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전쟁을 끝내는 실천,
종전선언 입구로 평화여정 재가동
문재인 대통령이 거듭 강조한 종전선언의 의미와 쟁점은 무엇인지 정리하면서, 향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어떻게 전개해 나가야 할지 전망해 본다.
종전선언은 전쟁을 끝내고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정치적 선언이다. 대개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 맨 앞에 명시되는 경우가 많다. 평화협정은 전쟁 당사자 간에 전쟁상태가 종료되었음을 천명하고 전후처리, 평화를 위한 법적 조건, 절차, 보장방안 등을 담은 국제법적 문건이다.
그런데 단기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힘든 경우,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선언을 하고 단계적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경우도 있다. 중동 분쟁 해결의 전환점이 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나 북아일랜드 분쟁을 종식시킨 ‘서닝데일 합의’ 등이 이런 예이다.
그동안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다. 1990년대 초반 남북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였으며, 4자회담(남·북·미·중)과 6자회담(남·북·미·중·일·러)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평화체제 전환의 실마리가 마련되지는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였다. 2018년 4·27 판문점선언은 남북관계 발전, 평화체제 전환, 군사적 신뢰 구축, 한반도비핵화 등을 병행 추진함으로써 한반도에서 대립과 불신을 끝내려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특히 남북 정상은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또한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미관계 개선, 평화체제 전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 송환 등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비핵화의 범위와 대상, 절차 등에 대한 북·미 간 입장차이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결렬되었다. 이후 북·미대화가 중단되면서 평화체제 전환 논의도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새로운 한반도를 여는 출발점, 종전선언
이런 상황에서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되살리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신행정부가 출범한 뒤, 북·미대화를 재개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새로운 구상이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 이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가동을 위해 종전선언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종전선언은 한국전쟁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신뢰형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한반도 평화를 여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70여 년 가까이 되었고, 북핵문제, 협정당사자, 평화보장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어서 단시일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우선 종전선언을 입구로 해서 평화의 여정을 걷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다.
전쟁 당사자들 간에 전쟁의 아픔을 마무리하고 신뢰를 축적해 우호협력관계를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종전선언은 평화로 가는 첫걸음이다.
특히 2021년 미국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고 북한은 8차 당대회를 개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막고 평화의 시계를 다시 움직이기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 종전선언을 출발점으로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고 북·미대화와 남북대화를 병행하여 진전시켜야 한다. 종전선언은 북·미대화를 재가동하고 평화프로세스를 위한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신뢰회복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민주평통 서울 강동구협의회가 종전을 기원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종전선언을 둘러싼 쟁점 : 비핵화와 주한미군은?
종전선언과 관련하여 비핵화와의 연관성, 당사자, 북·미의 찬성 가능성, 주한미군 및 유엔사의 미래 등 여러 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 종전선언과 비핵화는 동전의 앞뒤와 같이 연결되어 있다.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과 제재 해제 등 상응조치가 필요하다. 종전선언은 북한체제보장 및 한반도 평화정착의 출발점이다. 비핵화 촉진과 함께 평화체제 전환, 북·미관계 개선, 제재 해제 및 경제협력 등의 상응조치가 큰 틀에서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둘째,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의 당사자는 3자, 또는 4자 등 다양한 방식이 고려될 수 있다. 앞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당사자 및 협정체결 방식 등이 구체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한국전쟁의 당사자였던 한중, 미·중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적대관계를 청산했으나 북·미 간에는 적대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종전선언 추진이 어떤 방식으로 되든지 중요한 점은 북·미 간 적대관계 청산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종전선언에 대해서 북한과 미국이 어떤 입장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북한은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특히 김여정은 지난 7월 담화에서 향후 북·미협상이 ‘적대시정책 철회 대 북미협상 재개’의 틀에서 전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볼 때 향후 북한은 북·미대화 재개 시 종전선언의 필요성에 역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로 종전선언과 북·미연락사무소 개설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연방 하원의원 52명이 한반도 종전선언 지지 결의안에 서명한 것은 긍정적이다. 최근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지적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넷째,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및 유엔사의 위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주한미군 주둔이나 유엔사령부는 종전선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주한미군 주둔은 한미동맹에 근거한 것이며, 향후 동북아 정세와 한, 미의 전략적 판단에 의해 위상 및 역할이 결정될 것이다. 유엔사령부의 미래는 한반도 평화체제로 전환 이후 유엔에서 논의될 사안이다. 또한 북한은 그동안 주한미군을 용인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표명하였으므로, 종전선언이 이루어지고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주한미군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가질 가능성도 있다.
종전선언으로 비핵화 협상의 모멘텀 마련
종전선언을 출발점으로 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 종전선언은 평화프로세스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비핵화 협상의 모멘텀을 만들 수 있다. 종전선언을 계기로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종전선언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을 철회하겠다는 명시적 신호이기 때문에 북·미 간의 적대감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종전선언을 계기로 한반도 비핵평화 협상을 재개하면서 대북제재를 완화하면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수교 등으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그리고 종전선언에 의해 군사적 긴장이 감소되면 사실상의 평화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9·19군사합의에 따라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개최하여 군사적 신뢰구축, 교류협력을 위한 군사적 보장장치 마련, 군비통제 등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종전선언을 출발점으로 남북은 평화와 번영을 위한 여정의 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 종전선언을 촉매로 남북협력이 본격화되어 DMZ 국제평화지대화, 서해평화수역화, 한강하구 공동이용, 동해권의 관광 및 해운협력 등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금강산·백두산 등의 관광, 남북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 재개 등은 평화와 함께 오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9월 14일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공동대표들이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9월 평양공동선언 2년,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행동 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종전선언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내에서 학계와 민간단체 등을 중심으로 한반도 종전선언 캠페인을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여러 민간단체가 연합하여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종전 평화 선언 1억 명 서명운동’이 좋은 예이다. 그리고 지역별로 여건에 따라 종전·평화 캠페인 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전 세계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국제적 지지를 호소하는 평화공공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최근 미국과 뉴질랜드 의회 등에서 종전선언 지지결의안 채택을 위한 캠페인을 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관련국의 의회와 여론지도층에게 종전선언의 의미와 역할을 소개하는 한편, 해당 국가의 언어로 관련 정보를 포함하는 리플릿을 제공하고 웹사이트를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박 종 철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