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말하다│Today남북

북한 동요, 유머의 옷을 입고 스며들다 글. 이지순 연구교수(북한대학원대학교)

포털 사이트에서 ‘북한 동요’로 검색하면 <대홍단 감자>, <뽀뽀송> 등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앙증맞은 어린이가 귀여운 율동과 함께 선보이는 이 노래들은 한국의 네티즌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웹에서 공유되는 이 노래들은 북한 동요 그대로가 아니라 개그 스타일로 자막을 입힌 동영상들이다. 가장 인기 있는 <대홍단 감자>의 1절은 다음과 같다.
둥글둥글 왕감자 대홍단 감자 너무 커서 하나를 못 다 먹겠죠 야하~ 감자 감자 왕감자 참말 참말 좋아요 못 다 먹겠죠

개마고원 다음으로 넓은, 백두산 동쪽의 백무고원을 개간하여 건설된 곳이 대홍단 농장이다. 이곳에서 주로 생산하는 작물 중 하나가 감자이다. <대홍단 감자> 동영상을 본 남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개 ‘귀엽다’ ‘재미있다’ ‘웃기다’ 등이다. 그 중 ‘웃기다’가 압도적인 편이다. 누군가가 달아놓은 자막은 가사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자막은 북한 어린이의 과장된 표정과 우리와 다른 가창 방식, 북한 고유의 발성법으로 알아듣기 힘든 발음을 희화해 놓았다. 이는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공유를 부채질했고, 웃음 코드에 맞춰 감상하도록 하였다. 너무 커서 하나도 다 못 먹을 정도라는 왕감자는 ‘흰쌀처럼 맛있고’, 동영상 속 어린이가 두 팔을 벌려 가늠하듯이 ‘호박’만큼 크다. 춥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고 생육기간도 짧은 감자는 대표적인 구황작물이다. 이 노래는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 시기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북한이 정책적으로 장려했던 감자 농사를 배경으로 한다.

대홍단 감자아 한 사회의 노래에는 집단의 정서와 문화, 이데올로기 가 녹아 있다. 비단 동요라고 해서 그 자장에서 비껴있는 것은 아니다. 남한의 어린이들이 일상에서 배우는 동요에도 그런 흔적들은 얼마든지 발견된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목청 좋게 노래부르는 <개구리>(이동찬 작사, 홍난파 작곡)를 보면, 아들을 선호하던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모습이 들어 있다. 다만 북한의 동요는 애국의 정신과 민족의 넋이라는 이름 하에 좀 더 노골적이고 정치색은 짙다. “장군님 사랑 속에 풍년 들었죠”라고 노래하는 <대홍단 감자>의 가사는 북한 동요의 일반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다. 게다가 반미, 반제 주제를 지닌 전투적이며 공격적인 노래들도 많다. 남북한 분단이 불러온 많은 차이들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정치와 이념의 차이뿐만 아니라 사고방식, 생활방식의 차이, 더 나아가 노래 가사의 차이까지.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가사 자체만으로도 어여쁜 동요들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대홍단 감자>만큼이나 인기 있는 북한의 동요는 우리에게 ‘뽀뽀송’으로 알려진 <우리 아빠 제일 좋아>이다.
“내가 고와 뽀뽀 우리 엄마 뽀뽀/ 우리 엄마 뽀뽀가 제일 좋아/ 우리 엄마 뽀뽀가 제일 좋아// 내가 고와 뽀뽀 우리 아빠 뽀뽀/ 우리 아빠 뽀뽀가 제일 좋아/ 우리 아빠 뽀뽀가 제일 좋아”라고 부르는 <우리 아빠 제일 좋아>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뽀뽀뽀>와 같이 신나고 사랑스럽다.

북한 동요 부르는 어린이들

<우리 아빠 제일 좋아>는 탁아소나 유치원에서 배우고 널리 애창된다. 간주 중에 뽀뽀하는 시늉을 하다가 노래가 끝나면서 청중을 향해 손뽀뽀를 날리는 어린이는 귀엽고 깜찍하다. 듣다 보면 함께 흥이 나고 어린이의 어깨춤을 따라하게 된다. 남북한 체제 차이를 잊게 할 정도다. 이 노래가 남한 대중에게 인기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정서와 잘 맞는 노래는 또 있다. “저 건너집 김첨지 두 량주가 아침을 먹을 때 김치 깍두기 맛 참 좋시다~ 김치 깍두기 맛 참 좋시다~ 김치 깍두기 맛 참 좋시다~ 만반진수 차려놓고 김치 깍두기 없으면 아주 맛 없네”라고 부르는 <김치 깍두기의 노래>이다. 이 노래는 유치원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이 즐겨 부른다고 한다. 원래 구전되던 민요풍의 이 노래는 1980년대 보천보전자악단의 가수 리경숙이 부르면서 널리 애창되었다. 이와 비슷한 노래가 남한에도 있다.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로 시작하는 정광태의 <김치 주제가>가 그것이다. ‘김치’가 입맛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남북한은 역시 한 민족인 셈이다.

북한 어린이들 얼마 전 카톡으로 ‘한석봉과 어머니’ 유머 시리즈를 전달받았다. 공부하고 돌아왔다고 인사하는 한석봉에게 무관심한 어머니는 ‘언제 나갔었냐?’고 도리어 물어본다. 이 유머 시리즈는 ‘이제 너의 이름은 이석봉이다’라고 말하는 바람둥이 어머니에서부터 불을 끄고 떡을 썰면 손 벨까 겁을 내는 어머니, ‘난 떡을 썰 테니 너는 물을 길어라’라고 말하는 배고픈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한석봉 어머니는 신사임당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서 성역처럼 존재하는 어머니 아이콘이다. 이 유머는 1990년대 말 IMF 때 아버지 권위를 무너뜨린 최불암 시리즈와 유사하다. 전통적인 가부장의 권위와 모성 신화를 해체하기 때문이다. 금기의 해체는 파괴가 아니다. 완고한 시각에서 벗어나 유연한 접근이 가능해졌다는 말과 같은 셈이다.

북한 동요의 희화화된 자막은 우리에게 ‘웃음’과 함께 자발적으로 공유하도록 했지만, 한편으론 너무 우스개로 만든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웃음의 옷을 입은 북한 동요는 그동안 민족의 동질성만 강조해온 남북한 관계를 다른 시각에서 보도록 한다. 그것은 차이에 대한 긍정이다. 동질성의 강조가 오히려 서로의 차이를 외면하는 역할을 해 왔다면, 차이의 인정은 관용의 힘이 있다. 웃음 코드는 그동안 쌓아온 다름을 서로가 관용적으로 인정하고, 금기로 여겼던 상대방의 이질적인 문화를 유희하도록 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걸맞게 오늘날 대중은 북한 문화의 한 요소를 끌고 들어와 즐거운 놀이로서 향유한다. 놀이하게 하는 것은 웃음이다. 가볍고 경쾌하게. 무거운 진지함을 벗어던진 대중은 거시적인 남북한 관계에 있어 미약한 단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손가락 한 마디 만큼의 틈이 거대한 둑을 무너뜨리듯이, 대중의 유머 코드 속 북한 동요도 그러한 틈과 균열을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남북한이 유쾌한 웃음으로 서로를 긍정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이 보다 더 좋은 것은 없으리라.

<사진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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