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창밖을 보니,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매미가 목청껏 울던 여름이 있던 자리에 한없이 높고 푸른 하늘이 잠자리를 품고 와있었습니다. 며칠 전 아무도 없는 방 안에 홀로 있던 날, 가을이 와있음을 더욱 실감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더운 여름날에는 혼자 있는 게 그렇게도 좋더니,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다 보니 괜스레 적적함마저 느껴졌습니다. 적적함을 없애려 좋아하는 노래도 들어보고 그동안 읽지 못하고 미뤄 두었던 책을 읽어봐도 한 번 스며든 적적함은 제 언저리를 맴돌았습니다.

이런 날이면 으레 저는 책상 서랍 속에서 편지지를 꺼내어 들어 그리운
이에게 몇 자 적곤합니다. 편지를 쓰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그와 나만의 시간이 생긴 것만 같아 아이처럼 마음이
들뜨기도 하고 편지를 써서 보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집니다.

이 편지를 받아 행복한 미소를 지을 당신의 얼굴도 난 알지 못하지만
편지를 쓰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지는 걸
느낍니다. 몇 살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와 다른 사상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편지 속에 담긴 진심. 그것이 내가 편지를 쓰는
이유이고 편지를 쓰는 행위를 통해 내가 얻는 위로입니다. 편지를 쓰는 동안
반 토막 난 한반도에서 함께 발 딛고 숨 쉬고 사는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를
떠올렸습니다. 나는 분단의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한 채 여전히 이 땅에서 살아가는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는 진심을 담았습니다.

사상이란 잣대가 사람의 생사를 쥐락펴락하던 전쟁 속에서 쏟아져 나온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모순적인 존재들. 그것이 나와 당신, 우리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38선이라는 지리적 장벽보다 더 깊게, 지난 60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전혀 아물지 않은 심리적 장벽이 있음에 마음
한 켠이 먹먹합니다. 그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기란 지난 60년
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언젠가 ‘바윗돌
깨트려 돌덩이, 돌덩이 깨트려 돌멩이, 돌멩이 깨트려 자갈돌,
자갈돌 깨트려 모래알. 랄랄랄라라랄랄라.’ 이 노래처럼 전쟁과
분단의 소용돌이가 우리 마음 속에 두고 간 바윗돌 같이 단단한
응어리가 점차 돌덩이로, 돌멩이로 자갈돌로, 마지막엔 모래알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은 비록 혼자 흥얼거리는 저 노래를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당신과 부를 날을 기다리며 내가 가진
상처만큼 아팠을 당신에게 진심이 담긴 편지 한통을
가을바람에 실어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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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Sept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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