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한반도와 주변국, 선순환과 악순환 사이
남북의 진정한 평화협력 하,
주변국의 협력과 지지 이끌어야
한반도 평화문제에서 주변국의 영향을 배제하기란 불가능하다. 국가들 사이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은 모두 세계적 강대국이기 때문에 그만큼 큰 영향력을 한반도에 행사해왔다. 한반도의 운명과 역사를 결정할 때도 많았는데, 오늘의 현실은 바로 그런 역사의 연장선 위에 있다.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에 관심을 갖는 것은 거기에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이익의 본질은 정치군사적 지배력과 경제적 이득이다. 남북한에 공히 가장 중요한 국가이익은 한반도 평화이지만 주변국들은 이를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 지지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조성된 평화 분위기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과 함께 더 이상 발전하기는커녕 악화되어 위기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뿐 아니라 남북관계마저도 주변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다시금 절감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국가 간의 역학관계를 살펴보고 우리의 대응책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주변국들의 역학관계와 대한반도 전략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은 전략적 목표와 이를 달성하려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 그래서 평화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평화를 만들 것인가, 평화상태에서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생긴다. 주변국들 사이뿐 아니라 그들이 남북한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야기되기도 한다.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은 지역 차원과 세계 차원의 전략에서 파생된다. 한반도 평화문제도 미국의 상위 전략과 맞물린 때에만 협력과 지원이 가능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임기 첫해인 2017년 12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서(NSS)’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확고히 천명했다. 이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국토를 보호하고 해외에 국력을 과시하면서 유리한 무역 정책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전략적 경쟁국(Strategic Rival Power)’으로 표현하면서 견제 의지도 드러냈다. 북한의 대량파괴무기(WMD) 위협과 관련해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의지를 밝혔다.
미 국방부가 2019년 6월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는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을 지역의 안보 위협 요인으로 지목하고 특히 북한을 ‘불량국가(Rogue State)’로 규정했다. 비핵화 이전에는 가능한 모든 대북제재를 이행하고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하여 한국, 일본 등 동맹국과 협력할 것임을 강조했다. 요컨대 미국이 한반도 평화를 보는 관점은 패권 도전 세력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억제하고, 북한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비핵화하여 지역 차원에서 ‘미국 주도의 평화(Pax Americana)’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대한반도 전략을 자국의 지역적·세계적 차원의 전략과 직접 연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비핵화에 관하여 미국과 협력해왔으며 유엔의 대북제재에도 동참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는 일관된 지지 입장을 표명하면서 ‘쌍중단(북한 미사일 발사와 미국 군사훈련 동시 중단)’과 ‘쌍궤병행(비핵화와 평화체제 동시 추진)’과 같은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중국에게 북한은 장기적인 미래 전략의 동반자이다. 사진은 지난해 6월 20일 시진핑 주석의 방북 시 5·1경기장에 이뤄진 북·중 친선을 강조한 공연 모습 ⓒ연합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관여는 두 가지 차원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미국의 견제에 대한 반응으로써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력이 중국을 봉쇄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역내에서 미국의 군사행동을 더 확대할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차원은 북한의 붕괴를 막는 것이다. 전통적인 이념적 동맹인 북한은 중국에게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소극적 의미뿐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 더 장기적인 미래 전략의 동반자이다. 경제제재나 내부적 요인에 의한 북한체제의 붕괴는 중국으로서는 상상하기 싫은 전략적 손실이다.
경제력에 비해 대외 정치군사적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일본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여에서도 소극적인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아베 정권은 소위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기 위하여 평화헌법 개정을 추구하고 우주전 및 사이버전 능력 구축에도 힘을 쏟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군사위성과 미사일방어체계 등 첨단 무기 도입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는 전혀 긍정적인 기여를 하지 못할 뿐아니라 오히려 ‘방해 세력’이라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미국에게 선 비핵화와 대북제재 강화를 집요하게 주문해왔으며 한국에 대해서도 2019년 7월부터 핵심 소재와 부품에 대한 경제제재를 단행했다. 일본에게는 아마 한반도 평화와 남북공동번영이 강력한 역내 경쟁자의 탄생을 의미하는 ‘재앙적’ 상황이 될 수 있으므로, 이를 저지하고 지연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노력을 계속할 것으로 판단된다.
러시아는 역내 주변국 중 한반도가 자국의 전략적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가장 적게 미치는 국가일 것이다. 그렇기에 러시아는 한반도문제에 좀 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건설적인 개입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물론 한반도의 평화가 러시아의 이익에 중요한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러시아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세계 패권과 동북아에서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또한 북한과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북한의 체제 붕괴를 막고 남북한과의 양자 또는 남·북·러 3자 간의 협력 사업을 추진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와 주변국의 선순환과 악순환 구조
한반도의 평화와 반평화(反平和)는 주변국의 이익 계산과 협력 여부에 따라 선순환적일 수도 있고 악순환적일 수도 있다. 만일 한반도 평화가 주변국의 이익을 증진한다면 협력을 강화할 것이고 그것은 다시 평화를 더 증진할 것이다. 반대로 한반도의 반평화적 상황에서 주변국이 반사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평화를 위한 협력을 거부하거나 오히려 방해할 것이고 그것은 다시 반평화적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다.
어떠한 성격의 순환이든 그 구동에 가장 큰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이다. 앞에서 논의한 주변국의 대한반도 전략에 기초하면, 선순환에 동참할 수 있는 국가는 중국과 러시아이고 제동을 걸 수 있는 국가는 일본이다. 악순환의 구동에는 일본이 가세할 가능성이 크고 중국과 러시아는 견제 세력으로서 전쟁과 같은 극단적 상황으로 악화하는 것을 방지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확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2018년부터 현재까지 한반도 평화는 선순환과 악순환의 과정을 한 번씩 겪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선순환은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으로 기본적인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자 북한 비핵화라는 미국의 이익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이득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진행되었다. 이는 다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등 한층 더 발전된 평화 분위기를 만들어냈으며 남북한 간에는 「9월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분야합의서」까지 도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평화의 선순환은 멈추고 반평화의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남북관계가 악화하고 군사적 긴장이 고조됨으로써 미국이 얻을 수 있는 반사적 이익이 커졌다.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 강화되었으며 연합군사훈련으로 전투력을 증대시키고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하고 무기 판매를 늘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반사이익은 미국에 대북 안전보장이나 제재 해제와 같은 조치에 소극적이고 남북관계의 독자적 발전에 비협조적 자세를 유지하는 근거를 제공했으며 급기야 지난 6월 대북전단 살포사건 이후 남북관계의 총체적 위기 상황이 발생하는 데 일조하였다.
지난해 9월 26일 미국 뉴욕 인터콘티넨털 바클레이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돌파전략은?
국가이익을 고리로 한 평화와 협력의 선순환은 주변국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남북한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크기와 속도가 달라진다. 반평화의 악순환 역시 남북이 서로 대결로 나갈 때 더 심화한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돌파 전략은 두 가지 방향에서 동시에 추진될 필요가 있다.
첫째, 미국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을 이끌어 내고 중국, 러시아, 일본의 지지를 증대하는 전략이다. 역설적으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혈맹’인 미국이다. 과도한 대미 의존에서 탈피하여 미국에 할 말은 해야 한다. 또한 한반도 평화의 과정과 미래상이 안보를 포함한 미국의 이익에 반평화의 악순환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것에 공감대를 이루어야 한다.
둘째, 평화를 위한 남북한의 진정한 협력이다. 남북이 협력하면 주변국도 이를 무시할 수 없으며 오히려 선순환을 위한 건설적 역할을 자임하고 나설 수 있다. 여러 면에서 더 나은 위치에 있는 남한이 무력도발 불용의 원칙은 확고히 지키되, 북한의 주장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통하여 북한의 협력을 유도할 수 있는 주도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문 장 렬
전 국방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