했죠(웃음). 한글로 된 책은 읽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 함께 서점에 가서 책을 사주고 잘 모르는 단어는 저에게 물어보라고 이야기했어요.

금석이▶ 저희 아빠도 얼마 전 이곳에 왔는데 한국말을 아예 몰라요. 엄마가 저보고 아빠한테 가르쳐 드리라고 하는데 아빠가 안 배우시는 거예요. 저한테 배우느니 컴퓨터로 배우겠대요. 아빠에게도 혜지 언니처럼 대학생 멘토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엄마의 참여가 아이의 자신감과 인성을 높인다

선생님▶ ‘남한에 와서 가장 어려운 건 마음을 터놓고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거라고 말씀하시던 한 탈북 학부모를 만났는데, 이웃과의 교류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탈북하신 분들은 대개 경찰이나 상담사 등 어울릴 수 있는 분들이 한정돼 있는데 남북한엄마 동아리에서는 서로 친구처럼 지내실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아이들의 표정도 달라진 걸 느껴요. 자신감이 높아졌고 무엇보다 엄마가 북한이탈주민이라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은가 봐요. 선생님, 남북한 부모, 탈북학생 멘토-멘티 토크 북한 엄마▶ 제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계기가 하나 있었어요. 중한이가 중국에서 온 지 얼마 안돼서 말도 서툴고 친구들과의 소통도 어려웠을 때였는데, 학교에서 한여름에 한국민속촌 체험을 갔고 너무 더운 날이라 제가 함께 체험을 갔던 아이, 학부모 70여 명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눠줬어요.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난 중한이는 하나 더 사달라며 졸랐지만 사주지 않았어요. 저녁에 아이가 묻더라고요. 왜 엄마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다 사줘야 하냐고, 난 더 먹고 싶었는데 왜 사주지 않았냐고요. 아이에게 말했어요. ‘앞으로 이런 체험학습이 있을 때 다른 아이들 엄마가 오시지 못 한 것처럼 네 엄마도 못 올 수 있어. 그때 너만 아이스크림을 못 먹으면 좋아?’라고요. 그 뒤부터는 뭘 사주면 중한이가 항상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랑 나눠먹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일이 있고부터 중한이의 교우관계가 좋아졌고 더 빨리 학교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했던 금석이가 '달라졌어요'

선생님▶ 2년 반 전 금석이가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가 기억나요. ‘한국에 온지 한 달이 됐는데 집밖에 단 한 번도 안 나갔다, 내 말은 듣지도 않는다’며 엄마가 하소연을 했어요. 금석이는 오전 열시에 학교에 와서 무표정한 얼굴로 오후 두시까지 바닥만 보고 있더라고요.

금석이▶ 그때는 학교에 다니기 싫었어요. 한국말을 모르니까 오기 싫었던 거예요.
선생님, 남북한 부모, 탈북학생 멘토-멘티 토크 선생님▶ 한국어도 한국어지만, 중국에 있었다면 더 나았을 텐데 왜 한국에 데려와서 고생시키나며 금석이가 엄마를 안 좋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일단 금석이에게 붙일 수 있는 자원들은 다 붙여줬어요. 한국어강사, 기초학습도우미, 보조교사들까지 모두 불러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게 해줬더니 차츰 한국말도 늘고 적응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6학년 때 담임을 하면서 금석이의 제자맘두드림 멘토가 돼서 함께 많은 경험을 했어요. 차동초등학교는 매년 북한 어린이돕기 알뜰시장을 여는데 학생들이 물건을 가져와서 난전처럼 판 다음 이를 통일 기금으로 내는 행사에요. 그런데 금석이가 스케치북과 연필, 지우개를 가져온 거예요. 너 뭐 파니? 했더니 애들 얼굴을 그려서 팔겠대요. 깜짝 놀랐죠. 물론 잘 그리진 못했어요(웃음).

금석이 / 혜지 금석이▶ 남자 친구가 같이 그림을 그려서 팔자고 해서 한 건데, 애들 반응이 좋아서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애들이 보기만 하고 사진 않던데요(웃음).

혜지▶ 처음 멘토링 결연식에서 만났을 때 서로 엄청 낯을 가렸어요. 다른 팀은 활발하게 막 놀고 난리가 났는데 저희 둘은 ‘안녕’, ‘안녕하세요’ 인사만 하고 가만히 있었던 기억이 나요. 금석이는 문자를 보내도 네, 네라고 단답형으로만 대답하곤 했는데 몇 번 만나고 나니 ‘이런 거 해 보고 싶다’고도 하고 자기 감정표현도 잘 하게 되더라고요. 한번은 금석이가 별을 보고 싶다고 해서 천문기상과학관에 갔는데 구름이 껴서 안보였어요. 반짝반짝한 별을 상상하고 있던 금석이가 너무 실망을 했어요. ‘재미있었어?’ 물었더니 처음으로 ‘그냥 그랬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조금씩 마음을 여는구나 생각했어요.

탈북학생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우리들의 세상은...

북한 엄마▶ 이곳에는 선생님의 관심과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에 이탈하는 학생은 없을 거라 생각해요. 지난 주말에 바닷가에 가서 갯벌체험을 시켰는데 중한이가 중국에서 자라다보니 바다를 볼 기회가 없었어요. 바닷가에 처음 와 본다고 하니까 함께 가신 분이 ‘너희 엄마 나쁘다’고 했는데, 애가 ‘아니에요. 우리 엄마 좋은 엄마에요. 엄마가 저를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워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서정숙 선생님이 그러셨대요. ‘중환아 너는 좋은 어머니를 둬서 참 좋겠다. 이렇게 이쁜 옷도 사주시고’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학교라는 게 애들에게 너무 좋은 거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아이가 잘 적응하고 있어 지금으로서 다른 바람은 없지만 앞으로도 아이들이 편견을 갖지 않고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체험이나 교육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남한 엄마▶ 저는 남북한 엄마들이 많은 정보를 공유하면서 서로 알아가고 이해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남한 안에서 함께 살고 있는 남북한 주민간의 작은 통일이 먼저 이뤄져야 할 것 같아요.

금석이▶ 초등학교 때는 체험학습을 많이 다녔는데 중학교 가보니까 별로 없어요. 멘토 언니오빠들도 있었으면 좋겠고요. 저는 중국어를 할 수 있으니까 커서 여행 가이드를 하고 싶은데 지금 중학교에서는 중국어를 가르치지 않고 한문만 가르쳐요. 중국어도 과목으로 배운다면 더 재미있게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 남북한 부모, 탈북학생 멘토-멘티 토크

선생님, 남북한 부모, 탈북학생 멘토-멘티 토크 혜지▶ 초등학생은 체험활동이 많이 이뤄지지만 중고등학교는 고입, 대입을 위해 공부 위주로 운영이 되잖아요. 중고등학교 나이대의 탈북청소년들도 많은데 이 친구들은 남한문화를 체험할 기회가 별로 없는 거죠. 주말만이라도 이런 학생들이 문화체험, 사회적응을 위한 프로그램 등에 참가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통일이란 게 감성적으로는 다 되어야 한다고 생각 하지만 남북간 대화 이런 걸 일반 국민들이 할 순 없잖아요. 저도 우리나라 안에서 남북한 주민간 더 많이 교류하고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 처음 탈북학생을 만났을 때가 생각나요. 아이 눈이 빨개져서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급성소아당뇨였어요. 당뇨수치가 확 올라가 눈이 빨개졌던 거죠. 응급실에 데려갔는데 엄마는 공장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전화가 안됐고 아빠는 벽돌공장에 다닌다고 해서 서산 내 벽돌공장에 전부 전화를 걸어 수소문을 했어요. 겨우 찾았는데 공장 관계자가 아이 아빠에게 심한 욕을 하면서 바꿔주더라고요. 그리고 아이 아버지가 병원으로 달려오셨는데 한국어를 모르니 의사에게 뭐가 문제인지 묻지도, 이해하지도 못해요. 그 아이가 만약 그날 집에 혼자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나요. 그때 생각했어요. 애들에게 정말 마음을 열고 따뜻하게 대해줘야 겠다. 잘해주는 것, 바로 그게 필요하단 걸 느꼈어요. 또 한 가지, 탈북민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가 있는 곳이라면, 한 개 학교 정도는 우리학교처럼 탈북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저는 이런 자리가 너무 좋아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토크에 참가해 자기 마음을 이야기하고 소통하고 정보도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이게 통일을 위한 첫 걸음 아닐까요?

<글.기자희 / 사진. 나병필>

“2014 다문화·탈북학생 멘토링 우수사례 공모전”

성낙인 서산시협의회장,“북한이탈주민이 서산에 오고 싶게 만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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