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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언니'들과 함께 걷는 따사로운 이 길!

‘언니’는 동생에게 가끔 경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보다 먼저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와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말 못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든든한 우군이 되기도 한다. 세상 모두가 등을 돌려도, 동생의 손을 꼭 잡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가 줄 것 같은 이름, 언니.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사회로 뛰어 들어온 탈북여성들에게도 언니가 생긴다면 이들의 정착과정 또한 큰 부침 없이 평온하게 지나가지 않을까. 이에 탈북여성들과 ‘자매’처럼 어우러져 지내고 있는 경기 안양시협의회 여성 자문위원들을 만나봤다.

탈북여성과 함께 음식점 경영하는 이숙란 자문위원

식당개업하면서 '선미언니' 채용

이숙란 자문위원 이숙란 자문위원이 ‘북한언니’ 선미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안양시협의회에서 탈북민들과 단양으로 여행을 갔을 때다. 함께 버스를 탄 선미 씨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가 남한에 온 뒤 주로 식당에서 근무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숙란 자문위원은 그 뒤 몇 개월 안 있어 식당을 개업하게 되었고 곧바로 선미 씨에게 연락을 했다.
“우리 식당에 오실 거냐고 물어봤더니 ‘불러주면 좋죠’라고 대답하셨어요. 그래서 한 번 와보시라고 했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여기에 다니고 싶다고, 같이 일하자고 하더라고요.”

개업 이후 얼마간은 경황 없이 바쁘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런데, 세달 째가 됐을 무렵 이숙란 자문위원은 선미 씨에게서 남한 사람과 다른 면을 보게 됐다. 평소에는 착하고 순한 사람이었지만, 직설적인 화법이 문제가 되어 자칫 잘못하면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한 것.
“저녁에 식당 문 닫을 시간이 다 됐는데 나가지 않고 계속 손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보통은 ‘영업시간이 끝났는데 마무리 좀 지어주시면 안될까요?’라고 말을 하는데, 선미 언니는 ‘끝났으니까 빨리 가세요’라고 말하는 거에요.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른 거잖아요. 그래서 ‘언니야, 우린 그렇게 말하면 안 돼’라고 말해줬어요.”
이후 선미 씨는 남한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방법에 대해 점차 알아가고 있지만 아직은 조금 더 고민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고 한다.

‘정말 괜찮아?’ 탈북민에 대한 주변인들의 시선 달라져

이숙란 자문위원 가끔 선미 씨의 동료들이 식당에 찾아와서 화장품이나 영양제 등을 선미 씨에게 파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모른 척 했지만, 비싸고 쓸모없는 물건을 선미 씨가 덜컥덜컥 사주는 것 같아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이숙란 자문위원은 “언니 인터넷 들어가봐. 이거 그렇게 비싼 물건 아니야. 다음부터는 무조건 사지 말고 나한테 물어보고 사”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선미 언니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걸 거절하지 못해요. 담당 형사님도 깜짝 놀라시면서 그런 일이 있다면 말려달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뒤부터는 좀 더 관심있게 지켜보고, 돈을 빌려달라는 요구를 받으면 ‘다 써버려서 없다’고 하시라고 조언해드리기도 했어요.”

이숙란 자문위원은 선미 씨가 성실하고 생각도 깊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몸을 아끼지 않고 도와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모시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특히 퇴근할 때마다 이숙란 자문위원이 먼저 가시라고 해도 혼자 남겨두고 가는 게 맘에 걸린다며 항상 기다려주곤 한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선미 언니, 너무 좋다’고 말하면 의외라는 듯 ‘정말 그래?’라고 되묻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숙란 위원은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밖에 나와도 맘 편하게 있는 거잖아요’라고 대답해 준다고. 그러면서 점차 주변에서도 탈북민에 대한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이숙란 자문위원 선미 씨는 이숙란 자문위원의 식당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5대보험에 가입하게 됐고 다른 직장에서보다 높은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이숙란 위원은 탈북민을 채용해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해 확신이 없었지만,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서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 손을 내밀었던 건데 지금은 그런 용기를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언니도 저도 서로 돕고 북돋아주고 그래요. 언니처럼 열심히 하려는 사람과는 정말 손잡고 가고 싶어요. 아직은 식당 규모가 작아 여러 사람을 채용할 순 없지만, 이런 분이 또 계시다면 다른 분들께도 소개시켜드리고 싶어요.”

함께 일하면서 끝까지 같이 있고 싶어요!

탈북여성들의 든든한 동네 언니 조정숙 자문위

“우리 엄마가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거 처음봐요”

조정숙 자문위원 조정숙 자문위원은 영진이와 소은이 등 두 명의 탈북학생 멘토링을 맡고 있고 이 지역 젊은 탈북여성들의 ‘왕언니’ 역할도 하고 있다.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 전까지만 해도 안양에 이렇게 많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살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는 조 자문위원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잘 정착해야 우리 아이들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멘토링을 시작하게 됐다.

그 중 영진이 엄마 수경 씨와는 영진이의 멘토링을 시작하면서 멘티보다 오히려 친해진 경우. 남한에 온 지 13년 된 수경 씨는 생활력이 강해서 좀처럼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작년 가을에 단양으로 함께 여행을 다녀오면서 조정숙 자문위원이 영진이의 중학교 교복을 선물해주고 싶다고 했을 때도 한사코 거절하다가 나중에는 교복을 받은 대신 밥을 사겠다고 하며 헤어졌다. 한 달 뒤 수경 씨의 연락을 받고 나간 자리에서, 수경 씨는 남편이 현재 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앞으로 부부가 함께 대형마트 근처에서 식당을 개업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고 조 자문위원은 가게 입지선정이나 주요 메뉴 등에 대해 조언을 해주었다. 수경 씨는 그게 고마웠던지 조 자문위원에게 ‘언니’가 되어 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둘은 자주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영진이는 그런 엄마가 낯선듯 ‘엄마 왜 이렇게 이야길 많이 해?’라고 물으며, ‘엄마가 외부사람과 이렇게 많이 대화하는 건 처음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4 가을단풍 문화체험

의존성향 강한 은미 씨에게 준 건 자신감과 정(情)

이미지 또 다른 탈북여성인 은미 씨는 민주평통에 본인이 직접 도움을 요청해 와서 조정숙 자문위원이 멘토링을 맡게 됐는데, 다소 의존적인 성향이 있어서인지 조 자문위원에게 유독 돈 이야기를 자주 했다.
“언니 ‘이사가야 하는데 전세금이 없어요’라며 도와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격증을 딸거라면 학원비를 대줄 수는 있지만 전세금은 못 대준다고, 사람은 형편에 맞게 그때 그때 맞춰서 살아가야 하는 거라고 말해줬어요.”
조정숙 위원은 대신 전자렌지를 이사 선물로 사주었다. 눈물도 많고 정도 많은 은미 씨는 남겨두고 온 자식들 생각에 명절이면 더 큰 외로움을 느꼈고, 조정숙 자문위원은 힘들어 하는 은미 씨의 모습이 마치 젊은 날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럽기만 했다. 그래서 설 전날에도 음식을 싸들고 은미 씨를 만나러 갔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어. 바쁘게 살다보면 우울한 감정도 없어져. 애 때문에라도 열심히 살아야지. 부모와 자식은 천륜이라 아무도 그 연을 끊지 못하니까, 가슴 아파도 참고 돈을 모아서 아이들을 찾아와야지.”

어느 날은 직장에서 왕따를 당한다며 하소연하는 은미 씨에게 “네가 이쁘니까 질투나서 그런 거야. 속상할 때마다 거울을 보면서 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예쁘니? 바로 너”라고 말해보라며 용기를 주기도 했다. 요즘 조정숙 자문위원은 은미 씨가 보내오는 ‘언니 알라뷰~’ 문자나 ‘언니, 오늘 행복한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등의 카톡 메시지를 받으면 정말 행복한 기분이 된다고 한다.

남편까지 멘토링에 뛰어들게 한 멘티 소은이

민주평통에서 맺어준 멘티는 아니지만, 조정숙 자문위원은 소은이라는 탈북여대생의 멘토링도 맡고 있다. 소은이는 북한에서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선생님으로부터 ‘아빠도 없고 엄마는 행불자인데다 가난하기 때문에 교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실망해 먼저 한국에 왔있던 엄마의 도움으로 한국에 왔다. 조정숙 자문위원 부부는 소은이의 이모, 이모부가 되어주기로 하고 작년 입학식 날 학교에 함께가서 축하해 주면서 선물로 노트북을 사줬다.
“이건 졸업 때까지 공부를 잘 하는 조건으로 미리 사주는 졸업선물이야. 공부하다가 힘든 게 있으면 오빠(조정숙 자문위원의 막내아들)에게 물어보면 돼.”
그런데 소은이가 어느 날은 시무룩한 얼굴로 나타났다. 탈북자모임에서 이화여대에 다닌다고 하니까 ‘졸업이나 잘해’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 조정숙 자문위원은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잘하라고 격려는 못할망정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소은이에게 학업이 정 따라가기 힘들면 중간에 한두 학기정도 쉬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된다며 격려해주었다. 또 3학년 때까지 높은 학점을 유지하면 친 아들들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부상으로 배낭여행을 보내주겠다고 했더니 소은이의 얼굴에 금세 환한 미소가 번졌다. 소은이 엄마는 소은이를 남한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 모아둔 돈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24시간 마사지 숍에서 일을 하며 틈틈이 잠을 잔다. 소은이도 이런 엄마의 노고를 알기에 대학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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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숙 자문위원 조정숙 자문위원이 탈북 여성들과 지내면서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생각 차가 크다보니 짐작하지도 못한 데서 오해가 생겨 상처를 받기도 했고 상처를 주기도 했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그들이 나쁜 마음으로 한 행동이 아니란 걸 알기에, 크게 마음을 쓰진 않는다고 한다. 그들에게 소낙비가 되기보다는 가랑비처럼 촉촉하게 젖어들고 싶은 게 왕언니 조정숙 자문위원의 바람이다.

“사람들은 탈북민들과 같이 가다보면 상처를 받게 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 사람들은 이미 피투성이로 왔어요. 그들이 힘들다고 할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해줘요. 너흰 사선을 넘어 온 사람들이잖아. 너희 안엔 너희가 모르는 강력한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를 잘 활용하면 충분히 남한에서 성공할 수 있어라고요.”

조정숙 자문위원은 중국어 ‘펑요우(친구)’라는 말을 좋아한다. 은미 씨나 영진이네, 소은이네를 보면 어려웠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고 오랜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또 아이들을 대학에 보낸 뒤 우울감을 호소하는 중년의 친구들이 많은데, 조정숙 자문위원은 젊은 탈북여성들과 사귀면서 생활에 더욱 활기가 넘친다.
“내가 힘들 때 ‘언니 힘내요’라는 그 친구들의 말이 힘이 돼요. 아들이 그래요. ‘엄마 요즘 그 누나들이랑 즐겁게 살아? 행복해 보여’라고요. 멀리 있는 친척보다, 무뚝뚝한 아들들보다 훨씬 낫지 않나요?”

<글/사진. 기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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