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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반도 정세와 통일·대북정책 추진방향 성기영(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분단 70년의 역사에서 지난 한 달만큼 남북관계가 가파른 수직선을 그리며 양극단을 오간 경우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목함지뢰와 포격 도발에 대응한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가 일순간에 한반도 긴장지수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가 북한의 최후통첩 시한을 불과 두 시간 앞두고 이뤄진 남북한 고위급 접촉을 통해 남북관계의 전면적 변화를 예고하는 극적 합의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북한은 박근혜정부가 통일대박론을 제시하고 통일준비위원회를 통해 통일준비 작업에 나설 때만 해도 이를 흡수통일과 체제통일 시도라며 맹비난을 퍼부었고 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인신공격성 비방을 멈추지 않았다. 북한의 대남 비난공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북한 권력층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숙청 시리즈는 북한의 대외전략 담당 부서와 각급 기관들간의 충성경쟁을 야기했고 생존경쟁의 양상을 띤 이러한 움직임은 대남 비난의 빈도와 강도를 고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DMZ에서 벌어졌던 목함지뢰와 포격 도발 역시 이러한 과정에서 시도된 북한의 위기조성 전략에 다름 아니었다. 공포심을 자극하는 협박과 공갈 수준의 비난이나 예상을 벗어나는 국지적 도발로 인위적 위기국면을 조성함으로써 향후 전개될 협상 국면에서 양보와 타협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 북한식 대남전략의 패턴이었기 때문이다. 가용할 수 있는 외교적 수단이 한계에 도달한 국가들 중 일부가 체제나 정권의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공세적 위기관리 전략’을 채택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과거와 크게 달라진 양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 이후 나타난 공세적 압박전략은 도발과 타협, 보상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우리 정부의 원칙론과 부딪히면서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무박 4일 43시간의 고위급 접촉 끝에 6개항의 공동보도문을 채택한 8·25 합의과정을 보면 북한의 선제 도발을 통한 위기조성 전략이 의도대로 먹혀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번 합의문에서 북한을 주체로 하여 유감 표명을 받아낸 성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지뢰 도발을 일으켰다는 사실관계는 명확히 하지 못했고 분명한 재발 방지 조항이 담기지 못한 점은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유사 사례에서 보여준 북한의 태도와 견주어 볼 때 이번 합의는 ‘최선에 가까운 차선’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8·25 합의 직후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략 60% 이상의 국민들이 ‘남북합의가 잘 됐다’고 응답한 것도 이러한 평가를 반영한다. 잘못된 합의라고 한 응답자들은 20%를 밑돌았다.

합의문 내용 못지않게 중요했던 것은 합의 과정이었다. 일촉즉발의 긴장 국면에서 북한이 먼저 협상을 제의했고 우리 측이 동의해 성사된 사실상의 최고위급 접촉에서 이례적으로 단기간에 유감 표명 합의가 도출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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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최고지도자의 지침을 받아 진행되는 고위급 접촉에서 이렇게 단기간에 유감을 표명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합의문 내용 못지않게 중요했던 것은 합의 과정이었다. 일촉즉발의 긴장 국면에서 북한이 먼저 협상을 제의했고 우리 측이 동의해 성사된 사실상의 최고위급 접촉에서 이례적으로 단기간에 유감 표명 합의가 도출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유사한 사례를 보자. 1968년 청와대 습격사건에 대해 김일성이 평양을 극비 방문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만나 직접 사과한 것은 사건 발생 4년이 흐른 후였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에 대해 북한은 4일 만에 사과 의사를 밝혔지만 이는 인민군 총사령관 명의의 유감표명 메시지를 유엔군사령관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비교적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에 대한 사과는 사건 발생 3개월 후 외무성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서였고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에는 사건 발생 한 달이 안 된 상황에서 유감 표명이 이뤄졌지만 이는 남북장관급 회담 대표단장 명의에 불과했다. 결국 최고지도자의 지침을 받아 진행되는 고위급 접촉에서 이렇게 단기간에 유감을 표명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오후 경기도 용인의 3군 사령부를 방문, 우리 군의 대비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이번 합의를 박근혜 정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원칙 및 방법론에 비추어 관찰해 보면 그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간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며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려는 3대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특히 안보와 교류협력의 균형, 그리고 대북억지와 협상의 균형이라는 요소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방법론적 핵심을 이룬다.

특히 8·25 합의 직후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이번 합의를 평가하면서 각각 ‘남북관계를 화해와 신뢰의 길로 돌려세운 중대한 전환적 계기’나 ‘대화와 교섭을 통해 불신과 대결을 해소하고 관계 개선의 길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박근혜정부 대북정책의 아이콘인 신뢰와 불신 해소를 언급한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합의를 박근혜정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원칙 및 방법론에 비추어 관찰해 보면 그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간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며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려는 3대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특히 안보와 교류협력의 균형, 그리고 대북억지와 협상의 균형이라는 요소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방법론적 핵심을 이룬다.

한반도 정세와 통일·대북정책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강조하고 있는 이러한 균형전략은 DMZ 목함지뢰 도발이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진 지 5일만에 발표된 광복 70주년 기념사는 물론 4일간의 남북간 합의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북한의 지뢰 도발에 대해 단호한 대응 의지를 밝히면서도 북한이 대화와 협력으로 나온다면 경제 발전의 기회를 잡을 것이라며 북한의 호응을 다시 한번 촉구했다. 북한의 도발로 2명의 젊은이들이 중상을 입은 데 대한 여론의 분노가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대화와 협력을 강조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8·25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도 도발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라는 1차적 협상목표를 뛰어넘어 당국자 회담 개최와 다양한 분야의 민간교류 활성화라는 결과를 도출해내는 유연성을 보였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킨 8·25 합의는 박근혜정부 후반기 통일·대북정책의 추진방향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임기 전반 내내 남북관계의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통일준비 담론을 확산하는 데에 주력했다면 임기 후반에는 남북한 교류협력과 통일준비 작업을 실질적으로 연계시킴으로써 보다 생산적이고 구체적인 통일준비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정착, 그리고 통일기반 구축이라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3대 목표를 연계하여 추진하기 위한 디딤돌이 비로소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탄력을 받고 정상 궤도에 올라 남북관계 발전에 한 걸음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

<사진제공 : 청와대, 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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